스크린의 독재자 찰리 채플린 - 개정판 청소년평전 2
김별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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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학교에 다닐 때는 존경하는 인물에 꼭 세계의 위인들이 포함되어 있었고,

인생의 롤 모델을 삼기도 했었는데요

요즘 아이들은 롤 모델이 거의 방송인이 아닌가 싶어요.

아무래도 예전만큼 독서하는 아이들이 많지 않다는 것이 이유이기도 하고,

다양한 재미 위주의 매체를 선호하는 것도 영향이 있지 않을까 싶네요.

물론, 세상이 변해서 생각하는 것도 달라지고 사는 방식도 많이 달라졌지만

그래도 고전이나 위인전 등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부분들이 분명 많으니

되도록이면 방송 프로그램에서도 위인들을 소개하는 프로그램도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제가 텔레비전을 잘 안 봐서 잘 모르지만

혹시 현재 방송되고 있는 프로그램이 있을 수도 있지만요.^^








세계 위인들을 상세하게 소개해 주는 자음과모음 청소년평전 시리즈인데요

이번에 썬양이 선택한 인물을

<스크린의 독재자 찰리 채플린>입니다.

초등 때 인물 학습만화를 통해서 살짝 접했던 사람인데

정확하게 알고 싶어서 이 책을 골랐다고 하네요.

썬양 덕분에 엄마도 아득한 옛날 흑백 영화로 봤던 찰리 채플린을 만나보게 되었군요.







세계위인전집 자음과모음 청소년평전으로 만나 보는 <스크린의 독재자 찰리 채플린>은

20세기 가장 뛰어난 희극 배우 '찰리 채플린'의 진솔한 생애를 그린 청소년평전인데요

찰리 채플린이라고 하면 독특한 분장의 희극배우라는 이미지가 떠오르지요.








지팡이와 굴뚝 모자, 칫솔모처럼 조그만 콧수염, 우스꽝스러운 몸짓.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는 19세기에 태어나 20세기를 빛나게 살다 간

어릿광대 같은 희극배우 찰리 채플린을 기억하고 있는데요

그의 코믹한 모습 뒤에는 결코 순탄치 않은 슬픔과 불행한 그의 삶이 감춰져 있다고 합니다.

눈물을 머금은 웃음을 자아내는 20세기 가장 뛰어난 희극배우 찰리 채플린의 삶을

자음과모음 청소년평전 <스크린의 독재자 찰리 채플린>을 읽어보면서 알아봅시다.








유명 배우 어머니 아버지에게서 태어난 찰리 채플린은 어릴 적부터 재능이 아주 많았는데요

아버지가 술을 너무 많이 먹는다는 이유로 부모님은 이혼을 하고

어머니는 아버지가 다른 형 시드니와 찰리 채플린을 키우게 됩니다.

어머니는 열심히 무대에서 일하여 아이들을 키웠지만 목에 이상이 생겨 더 이상 일을 못 하게 되자

채플린의 집은 가난해져 어머니가 남의 집 일이나 삵 바느질을 하여 가정을 꾸려갔고,

그러면서도 채플린에게 배우들의 연기 기술을 설명해 주고 연극을 평가하는 등

다정한 어머니이면서 최고의 선생님이었지요.






가정 형편이 극도로 어려워지자 어머니는 채플린과 시드니를 데리고 람베스 빈민구호소로 들어가게 되었고,

3주일 후 채플린과 시드니는 고아 빈민아동학교로 보내져 어머니와 떨어져 생활하다가

열한 살이 된 시드니는 훈련 선박에 승선하게 되고,

채플린은 집을 구한 어머니를 따라 빈민아동학교를 떠났죠.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상황이 안 좋아지자 시드니와 채플린은 또 다른 빈민아동학교로 보내졌고,

어머니는 정신병에 걸려서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됩니다.

법원의 판결로 채플린과 시드니는 재혼해서 살고 있는 아버지에게로 가게 되는데

새어머니께 구박을 많이 받으며 살던 어느 날 정신병원에서 퇴원한 어머니가

다시 채플린과 시드니를 데려가 함께 살게 되네요.

채플린의 재능을 눈치챈 어머니는 재능을 키워주기 위해 노력했는데요

다시 학교에 다니게 된 채플린은 우연히 교실에서 연극을 하게 되었고

학교에서 조용하고 평범한 학생에서 유명한 학생이 되고 학교에 흥미를 느껴 성적도 쑥쑥 올라갔지요.

학교를 그만두고 '에잇 랭커서레츠'라는 댄스단에 입단했지만

돈벌이도 별로인데다가 폐까지 안 좋아져서 그만둡니다.








채플린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지만 가난 때문에 슬퍼할 겨를도 없었던 채플린의 가족.

채플린은 학교를 그만두고 식품 잡화상의 심부름꾼, 병원 청소, 상점 점원, 인쇄소 공원 등

다양한 일들을 하며 보냈지만 지속되는 가난으로 영양실조와 우울함에 빠진 어머니는

다시 정신병에 걸려 입원하게 되었답니다.ㅠㅠ

남편 없이 두 아이를 잘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채플린의 어머니에게 큰 부담으로 억눌렸을 것 같아

같은 엄마로서 마음이 참 안 좋더라고요.







부모님이 배우여서 그런가 채플린과 형 시드니도 배우가 되는 것이 꿈이었는데요

채플린의 첫 무대는 <셜록 홈스>로 연극은 실패했지만 채플린의 연기는 좋은 평가를 받았죠.

<셜록 홈스>의 공연이 끝나면서 극단은 해체되었고,

시드니는 슬립스틱 극단에 일자리를 구했지만 채플린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혼자가 되었네요.

그러던 중 채플린은 카노의 극단에서 공연 중인 <축구 시합>이라는 연극에 출연할 기회가 주어졌고,

유명 코미디언이었던 웰던을 중심으로 진행됐던 연극은 채플린의 활약으로 분위기를 바꿔 놓았네요.

채플린은 극단에서 가장 중요한 배우 중 한 사람이 되어 웰던의 질투를 받았지만

채플린은 그런 질투 따위는 무시하고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해 나갔죠.

어느새 채플린에게도 사랑이 다가왔지만 아쉽게도 다섯 번의 데이트로 만남은 끝이 납니다.

돌아보고 싶지 않은 기억이 너무 많은 영국을 떠나고 싶었던 채플린은

주연급 코미디언을 데려가기 위해 온 미국 극단의 매니저 앞에서 연기를 하여 뉴욕으로 가서

몇 개의 공연을 마치고 영국에 돌아왔다가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공연을 했답니다.

채플린은 동료들과 어울리기보다는 혼자 숙소에서 지내며

헌책방을 뒤지고 공부를 하면서 자신을 채워 나갔지요.

그리하여 영화에도 출연하고 직접 영화를 만드는 감독도 하면서 어느새 스타가 되었네요.









빈민구호소를 전전하던 가난뱅이 소년은 이제 일주일에 1,250달러를 받는

20대 중반에 영화계의 새로운 영웅이 되어 제작되는 영화마다 큰 인기를 얻고 엄청난 부자가 되었으며

27살에는 백만장자가 되었지만 지독한 가난을 경험했던 채플린은 부자의 씀씀이에 쉽게 익숙해질 수 없었답니다.

그 사이 제1차 세계대전이 발생하여 4년간의 전쟁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학교에서는 총과 칼을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쳐 국가의 명령에 따라 전쟁에 나가지 않는 사람에게

5년의 징역형이 내려져 청년들은 거의 모두 군복을 입고 다녔지만

전쟁을 반대하는 채플린은 군대를 가지 않아 사람들의 비난을 받기도 했네요.








채플린은 성공 이후 세 번의 결혼과 이혼을 했다고 하는데요

그중에서 첫 번째 결혼은 10살이나 어린 여배우 밀드레드와의 결혼이었는데

아이를 가졌다고 거짓말을 하여 서둘러 결혼을 하게 되었다는군요.

사랑 없이 한 결혼이기도 하지만 너무 어리고 어리석은 밀드레드와 대화가 통하지 않아

얼마 못가 이혼에 이르렀고 비로소 자유를 느끼게 되는 채플린~

결혼 생활을 하면서 만들었던 영화 <키드>는 개봉되어 굉장한 인기를 누렸고

영화 속의 주인공 4살 재키는 일약 스타가 되었지요.







영국을 떠난 지 10년 만에 채플린은 고향으로 방문을 했는데요

조용히 추억을 되새기며 찾아가고픈 채플린의 마음과 달리

영국에서는 가는 곳마다 채플린을 열렬하게 환영하였고,

채플린은 몰래 혼자 호텔을 빠져나가 자신의 가난한 추억이 서려있는 곳곳을 다니면서

다시금 불행해져 버리는 것이 아닐까 두렵기도 했답니다.

자신의 일터인 미국으로 돌아온 채플린은 눈앞의 이익만 생각하던 퍼스트 내셔널 영화사와의 계약이 종료되자

동료들과 세운 유나이티드 아티스트 사에서 첫 작품인 <황금광 시대>를 만들었는데

영화에 출연하기로 한 여배우와 사랑에 빠져 두 번째 결혼을 했고,

<황금광 시대>는 전쟁으로 마음에 상처를 입은 사람들에게 웃음이라는 가장 좋은 약을 주면서 엄청난 반응이 쏟아졌죠.








채플린의 두 번째 결혼도 얼마 못가 끝나버리는데요

아내 리타의 변호사들은 더 많은 위자료를 받기 위해 채플린의 명성을 망가뜨리려고 했답니다.

온갖 추한 이야기들이 흘러나와 채플린을 파렴치한으로 만들었지만

채플린의 영화를 사랑하는 팬들 덕분에 채플린은 파멸하지 않았죠.

영국으로 1년 반이라는 긴 여행을 다녀온 채플린은 오히려 무기력했는데

여배우 폴리트를 만나게 되면서 두 번째 아내였던 리타가 나은 자신의 두 아들을 자주 만나 시간을 보냈고,

활발한 폴리트도 채플린의 아이들과 만나 잘 어울려 놀았답니다.

발랄한 폴리트를 바라보면서 새로운 영화 <모던 타임스>를 만들어 큰 성공을 거두었고,

두 사람은 중국을 여행하면서 결혼을 했지만 결혼 후에 사이가 나빠져서 또 세 번째 이혼을 하게 되네요.

그래도 세 번째 이혼한 폴리트와는 친구처럼 편하게 지내게 되었다니 다행인 건가요~








히틀러를 풍자한 영화 <위대한 독재자>를 만들게 된 채플린은

영화가 만들어져도 상영할 가망이 없다며 제작을 중지하는 게 어떠냐는 말을 들었지만

채플린의 고집으로 만들어진 <위대한 독재자>를 본 사람들은 모두 흥분하고 열광했으며

채플린이 만든 작품 중에서 최고의 수익을 가져올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두었지요.

아! 근데 채플린이 또 결혼을 하는군요.

50살이 넘은 나이에 17살 배우 지망생 우나와 사랑에 빠져 결혼을 했답니다.

결혼 후 새 영화 <살인광 시대>를 만드는 동안 첫 딸을 낳아

채플린은 꽤 늙은 아버지가 되었죠.^^

이때 채플린의 두 아들 찰리와 시드니는 군대에 입대를 했으니까요.








미국에서 40년을 사는 동안 미국인으로 국적을 바꾸지 않고 공산주의자와 친하게 지내자

채플린을 공산주의자라로 생각하고 반감을 가지기 시작했는데요

영화 <라임라이트>의 촬영을 끝내고 가족과 함께 영국으로 여행을 떠난 채플린에게

미국의 법무 장관이 채플린이 다시 미국으로 들어오는 허가를 내주지 않기로 했다고 발표하네요.

미국 정부는 채플린이 떠나기만을 기다렸고, 결국 40년 동안 일했던 나라에서 쫓겨난 것이죠.

그런 가운데 <라임라이트>는 영국과 프랑스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고,

채플린은 아내를 보내 미국에 있는 자신의 재산을 정리하도록 하여

날씨가 좋고 평화로우며 재산 관리하기 좋은 스위스로 이사를 하게 됩니다.

60대 중반이 된 채플린은 돈에 대한 욕심은 없었지만 영화와 일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해

스위스에서 새로운 스텝들을 모아 <뉴욕의 왕>을 만들었죠.

가난과 외로움에 시달렸던 채플린은 모두 여덟 명의 아이를 낳아 더 이상 외로운 떠돌이가 아니었어요.

1971년 채플린을 내쫓았던 미국이 화해의 악수를 청하며 채플린에게 명예 오스카상을 수여하였고

채플린은 다시 미국으로 가서 조용한 말년을 보내다가

1977년 크리스마스에 가족이 모두 모여 파티를 마치고 잠들었을 때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지요.

미국의 희극배우 보브 포흐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그의 시대에 살았다는 것은 행운이었다."










아직 찰리 채플린의 영화를 본 적은 없지만 책으로 만나 본 채플린이

말없이 몸으로만 연기를 하면서 사람들을 웃음으로 행복하게 해줬다는 것이 신기하다는 썬양.

지금은 바빠서 영화를 볼 시간이 없지만

겨울 방학이 되면 꼭 찰리 채플린의 작품을 찾아서 봐야겠다고 합니다.

무성영화가 어떤 것인지 급 궁금해졌다면서요~~

그리고 결혼을 네 번이나 해서 70살이 넘어서도 아이를 낳았다니 대단하다고~ ^^






자음과모음 청소년평전 <스크린의 독재자 찰리 채플린>을 읽기 전에는

왜 채플린이 독재자일까 궁금했었는데

영화를 만들 때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에 굽히지 않고 추진하여

결국은 성공을 한 사람이라 스크린의 독재자라는 말을 썼나 보다고 하네요.

그리고, 채플린이 엄마의 공연에 따라갔다가 엄마가 목 상태가 안 좋아서 공연을 못 하게 되자

5살 나이에 무대로 나가 즉석에서 재미있는 공연을 해서

망쳐진 무대를 성공적이게 만들었던 부분이 인상 깊었다고 해요.

또, 어머님을 향한 사랑도 지극했는데 어머님과 건강하게 함께 살 수 없었던 점이 안타깝다는군요.

채플린의 영화에 대한 열정을 본받아

자기도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최선을 다하고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겠다고 합니다.






독후 활동이 너무 무채색이라 색을 입혀서 좀 꾸미는 게 어떻겠냐는 엄마의 말에

찰리 채플린의 시대는 흑백영화 시대였기 때문에

흑백으로 표현하는 게 더 낫다는 썬양.ㅋㅋ

네가 엄마 보다 낫다~~~







오늘도 역사 속의 개성 넘치는 위인을 한 명 소개해 드렸는데요

어린 시절의 가난과 배고픔, 절망과 괴로움을 극복하고

세상의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안겨 준 찰리 채플린의 일생을 보면서

환경을 탓하기보다는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 희망을 갖고 앞으로 나아가는 삶을 살기를 바라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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