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숙해 마지않는 플라시보님과 평범한 여대생님이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누는 것을 목격했다.
"어제 날짜로, 님의 서재에 마이리뷰 3편이 올라왔더군요. 잘 읽었습니다. 알라딘 서재는 책이 주가 되어야 하는데, 마이페이퍼가 생긴 뒤로는 책 이외의 것에 매몰되는 것 같아요"

두분의 타깃은 물론 내가 아니었지만, 조금 뜨끔하긴 했다. 자유게시판 쯤에 해당하는 마이 페이퍼가 알라딘 '나의 서재'에 생긴 것을 누구보다도 열렬히 환영한 사람이 나였으니까. 심지어 난 그 페이퍼를 발판으로 알라딘을 평정할 생각까지 하지 않았던가.

이건 뭐 내가 꼭 나빠서만은 아니다. 난 알라딘에 둥지를 튼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서재가 생길 때, 모든 사람이 동일점에서 출발을 한다면 모르겠지만, 기존에 리뷰를 써오신 분들은 벌써 저만큼 앞서간다. 다들 서평을 500개, 600개를 써 놓은 상태다. 책을 읽는 분들은 정말 무섭게 읽는지라, 역전은 고사하고 현재의 격차를 유지하는 것만도 사실 벅차다. 2003년, 126권을 읽음으로써 '신기록'을 세웠다고 자화자찬하는 사이, 책벌레 중 하나인 '평범한 여대생'님은 읽은 책은 모두 서평을 썼다고 가정을 해도 177권을 읽으셨다. 이틀에 한권 꼴인데, 나로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숫자가 아닌가.

책은 그렇게 못하지만, 게시판에 그다지 영양가 없는 소리를 늘어놓는 것은 바로 내 특기다. 남의 말 한마디나, 귓가를 스치는 장면 하나로부터 장황한 글을 써내려가는 게... 마이리뷰에 '톱50'이니 '톱 100'을 뽑는 것처럼, 마이페이퍼도 순위를 매길 거니까, 이거에 목을 매야겠다는 것이 나의 전략이었다. 그래서 난 기존에 썼던 글들을 '나의 서재'에 퍼나르기까지 하면서 마이페이퍼를 불려 나갔다. 그 결과, 난 현재 마이페이퍼 부문에서 톱50의 한자리를 굳게 지키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기분 좋냐고? 그런 건 아니다. 난 하루에 서너개씩 글을 쓰는 건 나같이 집요한 사람이나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나 말고도 마이 페이퍼에 목을 맨 분들은 굉장히 많았다. 베스트서재의 주인공인 '진우맘'님이 이런 글을 쓰신 걸 봤다. "마이 페이퍼 쓰느라 책을 못읽겠다!"

아닌게 아니라, 진우맘님이나 플라시보님 등등 책을 많이 읽는 분들은 하루에도 여러편씩, 주옥같은 글들을 쏟아내고 있다. 게다가 글의 수준도 상상 이상이라, 별로 경쟁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몸살이 나서이기도 했지만, 요 며칠 내가 서재에 글을 안썼던 이유는 바로 그런 것 때문이다.

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알라딘 평정이 실패로 돌아가서 하는 말이지만, 서재지수 같은 것에 연연하지 않을 것이다. 무슨 주식 시가를 보는 것도 아니고, 자신만의 따뜻한 방이 계량화되어 경쟁의 장에 나서는 게 과연 좋은 일인가 하는 회의도 들었다. 플라시보님 말이 맞다. 서재는, 책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 책으로 못하는 얘기를 마이 페이퍼에 담아야지, 본말이 전도되어야 되겠는가. 아쉬운 것은 내가 서재지수에서-최소한 마이 페이퍼라도-알라딘을 평정한 뒤 이런 말을 하면 다들 기립박수를 치겠지만, 1등 하려고 아등바등하다가 두손을 들고 나서 이러니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 심지어 이런 일도 있었다. 플라시보님이 일은 많고 연봉도 많은 대기업을 갈 것인가, 아니면 지금 직장에 머물 것인가를 고민했을 때, 난 속으로 이랬다. "플라시보님! 대기업 가세요. 그래야 제가 추월하지요"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카드빚을 탓하면 용서가 되듯이, 난 서재 점수에 연연하는 내 집착을 경쟁만을 조장하는 우리 교육 탓으로 돌리겠다. 대학입시를 본 지도 벌써 오래 전인데, 그때의 습속이 아직도 남아 있다니, 어릴 때 받은 교육의 영향은 이토록 지대한 법이다. 이제부터라도 나의 향기-그리 좋은 냄새일 것 같지는 않지만-를 듬뿍 느낄 수 있는 서재를 만들어 봐야지. 이 글이 경쟁자들의 긴장을 해이하게 하기 위한 음모라는 설이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음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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쎈연필 2004-01-11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되게 재밌어요... ㅎㅎㅎㅎㅎㅎㅎ

마태우스 2004-01-11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라스꼴리니꽃님이다! 칭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