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영화를 좋아한다. 하지만 하드웨어 자체엔 별 관심이 없다. 몇백만원만 있으면 홈시어터를 장만할 수 있다지만, 그다지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다른 집에서 16: 9의 비율로 만들어진 55인치를 보면 부러운 마음이 생기지만, 집에 오는 순간 다 까먹어 버린다. 내가 주로 보는 TV는 15인치짜리고, DVD가 연결된 마루의 TV도 30인치가 안되지만, 비디오와 DVD 없이 오랜 세월을 산 탓인지 그걸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을 느낀다.


광화문에서 산 <하프라이트(half light)>를 DVD로 보려는데, 마침 어머님이 들어오신다. 꼬셔서 같이 봤다. 마루의 불을 끄고 영화를 틀었더니 제법 그럴 듯하다. 게다가 소파에 길게 드러누울 수 있으니 극장보다 편한 것 같다. 문제는 바로 전화, 인기가 많으신 어머님은 결정적 장면마다 전화를 받으셔야 했다. 급한 전화도 아닌데 왜 밤 12시에 전화를 거는지, ‘정지’ 버튼을 누르긴 했지만 김이 샌다.




영화에 좋은 평가를 내릴 수 없는 게 전화 때문은 아니다. 스토리 전개도 무난했고, 머리칼이 쭈뼛한 장면이 몇 차례 있었음에도, 막판의 결론이 너무 사람을 허탈하게 해서였다. 영화 제목인 ‘하프 라이트’처럼 반쯤 쓰다가 만 듯했다. 만들다 돈이 떨어졌는지, 데미 무어가 바빴는지 알 수 없지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에도 TV를 끄기 싫었던 건 순전 허탈해서였다. 내용보다는 자연 풍경을 더 중요시하는 어머니는 시종 “나도 한번 가보고 싶다.” “정말 그림 같네!”라며 감탄을 연발했지만, 그게 왜 그럴듯한 예고편에도 불구하고 흥행에 참패했는지 이유를 짐작할 만했다.


설령 내가 몇천만원짜리 홈시어터를 갖추고 그 영화를 봤더라도 결론은 같았을 것이다. 자연 풍경이 더 잘 드러나니 어머니의 열광도는 높아졌겠지만, 좋은 장비 아래서는 스토리의 빈곤함이 상대적으로 더 잘 드러나지 않았을까. 하드웨어보다 중요한 건 역시나 내용이고, 결말은 특히나 더 중요하다.

 

**네이버 검색을 해보니 <하프라이트 2>가 나왔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싶었는데, 알고보니 게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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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16 02: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06-07-16 0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분/알겠습니다. 앞으로 주의하겠습니다.

Mephistopheles 2006-07-16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데미무어만 보면 대단한 아줌마라는 생각 뿐입니다...
어떻게 자기 조카뻘 되는 남자랑...재혼을...윽윽..

모1 2006-07-16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게임이름이 하프라이트던가요? 하프 라이프가 아니구? 전 제목을 언듯 보고는순간...하프 라이프가 영화로도 나왔어? 했었어요. 하하....(하프라이프라고 예전에 잘나가던 게임이 있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