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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의 법칙 - 세상을 움직이게 하는 열린 가능성의 힘
슈테판 클라인 지음, 유영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젊은 화학자에게 차가 생겼다. 또한 잘나가던 기업이 부도가 나서 그 집의 큰딸은 먼 곳에 일자리를 얻어야 했다.
“그때 어떤 사람이 그 아가씨에게 하늘색 폭스바겐을 몰고 다니는 젊은 화학자를 소개해주었다...그 남자의 차를 얻어 타고 다니라는 것이었다.”
짐작하겠지만 그 둘은 결혼했고, 둘 사이에서 태어난 이가 바로 <우연의 법칙>을 쓴 저자다. 저자는 말한다. 아버지에게 자동차가 생기지 않았다면, 외할아버지의 회사가 부도를 면했다면, 둘이 첫 데이트를 한 그날 알프스 산에 구름이 끼었더라면 “지금의 나는 존재했을까?” 운명적 사랑을 믿는 사람이라면 그런 일이 없어도 다른 방법으로 둘이 만났을 것이라고 주장하겠지만, 세상일의 많은 부분이 우연에 의해서 유지되고 있다는 게 더 신빙성이 있을 것이다. 운명적 사랑이라는 것도 자신이 마주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가능한 것이지, 일이 잘못되어 내가 도미니카로 이민을 가야 한다면 주말마다 홍대 앞을 찾는 미니스커트와 잘될 확률은 0%가 되지 않겠는가?
이 책은 우리 삶을 지배하는 우연의 법칙에 대해 말하고 있다. 삶에서 우연이 차지하는 비중은 생각보다 높지만, 사람들은 우연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왜? 그래야 마음이 편하니까. 생각해 보라. 우리의 삶이 우리가 전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에 의해 좌우된다면 얼마나 불안하겠는가. “저 사람은 이런 경우에 기뻐하고, 저럴 때 화를 낼 거야.”라는 예측이 불가능하다면 그 사람과의 관계가 제대로 유지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모든 게 신의 의지대로 된다.’고 주장하곤 하지만, 신의 뜻을 우리가 알 수 없는 한 그것 역시 ‘우연’으로 간주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우리가 우연으로 알던 게 모두 우연만은 아니다. 예컨대 사과가 떨어지는 건 우연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 중력의 법칙이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희대의 천재들은 언제나 우연 속에서 법칙을 발견하려고 노력하고, 실제로 성공을 거두기도 하지만, 그런 규칙들이 세상사의 모든 것을 설명해 줄 수는 없다.
저자는 풍부한 예를 들면서 우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물론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우연에 더 잘 대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룰렛 게임을 더 잘하게 해주거나 이상형의 이성을 만날 확률을 높여주는 책은 아니니까. 하지만 이 책은 우리네 삶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주며, “왜 나만 이런가?”라는 탄식을 더 이상 안하게 해줄 것이다. 세상에 횡행하는 각종 음모론에 휘둘리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우연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므로 조금 더 겸허하게 살 수 있게 될 것도 같다. 그래서 난 감사드린다. 저자의 아버지에게 차가 생긴 것을, 그리고 저자의 외할아버지 회사가 부도를 낸 것을. 누군가는 우연에 천착하여 이와 비슷한 책을 쓰려고 했을 거지만, 이 책만큼 멋진 책을 쓸 수는 없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