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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롤 ㅣ 에디션 D(desire) 9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김미정 옮김 / 그책 / 2016년 1월
평점 :
영화와 책이 모두 나온 경우, 책이 더 좋다는 의견이 대세를 이룬다.
아마도 그건 책이 먼저 있고 그걸 바탕으로 영화를 만드는 경우가
그 반대의 경우보다 많기 때문이다.
책을 먼저 읽은 뒤, 즉 결말까지 다 알고 난 뒤 영화를 보면 아무래도 재미가 덜하지 않겠는가?
게다가 영화 보기 전 책을 읽은 사람들은 다른 관객에 비해 우월감을 갖게 마련이다.
책 읽은 걸 티를 내고 싶어한다는 얘기다.
그래서 그들은 책과 영화가 다른 부분들을 언급하며 불만을 토해내며,
“영화가 원작을 망쳐버렸다”는 결론을 낸다.
이 원칙은 영화 속편에도 그대로 적용돼,
다이하드 2를 본 관객들이 “1보다 못하다”며 거품을 무는 어이없는 현상이 벌어지곤 했는데,
시간이 흐르고 난 뒤 다이하드2는 ‘속편이 더 나은 영화’로 오랫동안 회자되고 있는 중이다.
네이버에서 영화 <캐롤>의 평점을 보고 놀라 극장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부장 아내는 “바쁘다고 난리치더니 영화는 무슨 영화냐?”며 못가게 했고,
할 수 없이 책을 주문해서 읽었다.
아직 영화는 보지 않은 상태지만, 최소한 <캐롤>은 책보다 영화를 보는 게 훨씬 나을 것 같다.
여자끼리 사귀는 것에 거부감을 갖고 있는 건 전혀 아니니 그게 이유라고 말하진 말자.
다만 주인공 테레즈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게, 그리고 그녀의 행동을 이해하는 게
내겐 너무 힘들었다.
재미있는 책은 밤을 밝혀가며 읽게 되는 반면
이 책은 몰입이 힘들어 의식적으로 노력을 해야 했다.
물론 이건 내가 남성이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책이건 영화건 여자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하는 경우가 많았던 걸 감안하면
그것도 납득할 이유는 아니다.
아무래도 VOD가 나오면 그때 영화를 봐야겠다.
이 책에서 인상깊었던 구절을 두 개만 써본다.
대니; 언제 오셔서 점심이나 같이 하시죠.
테레즈: 고맙습니다. 그럴게요.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고마웠다 (47쪽).
이 책이 출간된 건 1952년, 그때도 ‘점심 같이 하자’는 게 다신 만나지 말자는 말로 통했나보다.
캐롤; ‘난 경쟁조차 할 수 없어.’ 이런 말 말이야, 사람들이 고전이라고 말하는데,
이런 대사가 바로 고전이지. 백 명이 똑같은 대사를 읊는 게 바로 고전이야.
엄마가 하는 대사와 딸이 하는 대사가 같고, 남편이 하는 대사와 정부가 하는 대사가 같지...
그럼 하나의 연극이 고전으로 등극하기 위해 사람들이 꼽는 조건이 뭘까?
테레즈: 고전이란....인간의 보편적 상황을 다루는 거죠 (231쪽).
고전에 대해 이토록 명쾌한 정의를 접하니 머릿속이 다 시원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