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뻑’이란 남이 알아주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이 잘났다고 하는 것,

난 자존감이 좀 부족한 편이라 자뻑 기질 자체가 전무했다.

남들이 그 중 칭찬하는 글쓰기에서도 사정은 비슷했다.

스스로 쓴 글에 대해 부끄러워하는 일이 많았으니까.


그런 내가 내 글을 사랑하게 되는 건 남들의 인정을 받았을 때.

세월호 선체인양이 29년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라는 전제하에 쓴 ‘29년 후’란 글은

글을 보낼 때만 해도 천하없는 쓰레기라고 생각했다.

하다하다 안되니 이딴 글을 쓰는구나, 라는 자괴감에 사로잡힌 나머지

담당자에게 부끄럽고 죄송하다고 사족을 달아서 보냈다.

그런데 칼럼이 실린 날 지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늘 글 너무 좋았어요.”

그의 말을 듣고 내 칼럼을 다시 보니 전날과 달리 잘쓴 것처럼 보인다.

이런 일이 몇 차례 있은 후 비로소 깨달았다.

난 자존감이 낮아서 남이 인정해주지 않으면 가치를 모른다는 것을. 












도서평론가 이권우 선생님이 책을 냈다.

<책읽기부터 시작하는 글쓰기 수업>이란 책으로,

책을 받고나서 이런 생각을 했다.

“아유, 조금만 더 있다 내시지. 나 책 좀 더 팔아야 하는데!”

책은 술술 읽혔고, 공감되는 부분도 많았다.

하지만 이 책의 진정 빛나는 대목은 글쓰기 팁을 제시하면서 내 글을 인용한 것.

경향에 실었던 <괴로우나 즐거우나 대통령과 함께>라는 글.

다른 글보다 이 글을 쓸 당시 느낌을 생생히 기억하는 건

대통령이 바뀌고 난 뒤 그만뒀던 칼럼을 근 2년만에 다시 쓰기로 하고 난 뒤

경향에 보낸 첫 번째 칼럼이었기 때문이다.

그간 반어법을 숱하게 써왔던 터라 다시 그걸 구사하면 먹힐 것인가 걱정도 됐고,

글 자체가 썩 잘쓴 것 같지 않아 매우 불안한 마음으로 신문사에 보냈다. 

그런데 그 글이 세상에, 글쓰기 책에 인용됐다니!

잠시 주변을 정리하고 앉아 진지하게 글을 다시 읽어봤다.

이럴 수가!

글은 정말 훌륭했다.

재미도 있을뿐더러 비유 하나하나가 찰졌다.

“다른 건 몰라도 이건 책에 실릴 만한 글이구나!”라며 혼자 즐거워했다.

한편으론 씁쓸하기도 하다.

매번 남의 인정에 기분이 좌지우지되는 ‘타뻑의 삶’은 좀 피곤할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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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5-12-02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뻑도 좋지만 남의 인정을 받아야 나오는 타뻑이 더 좋은 듯... ^^
방금 전 큰딸과 카톡하면서 「서민적 글쓰기」 얘기했어요!

마태우스 2015-12-02 22:54   좋아요 0 | URL
어머나 순오기님 안녕하세요! 그냥 타뻑으로 살게요^^

나비종 2015-12-02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뻑은 자체 동력.
타뻑은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마찰력 때문에 그 동력이 힘을 다했을 때, 다시금 굴러가게 하는 외부의 힘.
이상적인 건 자뻑과 타뻑의 조화~ 늘 같은 속도는 재미없으니까요^^

마태우스 2015-12-02 22:55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나비종님, 서로 조화를 이뤄야 하는군요. 제가 자뻑이 좀 약한 편인데, 그걸 기르기 위해선 저를 좀 더 사랑해야 할까요.

나비종 2015-12-02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타뻑이 반복되다보면 자뻑이 좀 강해지던데요ㅎㅎ 경험담이 절.대. 맞습니다^^;
그리고, 마태우스님은 자뻑이 약하신 것이 아니라 겸.손.하신 걸로^^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자신에 대한 글을 쓰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마태우스 2015-12-02 23:52   좋아요 0 | URL
잦은 타뻑이 자뻑에 이르는 길이군요 글구 제가 자존감이 낮아서 그렇지, 겸손한 건 아니어요. 저를 그닥 사랑안하다보니 그렇게 보이는 것뿐 ㅠㅠ 암튼 노력할게요 좋은 충고 감사드려요

2015-12-04 23: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10 01:3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