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란체스카 작가가 시네 21에 개 얘기를 썼다(제목은 ‘나는 개를 좋아한다.’). 내용은 이렇다. 고교 시절 작가의 집에서 콜리라는 개를 키우게 되었는데 이름이 벤이었다.
[지 배설물을 맛나게 먹다 나만 보면 ‘형~’ 하고 바보처럼 웃던 변견들만 키우다가...거만해 보이기까지 한 콜리종을 보니 ‘역시 외제가..’ 하는 맘이 들더라.]
이렇게 벤과 잘 지내다 집안 형편 때문에 벤을 더 이상 키울 수 없게 되었는데, 벤을 다른 데 팔고나서 6개월이 있다가 ‘간디처럼 말라’ 있는 벤이 자기 집으로 들어왔다. 벤은 다른 집에 팔려간지 이틀만에 도망을 쳤고, 100킬로가 넘는 그곳에서 도망쳐 온 것이다.
[애견센터 사장이 다시 벤을 데리러 왔다. 처음 팔려가던 날 벤에게 이빨이 있었음을 처음 알았을 정도로 벤은 사납게 짖고 반항했다. 하지만 이번엔 조금의 반항도 없이 차에 올랐다. 하지만 벤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나를 보며...]
개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런 류의 글을 보면 가슴이 찢어진다. 도대체 어떻게 100킬로가 넘는 먼 거리를 헤매가면서 집을 찾았을까. 그 6개월간 그가 치러야 했던 고생은 어느 정도였을까. 겨우 찾은 주인과 헤어져 팔려가는 신세가 된 심정은 과연 어떨까. 삼보 컴퓨터 광고모델을 했던 개-스토리만 똑같고 개는 다른 개였지만-에서 보듯, 이런 일은 가끔씩 보도되는 일이다. 산책을 했어도 집 주위가 고작이었을텐데 먼 길을 찾아오는 걸 보면 정말 개에게는 특별한 것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게 모든 개가 그런 능력이 있는 건 아니다. 우리 집에서 오냐오냐 키웠던 벤지, 녀석이 고양이를 쫓아가느라 딱 한번 내 시야에서 벗어난 적이 있다. 슬리퍼를 신고 있어서 벤지를 놓칠 수밖에 없었는데, 한참을 헤매다 찾지 못해 잃어버렸나보다는 생각까지 했었다. 다행히 벤지는 아버님에 의해, 집과 전혀 관계없는 곳에서 발견되었는데, 하여간 난 녀석이 다른 영험함은 있을지언정 집을 찾는 능력은 떨어진다는 걸 알았다. 그 뒤부터 벤지와 나갈 때 슬리퍼를 신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벤’이라는 이름 때문에 생각이 나는데, 나도 중학교 때 벤이라는 개를 기른 적이 있다. 하얀 색의 새색씨처럼 생긴 진돗개였는데, 어찌나 순한지 짖을 줄도 몰랐다. 내가 머리를 쓰다듬으면 얌전히 머리를 내밀던 벤은 어느날 집 밖으로 나가자마자 산책을 하던 앞집 치아와를 물어죽이고 만다. 그 얘기를 듣고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그 맑은 눈망울에 그런 흉포함이 숨겨져 있었다니. 앞집에다 돈을 물어주고 나서 아버님은 미련 없이 벤을 다른 곳에 팔아버렸고, 그때까지도 놀람이 가시지 않았던 난 벤을 파는 것에 대해 아무런 반대도 하지 못했다.
나름대로 해석을 해보면 이렇다. 그때 우리 집에는 치아와가 한 마리 있었는데, 녀석은 날 가장 좋아했다. 우리 누나가 치아와한테 ‘올케’라고 부를 정도로. 치아와는 집안에서 공주처럼 지냈고, 벤은 밖에서 추위에 떨며 머슴처럼 지내야 했다. 그래서 벤이 세상의 모든 치아와를 미워하게 되었던 건 아닐까? 이유야 어찌되었든, 벤이 어딜 갔든지 우리집에 있는 것만 못했을 터, 그때 반대하지 않았던 게 지금은 미안하다 (호랑이같은 아버님을 생각하면, 반대를 했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을 테지만).
개에 얽힌 에피소드는 언제나 짠하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소외를 개가 대신해줄 수는 없겠지만, 개가 없었다면 이 세상은 훨씬 삭막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