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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격의 대학교 - 기업의 노예가 된 한국 대학의 자화상
오찬호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최근 몇 년간 읽은 책 중 제일 무서운 책은 오찬호의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였다. 읽는 내내 손이 떨렸다고 감상문을 쓴 적이 있는데, 그가 이번엔 <진격의 대학>을 통해 기업에 포섭된 대학을 비판한다. 이 책을 펴든 곳은 집으로 가기 전 들른 술집에서였다. 갑자기 산낙지가 너무 먹고 싶었고, 마침 집 앞에 산낙지를 잘 하는 곳이 있었으니까.
다행히 <진격의 대학>은 그의 전작처럼 무섭지는 않았다. 다만 읽는 내내 한숨이 나왔다. 대학은, 변해도 너무 변했다. 오직 취업률에만 목을 매고, 기업이 원하는 순종적인 인재를 만들기 위해 애쓰는 곳이 지금의 대학이었다. 자기 소개서를 쓰는 요령을 가르치는 강사는 감명깊게 읽은 책을 적을 때 주의할 점을 얘기한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이 좋고, 존 롤스의 <정의론>은 오해받을 수 있으니 되도록 빼세요...기업에 비판적인 사회비평서는 절대 적으면 안됩니다. 장하준 교수가 워낙 유명해서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나쁜 사마리아인들> 같은 책은 적어도 별 문제 없겠다 싶겠지만, 괜히 면접관하고 논쟁하기 싫으면 알아서 빼세요.” (41쪽)
그 학교 학생이 다 대기업을 원하는 건 아닐 텐데, 대학에서는 토익 몇 점 이상을 졸업 기준으로 내걸고 있다. 전체 강의의 40%를 영어로 진행하는 것도 그 일환인데, 정말 웃지못할 대목은 다음이다.
“이 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는 ‘국어문법론’ ‘국어학강독’ ‘응용언어학’ 등 다섯과목을 영어로 강의한다고 한다..스페인어나 프랑스어 같은 제2 외국어 과목도 영어로 강의하고 있다.” (100쪽)
이 대목을 읽고 난 술 대신 시킨 사이다를 한 잔 들이켰다. 안주로 시킨 산낙지를 씹으며 계속 책장을 넘기다보니, 영어강의를 하는 교수의 체험담이 나온다.
“현재 영어로 강의를 하고 있지만 내가 전달하는 효율도 70% 이하고, 학생들이 받아들이는 효율도 70% 이하로 떨어진다. 결국 0.7x0.7 = 0.49가 돼서 우리말 강의에 비해 반도 못 가르치는 셈.” (109쪽)
그러게 말이다. 정말 이게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저자는 말한다. 대학 말고 누가 사회의 모순을 비판할 수 있느냐고.
“대학은 ‘영어만 했더니 대학 가서 죽도 밥도 안되더라’ ‘영어가 다가 아니더라’는 미담을 계속 만들어내야 한다. 그럴 때 사회도 대학에 존경을 표할 수 있다. 하지만 대학은 정반대의 길을 선택했다.” (136쪽)
대학 본연의 기능을 포기한 채 기업의 하청업자를 자청하는 대학의 모습이 접시에 올려진 채 꿈틀거리는 산낙지와 비슷해 보였다. 산낙지 한 점을 입에 넣었다. 산낙지가 대학이면, 그걸 잡아먹는 난 기업인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며 먹어도 산낙지는 맛있었다.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