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번째: 9월 17일(토)
누구와: 다 쓰러져가는 모임 사람들과
마신 양: 기본은 했다
없어진 줄 알았던 모임이 기적적으로 부활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모임에 애정이 식은지 오래, 흔쾌히는 아니고 겨우 나갔다는 게 사실에 부합하는 말일게다. 모임 멤버 중 법무관으로 근무하는 사람이 있었다. 내년에 제대를 하는 그와 법무관 생활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김두식의 <헌법의 풍경>을 읽으면서 저자가 법무관 훈련 중 겪은 일들이 어쩌면 나와 그리도 비슷한지 감탄을 한 적이 있다. 법무관으로 복무한 김두식은 법무관 후보생 시절의 경험이 “특권의식이 어떻게 외부로 표출되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하면서, 몇 가지 예를 든다.
-구대장으로부터 팔굽혀펴기 10회를 지시받은 후보생이 할 수 없다고 개겼고, 결국 “앞으로 그런 건 시키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외박 횟수를 늘려달라고 요구하면서 집단행동을 불사하겠다고 함--> 늘려줄테니 훈련 열심히 받으라고 함--> 차라리 외박 안늘리고 무조건 개기자는 결의를 함
-술병을 숨겼다 걸린 후보생이 외박 금지 및 벌점의 징계를 당하자 집단 단식을 결행함. 물론 매점에서 쵸코파이 등을 먹어가면서. 결국 사흘만에 징계는 없었던 것이 됨.
나와 얘기를 나눈 법무관의 경우도 크게 다를 바 없었지만, 우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별 거 아닌 일로 단식을 했었고, 훈련을 심하게 시키는 구대장의 퇴진을 요구하면서 밤중에 뛰어나와 데모를 했다. 그 구대장만 없으면 훈련을 열심히 하겠다고 하더니, 그 요구를 중대장이 수용하자 그 다음부터 개판을 쳤다. 식사 때 짜장면과 탕수육을 불러먹고, 술을 먹고 오버이트를 하는 후보생도 꽤 있었다. 이런 것들, 보통 군대 같으면 난리가 났을 사연이 아닐까. 우리는 아니지만 우리 선배 중에는 가족들의 면회 시간 중 술에 만취해 사병을 폭행한 사람도 있었고, 봉고차나 으슥한 곳에서 아내와 그걸 하다 걸린 사람도 있었다.
여기에 대해 김두식은 이렇게 말한다. “(단식이) 보기에 따라서는 강자에 맞서는 법률가들의 결연한 의지로 비칠 수도 있는 사건이었지만, 제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우리를 지도하는 훈육대장이나 구대장들, 심지어 장군들조차 분명히 사회적 강자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117명 특권집단(후보생)의 눈치를 보는 데 급급한 나약한 사람들에 불과했습니다. 3년 후면 모두가 판검사, 변호사가 될 사람들인데다, 다수의 후보생들은 전.현직 국회의원, 장관, 법원장 등을 아버지 또는 장인으로 둔....”
이 구절을 읽으면서 옛 경험이 떠올라 부끄러워졌다. 우리들 역시 남들과 다르다는 특권의식을 가지고 어떻게 하면 더 개판을 치나에 몰두했었지. 우리를 괴롭힌다고 생각했던 구대장들은 사실 나약한 사람들에 불과했다. 문제가 생기면 승진에 지장을 초래하니, 우리가 제발 아무 탈 없이 훈련을 마치기만을 바라는. 우리는 별것도 아닌 걸 빌미로 집단행동을 하고, 훈련을 안받으려 했고, 외박을 나올 때마다 우리가 얼마나 개겼는지를 무용담처럼 떠벌렸다. 십년이 지난 지금, 그 특권의식은 그때보다 훨씬 더 자라나 있지 않을까?
자신이 하는 일이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은 나쁜 게 아니다.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니 대우도 잘받아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거기에는 전제가 따른다. 해야 할 일은 하는 책임감, 그게 우선되어야지 않을까. 군대에서 우리가 보여줬던 수많은 행동들은 거기에 걸맞지 않은 것들이었다. 특권을 가진 자들은 다 비슷하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