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산사춘 > 건방진 거위들

산사춘님 서재에서 퍼왔습니다(몰래) 이분이 쓰시는 글은 대개가 재미있지만, 이 글은 특히나 더 재미있네요. 재미라는 게 뭔지 이 글을 읽으면서 깨닫게 됩니다.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산사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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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전까지 부모님 집에서 거위 두 마리를 키웠더랬다. 전원생활 욕심에 흠뻑 젖은 울 어무이는 시골에 가자마자 아부지와 의논도 없이, 병아리와 오리새끼를 각각 이십마리씩 사들이는 사건사고를 일으키셨다. 거기에다 거위는 옵션이었다지. 서울서부터 진도개 한 쌍을 이미 키우고 있는 상태였는데도, 어무이는 거위가 집 지키는데 짱이라며 거위새끼 두 마리를 사오셨다.

그 많은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서 아부지는 피눈물을 흘리며 며칠간 사육장을 혼자 지었다 전해진다. 그러나 부창부수라는 말이 있듯이, 그 와중에도 아부지는 오리들을 위해서 나중에 엄청 후회하게 될 개울까정 파셨다. 농촌에서는 마을 청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나이 오십에 직장을 때려치면, 흘러넘치는 힘을 주체하기가 어렵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암튼 그 아이들은 무럭무럭 커서 처음 오는 사람들에게는 견디기 어려울 소음들과 냄시들을 선물해 주었는데, 역시 그 중 압권은 거위 한 쌍이었다. 중국 고사에 나오는대로... 거위들은 집을 참 잘 지켰다. 주인이고 손님이고 나발이고 사람만 보면 그 찢어지는 목소리로 꺼어어억 꺼어어억 소리를 질러 대었다. 거위들이 울어주시면, 오리들도 같이 집을 지킨다는 사실도 배웠다.

신기한 것은 성장한 닭과 오리들이, 절대 같이 놀지 않는다는 것이다. 낮에는 뒷산에서 풀 뜯어먹고 벌레 잡아먹으며 서로 삥을 뜯고 놀다가 어두워지면 칼같이 집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같다(머리숙여 배울 점이다). 그런데 오리들의 단체 생활을 보고 있으면 군인들이 따로 없었다. 맨 앞에 대장이 혼자 가면 뒤의 아이들은 나란히 두 줄로 따라가는데, 그 원칙을 고수들 하시다가 좁은 비탈에서 도미노 식으로 떨어지시는 오른쪽 줄 오리들을 구경하는 것은 나의 큰 기쁨이었다.

거위들은... 역시 자신들이 오리라고 생각하여 오리 무리들과 항상 어울렸다. 가끔 왕따 닭의 목을 물고 다닐 때만 닭들과 어울렸을 뿐. 밤이 되면 오리들 중앙에서 머리를 묻고 자다가 무슨 소리가 나면 얼른 그 긴 목을 들고 경계의 사이렌을 부는 것은 거위들의 몫이었다. 그리고 거위들의 역할은 또 있었다. 손님이 올 때마다 어무이는 거위를 마당에 풀어놓고 거위 춤사위를 선보였다. 하도 말썽을 일으켜 울타리 바깥으로 쫓겨난 거위들은 어무이가 부르면 밥이라도 더 줄까 싶어서 그 큰 날깨를 쫙 펴고 자체 사운드에 맞춰 날듯이 춤을 춰댔다. 거위 한 쌍은 언제나 똑같이 행동하기 때문에 산사춘의 보아춤 같은 어설픈 동작이라도 멋지게 보이기 마련이다.

근데 이 거위들은 왜 쫓겨났을까. 크면 클수록 그 건방짐이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사람들한테는 한없이 순하지만 다른 개들한테는 성깔이빠이인 보스개 청솔이를 너무 괴롭혀댔다. 청솔이는 자기 집 옆에 깔아준 짚에 고기나 뼈다귀들을 묻어놓았다가 나중에 먹는게 취미였기에, 다른 아이들이 가까이 오는 것을 너무너무 싫어했다. 그런데 그노무 거위들은 시간만 나면 감히 겁없이 청솔이에게 으르렁(맞나?)대고 물려고 접근하기 일쑤였다. 모든 개들을 평정한 청솔이지만 집 안의 새들에게는 절대 위협적인 모습조차 보인적이 없었는데, 결국 화가 머리 끝까지 난 청솔이가 거위의 그 긴 목을 정말 '살짝' 물어주었다.

피송송 (계란탁) 맺힌 목을 하고서도 정신못차리고 계속 덤비던 거위들은 쫓겨날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울타리를 한참 돌아가는 수고를 감수하면서까지 청솔이 앞 철망 밖에서 계속 메렁메렁 하는지라, 결국 아부지는 나무판으로 거위들이 다니는 길을 막아버렸다. 그 때는 개들이 많았는데도 거위들은 청솔이 하나만 찍어서 죽도록 갈궈댔다. 청솔이가 맨날 혼자 꿍쳐놓고 몰래 먹는 모습이 너무 얄미웠나 보다.

청솔이뿐이던가. 거위들은 기가 막히게도 여자만 보면 위협을 하고 지롤이었다. 아부지와 부라더에게는 그러지 않으면서, 어무이와 나만 보면 물려고 달려들었다. 밥주는 울 어무이도 철망 사이로 내민 주둥이에 물려서 팔뚝에 시퍼렇게 멍이 들기도 했다. 내가 등만 보이면 그 긴 목을 땅에 내리깔고 두 거위가 함 물어보겠다고 그 넓은 발로 탁탁탁탁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가까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뒤로 홱 돌아서 그 대가리를 발로 걷어차주면, 그 흔들림을 보면서 진자의 법칙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들과 나의 뜨거운 만남에는 막대기가 상비였다. 글케 노력한 결과............................. 나도 물렸다. 청바지를 입어서 멍은 안들었지만... 물려본 평을 말하자면, 악력이 참으로 대단들 하시다.    

그 이후로 나는 쓸데없이 여자남자를 구분하고 여자를 무시하고 뎀비는 특정 '남정네'들을 '거위대가리'로 규정하고 있다. 거위보다 못할지도... 왜냐면 거위들은 밥을 먹여놓으면 최소한 춤도 추고 집도 지키니까. 뭐라고요? 그 거위들 중 하나는 여자가 아니냐구요? 우리도 그런 줄 알았다. 무정란도 구경할 수 없어서 수상했지만, 거위는 알 낳는데 오래 걸리는가 보다하고 그냥 기다렸다. 암수 크기가 달라야 하는데 덩치도 똑같아서 수상했지만, 거위는 다 크는데 오래 걸리는가 보다하고 그냥 기다렸다.  

무지한 가족들이 깨닫는데까지는 한참이 걸렸다. 여지없이 그들은 남정네셨다. 판 사람도 모르고 팔았겠지. 몇년간 미운정 듬뿍 든 그들에게 그제서야 난 당시 영화 주인공 배우이름들을 선사했다. 해피 투게더의 양조위, 장국영이라고. 울집 양조위와 장국영은 지네끼리는 정말 금슬이 좋았기에, 영화에서 못다한 주인공들의 사랑을 이루어주고 싶었다. 울집 양조위와 장국영은 성관계도 만족스러우신 듯 했다.   

포유류만 좋아하는 나이기에 울집 조류들은 짱나는 대상이었지만, 가끔 거위들을 텔레비전에서 접하면 그 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경험도 없는 사람들이 그 많은 새들을 감당하기란 어렵기에 결국 마을잔치가 몇번 벌어졌고 그 아이들은 사라진지 오래다. 그렇지만 바라만 보고 있어도 하루가 금방금방 가던 그 때의 풍경이나 경험은 지금도 참 귀하다. 마지막까지 남았던 거위들이 없어진 걸 보고서 어무이께 잘하신 일이라고 말하긴 했지만, (뻔하겠지만) 어떻게 됐는지 차마 못물어봤고 지금도 모른다. 걔네들이 먼저 괴롭히긴 했지만, 내가 많이 팼던 게 미안하니까. 근데 닭들은 맨날 왕따 하나 만들어서 거의 죽여놓는 걸 봐서 여직도 정나미가 떨어진다. 그래서 내가 항상 치킨을 전투적으로 먹는걸까?  

여기서 슬픈 이야기 한토막...................... 울집에 놀러왔다가 거위춤을 보고 감명받은 지인 한 분이 농장을 하시는 아버님께 거위를 권해드렸다 한다. 집도 잘 지키고 춤도 춘다면서. 그러나 아버님은 가끔 말씀하셨다고 한다. "얘들이 집도 안지키고 춤을 안춘다?" 그래서 대답해 드렸다고 한다. "쩜만 기다려보세요!"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난 뒤에는 이 사실을 까먹으셨다 한다. 그리고 간만에 만났을 때, 내 얼굴을 보니 이제야 생각났다고 무릎을 뽀개셨다.

거위들이 춤을 추지 않은 이유.................... 그것은 이 분이 거위를 '타조'라고 말씀드려서, 아버님은 저 세상에 가실 때까지 그 큰 타조 한 쌍을 키우셨기 때문이다. 아버님 돌아가시고 키울 사람이 없어 타조를 잡아서 여기저기 다 나눠줬는데도, 당시에는 전혀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셨다 한다. 그 기다리던 거위재롱도 못보고 가신 그 분의 아버님을 생각하니 이 순간도 가슴이 찢어지누나. 자책하시던 그 분은 마지막으로 말씀하셨다. 타조고기는 포를 얇게 떠서 불고기를 해먹는게 맛나다고.......... 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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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겜보이 2005-08-31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헤헤헤 ^o^ 하하하하

비로그인 2005-08-31 1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없다는게 뭔지 깨닫으시려면 제게 오셔요.

2005-09-01 12: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05-09-01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날리님/우와 대단한 유머...
흰돌님/정말 웃기죠? 필자의 글솜씨가 보통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