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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운영 꽃밭에서 나는 울었네
공선옥 지음 / 창비 / 2000년 6월
평점 :
공선옥을 알게 된 것은 <수수밭으로 오세요>라는 작품을 읽으면서였다. 출판사에 있는 초등학교 동창이 소개해 줬는데, 나중에 내가 잘 읽었다고 얘기하니까 “그 작가, 자신이 실제 사는 모습도 그래”라고 말해준다. 소설이라는 게 상상력의 산물이기는 하지만, 작가의 체험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작품을 쓰기는 힘들 것이다. 나같은 재벌2세가 피폐된 농촌의 현실을 고발하는 소설을 쓸 수 없는 것처럼. 그 이후 난 공선옥이 내는 책은 거의 다 샀지만, 그 이전에 나온 책들은 살 생각을 못했다. 로드무비님의 이벤트가 아니었더라면 공선옥 자신의 삶을 담담히 기술한 <자운영 꽃밭에서 나는 울었네>를 읽는 행운을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이 책을 보내주신 로드무비님께 감사드린다.
-책을 읽기 전에는 생활에 찌들고 어렵게 살아가는 얘기만 나오면 어쩌나 싶었다. 하지만 그건 오해였다. 저자는 농촌의 훈훈한 인정을 실감나게 묘사하며, 농촌 마을의 풍경도 아름답게 그려낸다.
[..계절이 오는 소리를 듣습니다. 밤에도 울어쌓던 매미 소리가 그치고 이제 귀뚜라미 소리가 들립니다]
어릴 적, 목욕탕에 도사리고 있는 귀뚜라미에 놀라서 엄마를 부르며 도망간 적이 있다. 그러고보니 귀뚜라미 본 지도 꽤 오래 되었다.
저자는 농촌 모습을 통해 우리에게 교훈을 주기도 한다.
[도회에서 온 내 친구들이 골목에 휘늘어진 감나무의 감들을 보고 감탄사를 연발한다....다만 감탄의 이면에 누군가의 한숨도 있다는 것을...알았을 때...세상은 정말로 아름다워지고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옛날 생각이 난다. 내가 밥을 깨끗이 먹지 않을 때마다 엄마는 “농부가 밥 한톨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애쓴 줄 알아?”라고 말씀하셨다. 그것도 너무 오래 잊고 살았다.
-저자의 삶이 그녀가 쓴 소설 곳곳에 묻어나는데, 그 중 한 대목이 기억에 남는다. “둘째아이를 낳아놓고 생계가 막막하여 두 아이를 업고 걸리고 해서 맨주먹으로 상경한 적이 있었다” 제목은 기억이 안나는 어느 소설에서 공선옥은 젖먹이 때문에 취업이 안되자 젖먹이를 복지원에 맡겼다가 다시 빼앗아오는 여인네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그땐 그러려니 했는데 지금 보니 그건 자신의 얘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공선옥에게 찾아와 폐만 끼치고 간 무례한 독자 얘기가 나온다. 독자는 작품을 통해 작가를 만나는 게 원칙이라는 생각에 독자와의 만남을 한사코 회피하려는 공선옥의 입장을 지지하지만, 한가지 이해 안가는 것은 공선옥의 작품을 읽으면서 어쩜 그렇게 무례할 수가 있는가이다. 독자가 맞기는 맞는 거야?
-“서른여섯 나이에 스물여섯 큰아기한테 장가를 들어”란 구절에 눈이 번쩍 뜨였다. 하지만 난 서른여섯을 넘겼다. 이런이런.
공선옥은 “작가의 촉수”가 “모든 아픈 사람들, 지금 울고 있는 사람들”에게 닿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녀가 더 이상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할 민중들의 삶에 천착하는 이유도 자신의 소신을 실천하기 위함일 것이다. 상금으로 내걸린 5천만원이 절실히 필요하지만, 조선일보의 해악을 지적하며 감히 ‘동인문학상’을 거부한 공선옥, 그녀의 책이 좀 더 많은 사람에게 읽힐 수 있는 그날을 꿈꾸며 난 오늘도 그녀의 책에 별 다섯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