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미널>을 봤다. 상영이 거의 끝날 때라 메가박스 12관의 조그만 홀에서 봤는데, 그런 데서 보면 꼭 비디오방에 온 느낌이 든다. 영화를 먼저 보신 분들이 핵심을 찌르는 말씀을 많이 해주셨겠지만, 영화를 보고 느낀 점을 몇 개만 쓴다.
-자막이 오른쪽 위에 나오는 시스템은 별로 안좋은 것 같다. 위쪽은 대개 하늘이 잡히니 밝기 마련이고, 밝은 곳에 씌여진 흰 글씨는 잘 안보인다. 안보이는 글씨를 보려고 눈을 부릅뜨고, 그래도 안보여서 영어를 듣고 해석해 보려고 했지만, ‘잔돈은 너 가져라’라는 구절 말고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둘걸 그랬다.

-전형적인 탐 행크스 표 영화다. 인간애에 호소하면서 감동을 자아내려고 애쓰는 그런 영화. 내가 감동의 역치가 낮아서 그런지, 아니면 탐 행크스의 연기가 워낙 훌륭해서 그런지, 난 대충 만족했다. 다만 결말이 영 이상했다. 찍다가 돈이 떨어졌었는지, 아니면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그랬는지 서둘러 마무리를 한 느낌이다. 탐 행크스가 그 여자랑 잘 안되는 게 훨씬 더 현실과 가깝긴 하지만, 보는 관객으로서는 아쉽다. 하이라이트가 되어야 할, 재즈 가수가 싸인을 하는 장면도 보여주지 않는다. 왜 그랬을까.
-내가 뿌듯함을 느끼는 두가지 버전이 있다. 하나는 <귀여운 여인>에서 억만장자인 리처드 기어가 거리의 여자인 줄리아 로버츠에게 엄청난 옷을 사주는 장면. “얼마든지 사라”고 하는 표정엔 여유가 묻어난다. 그럴 때면 ‘나도 저러고 싶다’는 생각이 불끈... 또다른 버전이 그다지 변변치 못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지만 서로 연대해서 아름다운 결실을 맺을 때. 공항의 하급 직원들이 <터미널>에서 베란다에 칸탈레나 식당을 차려놓고 행크스와 그 여인에게 서비스를 하는 장면은 진한 감동과 재미를 내게 선사했다. 물론 두 버전 중 후자가 훨씬 더 뿌듯하다.
-인상적이었던 대사.
국장: 왜 하필이면 그 친구(탐 행크스)죠? 댁같은 미인이라면 누구든 사로잡을텐데.
스튜어디스: 댁과 같은 종류의 사람은 절대 이해 못하죠.
내가 재미있게 본 <지존무상>에서 알란 탐이 도박판에 뛰어들면서 했던 말, “부자들은 절대로 이해 못하는 게 한가지 있죠”를 연상시킨다.
-지금사 알았는데 감독이 스필버그다. 신기주 기자에 의하면 스필버그가 이 영화를 만든 이유는 다음과 같단다.
[스필버그는 자신뿐 아니라 모든 미국인들에게 충격을 줬던 2001년 9.11 테러를 생각했다. 그는 참사 이후 미국이 본래의 모습을 잃고 자국민들과 전세계 사람들에게 너무 포악한 나라로 여겨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미국은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야만 했다. “<터미널>엔 다양한 사람들의 위대한 혼합물인 미국을 찬양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그는 또 이렇게 덧붙인다. "지금은 좀 더 웃을 수 있는 이야기가 필요한 시기다. 그리고 할리우드영화들은 이 어려운 시기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그 역할을 해야만 한다.” ]
이걸 읽으니 영화에서 받았던 감동이 약간은 퇴색한다. 그래봤자 미국은 포악한 나라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