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향신문에 글을 쓴 지 3년째에 접어들었다.
현 정부가 워낙 많은 일을 해준 덕분에 소재 구하긴 별로 어렵지 않았는데,
가끔씩 이런 회의가 들었다.
내 글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라는.
내가 신문에 나는 게 제일 기쁘시다는 어머니한테 효도할 수 있다는 걸 제외한다면,
현 정권의 삽질을 마냥 비아냥대는 게 우리 사회에 쥐꼬리만큼의 기여라도 하는지 늘 의문이었다.
1) 25층 여자분
그런 내게 위안을 준 이는 이전 아파트 같은 동에 살던 한 여자분이었다.
같은 엘리베이터에 탔을 때 그녀는 "칼럼 잘 읽고 있어요. 팬이어요"라고 말해줬다.
하필이면 누추하게 차려입었을 때라 그런 말을 들으니 쑥스러웠는데,
그 다음에 만났을 땐 훨씬 더 놀라운 말을 해준다.
"원래 어머니가 ㅈ일보 보셨는데 선생님 칼럼 때문에 경향으로 바꿨어요."
뭐라고 답을 했는지 기억은 안나지만, 주변이 환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내 글이 약간의 기여는 하는구나, 전혀 쓸모없는 건 아니구나는 생각에
그날밤 뿌듯한 마음에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2) 집주인
이사갈 생각이 없던 시절, 집주인과 통화한 아내가 이런 말을 해준다.
"그 사람이 여보를 안대. 칼럼 잘 읽고 있다고 하던데?"
처음 전세계약을 할 때, 나보다 어린 남자가 집주인이란 것에 주눅이 들었고,
괜히 시샘하는 마음도 생겼었는데
그 얘기를 들으니 생각이 달라진다.
"어, 그래? 참 생각 깊고 훌륭한 사람이네?"
몇 달 후 전세기간이 끝났을 때 그가 "올리지 않을테니 당분간 있어라"며 편의를 봐준 것도
내가 칼럼을 쓰는 걸 알았기 때문이라고 맘대로 해석해 버렸다.
그러니까 칼럼을 쓴다는 건 전세금을 동결시키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3) 졸업생
교양과목 시간에 인연을 맺었던 제자가 있었다.
졸업 후에도 가끔씩 연락을 주던 그 여학생-졸업을 했지만 마땅한 호칭이 없어서-은
상담할 게 있다면서 천안까지 내려왔다.
청첩장을 주기에 "결혼하는군요!"라고 했더니 그 다음 말이 좀 충격적이었다.
"저, 주례 좀 부탁드리려구요."
사람이 나이가 들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중 하나가 주례 부탁을 받을 때고,
그럴 때 거절하는 이유도 스스로는 나이가 안들었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이 아닐까?
나 역시 말도 안된다며 거절하려 했는데 그녀가 이런다.
"저랑 신랑될 사람이랑 모두 교수님 칼럼 팬이어요."
그녀가 나랑 이념이 같다는 건 알고 있었다만,
신랑도 요즘 보기드문 멋진 남자를 고른 모양이다^^
난 흔쾌히 수락을 하면서
그 예식장에서 파워포인트가 되는지 알아봐 달라고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재미를 모두 쏟아부은, 그러면서도 유익한 슬라이드를 만들어 봐야지.
이런 기회를 얻은 것도 다 칼럼을 쓰기 때문,
그러고보면 칼럼을 쓴다는 건 많은 이들과 소통하는 것이고,
독자는 물론이고 나 스스로도 변화시킬 계기를 얻는 길이기도 하다.
자부심을 가지고 힘닿는 데까지 열심히 써보기로 마음을 다잡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