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지가 우리 집의 탄압을 집중적으로 받기 시작한 것은 3년쯤 전부터다. 내가 혼자 이러고 있는 것을 벤지 탓으로 몰아붙이던 어머니와 할머니는 나이가 든 벤지가 마루에 소변을 보기 시작하자 대대적인 탄압을 가한다. 일주일에 한번씩 일하러 오시는 아주머니까지 가세하는 날에는 벤지 성토대회가 벌어진다.
할머니: 저것이 죽어야 해! 이번 여름에 칵 죽어라!
어머니: 어유, 아직도 생생한 게 여름도 넘길건가봐요.
아주머니: 벤지 때문에 집안 꼴이 난리야, 난리!

외환위기 때 개를 버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때 엄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떻게 키우던 개를 버리냐. 아주 나쁜 것들이야!" 하지만 엄마는 지금 잘 짖고 잘 먹는 벤지의 안락사를 이야기한다. "이렇게 오래사는 개가 어딨냐. 안락사를 시키는 게 벤지에게도 좋아" 하지만 안락사라는 게 사는 게 더 고통일 때 고려하는 것이지, 지금처럼 멀쩡히 자기 할 일-소파에서 자다가 내가 깨우면 꼬리치기-을 하는 벤지에게는 생각해볼 가치도 없다. 그리고 우리 할머니, 무려 78세인 할머니가 벤지를 보고 "늙으면 죽어야 해!"라고 소리치는 건 분명 아이러니다.

어머닌 아침에 일어나고 나서 늘 비명을 지르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부엌 쓰레기통 앞에 벤지가 밤사이 오줌을 싸놓곤 하는데, 그걸 보고 그러시는 거다. 처음에 몇번은 그럴 수 있다. 밟기라도 하면 얼마나 찝찝한가. 하지만 어떻게 매일같이 비명을 지를 수가 있는지 난 이해가 안간다. 벤지가 오줌싸는 자리는 늘 일정하니 불을 켤 때 마음의 준비라도 하면 될텐데, 어찌된 게 매번 "으아아---민아, 빨리 와서 여기 좀 닦아!!!" "내가 못살아! 내가 먼저 죽겠다!"이다. 그럴 때마다 난 "벤지가 살면 얼마나 더 산다고 그러냐"고 하지만, 그게 3년째가 되니 말발이 잘 안먹힌다.

올해 2월쯤, 방안에 벌레들이 득실댔다. 엄마는 벤지가 오줌을 싸고 밥그릇이 마루에 놓여 있으니 그렇다고 하시면서, 벤지를 없애야 한다고 하셨다. 벤지가 하루이틀 있던 것도 아닌데 왜 하필 올해 그런 일이 있을까? 할수없이 시스코인가 하는 곳에 연락을 했더니 수십만원의 견적을 부른다. 그게 아깝다면서 엄마는 아주머니와 벌레의 원산지를 하루종일 추적했고, 그 결과 쌀독의 반이 그 벌레로 채워져 있음을 발견했다. 벤지는 누명을 벗었지만, 엄마는 벤지에게 미안하다고 하지 않으셨다.

얼마 전부터는 개미가 끓기 시작한다. 수십마리의 개미들이 식탁에 기어다니니, 밥맛이 나겠는가? 엄마의 진단은 역시 벤지, "개 밥그릇을 니가 식탁에 놓으니 개미가 몰리는 거다" 하지만 지금까지 십수년간 벤지는 같은 생활을 했다. 더구나 마루에 놓인 벤지의 밥그릇에는 개미가 얼씬도 안한다. "벤지가 오줌을 싸니까 개미가 온다"는 말도 하신다. 하지만 그것도 하루이틀인가? 오늘 아침, 식탁에 놓인 윌(헬리코박터 어쩌고 하는 거)의 빈통에 개미 수백마리가 드글대는 걸 봤다. 난 그걸 엄마한테 보였다. "엄마, 보세요. 이게 주범이어요" 엄마는 이번에도 진단이 틀렸음을 인정하지 않았다. "벤지 때문에 그런 것도 있어!"라며. 출근을 하려다 현관을 보니 개미들이 떼로 몰려온다. 옥상에서 내려오는 모양이다. 일단 옥상에 있는 개미 소굴에 약을 써야겠다. 벤지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서라도. 그거와 상관없이 벤지에 대한 엄마의 탄압은 계속될 것이다. 벤지가 살아있는 한. 휘이익!!

* 지난번에 선을 본 것은 벤지를 그만 탄압하라는 취지였는데, 그 효과는 불과 사흘을 못갔다. 그래서 난 더 이상 선을 보지 않기로 했고, 이번주에 예정되었던 선도 취소했다. 응징이다. 으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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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산 2004-06-08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근데, 그게 '응징'이라는 것을 어머님께서는 아시나요? ^^

플라시보 2004-06-08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쯪쯪 불쌍한 벤지. 그렇게 오래 길렀으면 어머님께서 벤지와 정이 들만도 하건만. 아무튼지간에 님이 중간에서 역활을 잘 하셔야겠습니다. (그나저나 세스코에서 가정집 견적을 그렇게 많이 부르나요?)

panda78 2004-06-08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게 과연 응징일까요? ㅋㅋㅋ
개미는 많이 다니는 길에 개미약 몇 번 갈아주면 싹 없어지던데..
세스코는 생각보다 많이 비싸군요. 예전에는 7-8만원이면 한다고 그러던데.. ㅡ..ㅡ;;

2004-06-08 14: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groove 2004-06-08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악 벤지 너무 서글프네요 늙은것도서러운데 구박까지 감당해야하다니!!
마태님이 혼자서고생좀하시겟습니다 으하하하.

starrysky 2004-06-08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있잖아요.. '선'을 미끼로 한 어머니의 거짓 약속에 속으시면 안돼요. 저도 선만 한번 보면 뭐도 해주고 뭐도 사주고 한다던 약속을 순진하게 믿고 선자리에 쭐래쭐래 나갔다가, 애프터 거절했다는 이유로 약속 이행은 커녕 된통 욕만 먹었습니다. -o-

마태우스 2004-06-08 1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tarry님/오, 님에게도 그런 아픈 상처가? 엄마는 알라딘에 그런 글이 오른 줄도 모르고, 오늘 또다시 선을 보라고 회유를 하시더군요^^
groove님/제가 더잘해야죠. 오늘 술두 안마시고 일찍 왔잖습니까. 하핳.
플라시보님/님의 격려는 언제나 저에게 큰 힘이 됩니다. 벤지에게두요.
panda78님/저희 집이 좀 넓어야 말이죠....글쎄 수십만원을 달라더군요. 근데..개미약은 뭘 쓰면 됩니까? 꼭 가르쳐 주세요!
쥴님/음..님은 개를 싫어하시는군요. 저희 어머님처럼요.
가을산님/어머님이 잘 모르시는 것 같아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그렇게 탄압하면 선 안본다구요. 그랬더니 앞으로 잘하겠다고 한번만 더 보라고 하시더군요. 이번엔 안속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