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지옥 1
권지예 지음 / 문학사상사 / 2004년 3월
평점 :
품절


<나의 아름다운 지옥>은 가난한 집의 딸인 혜진이 성장하면서 겪었던 일들을 담은 소설이다. 저자 자신의 얘기가 아닐까 싶지만, 작가들은 언제나 자기 얘기인 것처럼 글을 쓰는 재주가 있으니 액면 그대로 믿어서는 안될 것이다. 작가의 말이다. "한 여자아이가 세상에 한 여성으로 태어나기까지 그녀에게는 얼마나 많은 타인들의 삶의 편린들이 아프게 들어와 박히는 걸까(5쪽)" 글쎄다. 여성이라는 굴레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내가 보기에 주인공을 괴롭혔던 건 주로 '돈'이었던 것 같은데. 저자의 말에 딴지를 걸기엔 내 내공이 턱없이 부족하니, 이 책에 나오는 남자들 얘기나 해볼까 한다.

먼저 아버지. 주인공네 집이 원래 돈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군인인 아버지가 월남전에서 돈을 많이 벌어 서울에 집까지 샀으니까. 군에 그냥 있었으면 좋을 것을, 아버지는 가진 돈으로 양봉사업을 시작한다. 결과는 이렇다. [아버지는...완전 실패를 보고 서울로 올라와...한 친구의 의류 도매업에 기세좋게 뛰어들었다. 그러나 그 친구가 돈을 챙겨 줄행랑을 치는 통에...소판 돈과 급전으로 꾼 돈을 모두 날리게 되었다] 그 후 아버지는 "친구 사무실에 노상 출근하다시피 나가 바둑이나 고스톱으로 소일"하고, 어머니는 집에 세를 놓고 근근히 살림을 꾸린다.

없는 살림에 애들 등록금이 몇 달씩 밀리는 마당, 하지만 아버지는 "시골의 마지막 황소를 팔아 행정대학원에 등록을 했다" 아버지의 말이다. "사업상 중요한 투자이며 정치적인 경력으로서의 필수" 양복을 여러벌 맞추고, 자주 택시를 타고 출퇴근하는 데 이르면 이 사람이 제정신인가 싶다. 전세금까지 다 빼먹고, 빌린 돈은 자주 불어나며, 동네 아줌마들한테서 일수돈까지 얻어 쓰는 판국에. 아버지의 말이다. "이번엔 된다니까!" 번번히 사업자금을 요구하는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는 마지막 재산이었던 말죽거리 땅을 팔려고 한다. 어떻게 되었을까. "하도 쪼들려서 빚도 쪼매 정리하고 숨통 좀 틀라고 했는데 세상에...그게 말이다. 벌써 남의 손에 안 넘어갔나. 몇 년 전에 버얼써! 집 말고는 마지막 재산인데 요새 거기 땅값이 얼매나 무섭게 오르나 말이다" 그것도 사업하느라 그런 게 아니라, 친구 빚보증 서다 그랬다니 읽는 나도 기가 막힌다. 항의하는 어머니를 남편은 남자 기 죽인다고 두들겨 팼다니, 말문이 막힐 지경.

그래도 어쩌겠는가. 어머니는 용서를 하고, 남편은 다시 사업을 벌인다고 돈을 뜯어낸다. 사채까지 빌려서 양복점을 내게 해줬는데, 웬일인지 그게 제법 장사가 되었다. 그 돈을 집에다 갖다줬을까? 물론 아니다. 아버지는, 바람을 피우기 시작했다. 어떤 여자와? 고모의 말이다. "시상에 만상에, 어째 그래 박속처럼 훤하고 곱드노. 하는 짓마다 간을 녹인다카이. 꼭 젊었을 때 최은희랑 똑 닮았디라" 고모는 덧붙인다. "열 계집 마다하는 사나가 어디있나. 사나라는 짐승이 마카 그란 걸 우짜노. 자네가 과분하게 잘난 사나캉 사느라 다 겪는 일이니 참아야제"

그런 아버지는 결국 결정타를 날린다. 의류업이 망하고 다시금 손댄 군납사업이 잘 안되어, 어머니는 "집을 담보로 은행 빚을 내야" 했다. 결말은 이렇다. "아버지는 부도를 내고 어디론가 몸을 피신했고, 엄마는 빚쟁이들에게 시달려 밤이면 부엌에서 혼자 소주병을 들이키며..."

두 번째로 콧수염. 세들어 술집을 낸 여자는 처녀시절 콧수염을 만나 애까지 낳는데, 어느날 그 남자는 도망갔다. 알고보니 콧수염은 유부남에 애가 둘이나 된다. 그쯤되면 정신을 차려야 하건만, 콧수염이 술집에 찾아오니 무지하게 흥분, 남편을 대하듯이 대한다. 대접을 잘 받던 콧수염은 결국 술집에서 일하는 18세 처녀를 유혹해 그녀와 잔다. 그 일로 여자는 처녀와 대판 싸우지만, 처녀는 이런다. "내가 먼저 꼬신 게 아녀. 아저씨가 먼저지!" 남자란 그런 동물이건만, 여자들은 왜 한번 속고도 또 속는 걸까. 주인공의 어머니도 아버지가 사업에는 문외한이란 걸 깨닫고 돈을 대주지 말았어야 했다. 어리석은 여자에 뻔뻔한 남자들, 소설 한편 읽고 왜 흥분하냐고 하겠지만, miclub이란 곳에 가보면 이런 류의 사연은 너무도 많다.  뻔뻔한 게 훨씬 더 나쁘긴 하지만, 어리석은 것도 죄이긴 하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태우스 2004-05-25 1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이책 읽고 싶어서 그저께 학교에 신청했는데....님은 벌써 읽으셨군요,,,

마태우스 2004-05-25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소문을 들어오다가 발간되었다는 소식에 지난주에 구입했습니다.
근데 세일즈포인트 장난 아니데요! 발간 1주 만에 4950!

마태우스 2004-05-25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가 있다니 갑자기 읽기 싫지만 그래도 읽어볼랍니다. 추천^^

chaire 2004-05-25 1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 님, 혼자 왜 이러구 계시는 거예요?(누가 속삭였나?)

마태우스 2004-05-25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카이레님! 혼자 장난 좀 쳐봤습니다. 속삭인 사람 없어요. 죄송합니다. 흐흐흑. 모두들 제 리뷰를 외면하기에...

쎈연필 2004-05-25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저 뒤집어지도록 웃었습니다......
마태우스님 코멘트 놀이 정말 재밌네요!! 추천!!! (리뷰 추천이 아니라 코멘트 놀이를 마음으로...)

사비나 2004-05-26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재밌게 읽었습니다. 동생이 죽고 나서 까맣게 변한 베개속 얘기가 나올땐 눈물이 나던걸요. 주인공의 연애는 시덥잖지만 나름대로 공감가는 부분이 많은 성장소설이었습니다.

나무 2004-05-26 2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재밌는 분들이당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