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호밀밭 > 여성이 뭔데?

어제 명세빈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결혼하고 싶은 여자>를 보았다. 32살의 여성 셋이 주인공이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 신영은 꼭 결혼을 해야만 하는 사명감에 불타는 여성이다. 그녀는 돈과 남편이라는 양자 선택의 기로에 선다면 남편을 선택하겠다고 말하는, 내 기준에서 보면 특이한 기준을 가진 여성이다. 남들 다하는 결혼 뭐하러 하려고 하냐고 물으니까, 남들 다 하는 거 혼자 못하면 상대적 박탈감 느낄까 봐서라고 대답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여성은 꼭 결혼을 하는 것이 좋다. 상대적 박탈감은 우울한 인생의 동반자다.

이 드라마 아기자기하게 재미있다. 경쾌한 톤을 유지하는 것과 화면이 밝은 게 마음에 든다. 하지만 노처녀를 집안의 애물단지로 보고, 뭔가 성격적인 문제가 있다는 시선으로 보는 느낌이 조금 있어 마음에 걸리지만 사실 그런 시선이 있기는 있으니 어쩔 수 없다. 인생에서 남의 시선을 쏙 빼고 내 느낌과 생각만으로 행복해 하며 살 수는 없는 거니까.

<섹스 & 시티>에도 나오는 말이지만 괜찮은 30대 독신 남자들은 없는데 괜찮은 30대 독신 여자들은 많단다. 괜찮은 남자들은 이미 다 뽑혀서 결혼에 안착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괜찮은 여자들은 왜 그대로인데? 남자에게 결혼이 날개를 달아 주기 쉽다면 여자는 있던 날개도 부러지기 쉽다는데 절반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머지 절반은 기타 등등의 이유일 것이다. 물론 결혼 후 날개가 아니라 비행기를 타듯 고공으로 수직 상승하는 여성도 있겠지만 일반적으로는 여성이 해야 될 몫이 결혼에는 많이 있다. 

4월달에 여성 영화제에 갔다 왔다. 여성 영화제의 구호는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자> 였다.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게 어려운 걸까?

여성을 알자는 뜻일까? 가끔 영화 속에서 여성의 성기를 들여다보는 장면이 있다. <후라이드 그린 토마토>에서는 남편에게 사랑 받지 못하는 여성인 케시 베이츠가 무슨 수업을 들으면서 거울로 성기를 본다. 강사인 듯한 여자가 우리 모두 거울을 통해 그곳을 들여다보자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처녀들의 저녁 식사>에도 진희경이 목욕을 하다가 불안정한 자세로 성기를 들여다보다 팔이 부러진다. 이번 영화제에서 상영된 영화 중에 <지옥의 해부>에서 내가 볼 수 없는 부분을 들여다 봐 달라고 여자는 남자에게 거래를 한다. 그런 장면들이 말하는 건 무얼까? 남녀간의 차이의 근본을 알자는 건가? 여성들이 모르는 자신의 육체를 완전히 이해하자는 것일까? 자신의 육체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자신감으로 나타날 수도 있으니까 후자에 가까운 이야기일 것이다.

세상의 온갖 잡스러운 기사들을 다 모아 놓은 잡지에는 여성지라는 이름을 주고, 시사니 경제니 하는 기사들을 모은 잡지는 남성지로 불린다. 여성지에 실린 기사는 남녀 모두가 궁금해 하는 내용들이다. 인간이 궁금해하는 내용이란 것이다. 여성이 아니라. 물론 요리, 인테리어, 육아는 여성이 책임지는 부분이 많으니까 여성지라고 이름이 붙을 수도 있지만 여성을 소비와 온갖 소문의 중심에 두는 건 뭐지?

여성을 수동적으로 보는 건 서양도 마찬가지이다. <프랜즈>에서는 피비가 먼저 마이크에게 청혼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것도 어찌어찌하다고 그렇게 된 것인데 농구장에서 청혼을 하려는 피비를 보고, 주변 사람들은 결혼하면 남자를 꽉 쥐고 살겠다면서 놀린다. 사람들은 마이크보러 달릴 것 안 달렸나고 놀리고, 가랑이 허전한 사람이라며 살짝 비웃는다. 청혼은 여성이 해서는 안되는 금기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왜? 청혼은 전통의 영역이고, 이건 늘 남자의 몫이었다는 것이다.

<홍등>에 보면 남자가 여러 명의 첩을 거느리고 그날 밤 잘 부인의 방에 홍등을 켜게 하는 장면이 나온다. 지금은 그 시대에서 멀찍이 온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이혼하는 커플 중 배우자의 외도로 이혼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런데 남자의 외도가 아니라 이 경우에는 여자의 외도인 경우가 많단다. 이유는 남자의 외도는 눈 감아 주기도 하는데 여자가 외도하면 눈 감을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외도하는 쪽은 남자가 더 많단다. 맞바람이 여권 신장과는 상관 없다. 외도에 대해 이중적 잣대를 갖다 대는 게 문제겠지.

영화에서 여성의 모습은 가장 왜곡되기 쉬운 존재이다. 김기덕 영화에서 모든 여자는 창녀이고, 헐리우드 로맨틱 코미디에서 여주인공은 신데렐라 지망생이거나 바보 온달을 구하는 평강공주들이다. 괜찮은 놈 만나 결혼하거나, 모자라고 부족한 놈 만나서 변화시키거나. 연극 작품에서도 모든 남자들을 포용하는 창녀나, 자신의 자식에게 헌신하는 어머니들이 주를 이루는 배역이다.

마음에 드는 주인공들도 있다. <초콜렛>의 줄리엣트 비노쉬의 모습도 괜찮다. 자신의 가게를 가지고 있고, 기술을 가지고 있으며 아빠 없이도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는 경제력과 정신력이 있다.
<미술관 옆 동물원>의 춘희는 자신만의 공간도 있고, 직업도 있고, 미래를 준비하는 열정도 있다. 그녀의 짝사랑은 자기 만족인 부분이 많기 때문에 비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여성이 남성과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것 자체가 모순이다. 남성과 여성은 너무나 다르다. 그 다른 것을 제대로 표현하는 것이 여성을 이해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예전에 읽었던 하루 종일 일하는 전원일기 여자들이라는 칼럼처럼 쉬지 않고 소처럼 일하는 여성이 여성의 본모습은 아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치장하고, 또 치장하는 여성들이 여성의 본모습도 아니다. 그냥 피곤하면 소파에 널부러지고,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미래를 계획하고 꿈꾸는 것, 모든 인간이 그런 것처럼 여성도 그렇겠지 생각하면 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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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4-05-08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밀밭님의 서재에 들렀다가 퍼왔다. 보석같은 서재를 발견한 느낌이다. 님께서 먼저 와주신 것에, 그래서 나도 가볼 수 있게 된 것에 감사드린다.

호밀밭 2004-05-08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이 여기 와 있으니 조금 당황스럽네요. 제가 논리는 부족한데 우기기는 잘해서 가끔 남들이 볼 때 뜬금없는 글이나 말을 한답니다. <결혼하는 여자>가 재미있기는 한데 가끔 노처녀를 사회적인 문제아로 보는 듯한 말을 하곤 해서 그냥 떠오르는 것들을 써보았어요.

연우주 2004-05-09 0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글 정말 좋은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