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약속이 없어 집에 일찍 왔다. 일찍 오니 세상이 아름다웠다. TV로 농구를 보면서 러닝머신을 하고, 엄마가 차려주신 맛있는 식사를 하고, 벤지와 간만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게다가 그간 밀린 글들을 몇편 썼으며, 100분 토론까지 볼 수 있었으니, 정말 아름다운 세상이 아니겠는가?

요즘은 토론을 볼 때 참석자들을 따져가며 본다. 뭔가 대단한 인물, 예를 들어 "파병을 해서 미국을 감동시켜야 한다"던 송영선이나, "난 기업인이다!'라고 선언했던 박상희 등이 토론에 나오면 꼭 보고, 안그러면 책을 봐버린다. 어제 멤버엔 박상희급 인물이 없었지만, 그래도 충분히 즐거운 토론이었다고 생각한다. 왜? 자민련의 유 모라는 사람 때문에. 사실 난 자민련 소속으로 누가 나오면 참 안됐다는 생각이 든다. 지지도 1%도 안되는 정당에 몸을 담는 것도 그렇고, 그 정당의 말도 안되는 짓거리를 온몸으로 커버해야 하니까. 지난주에 나왔던 자민련 사람도 김경재로부터 "자민련은 언급할 가치가 없습니다"라는 모욕적인 말을 들었지 않는가. 그런데 어제 나온 사람은 일말의 동정을 갖기엔 지나치게 '확신범'이었다. 그는 마치 자기만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듯했는데, 자민련은 어떻게 그런 사람을 구했는지 능력도 좋다. 그의 활약상을 보자.

"여론조사는 우리가 꼴찝니다. 여론조사의 신뢰도는 믿어줘야겠지요. 하지만 자민련 옹호층은 보수층이라, 여론조사에 잘 응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여론조사를 할 때 50, 60대가 받으면 끊어버린다고 합니다"
뭐야, 여론조사를 믿는다는 거야, 안믿는다는 거야? 손석희가 질문을 하자 이런 대답을 한다. "여론조사 방법이 자민련에게 불리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대답엔 그냥 웃어주자. 음하하하.
"지난번 총선 때도 지지율이 1%였습니다. 하지만 실제 득표율은 10,8%였습니다!" 그러니까 이번에도 충청권에 자민련 바람이 불거라는 얘긴가보다. 글쎄다. 그럴 수 있을까?

여론조사를 불신하는 건 그렇다 치자. 공부 못하는 애들이 꼭 "공부 안한 데서 시험문제가 나와서"라고 하지 않는가. 내가 그를 확신범으로 확신한 건 다음 말이었다.
"촛불시위에서 민주수호를 외칩니다. 그 민주가 자유대한의 민주냐, 북한의 민주냐?"
거의 멸종한 줄 알았던 수구냉전론자를 찾아서 공천하는 자민련의 능력, 솔직히 존경스럽다. 그의 열변은 계속된다.
"세계는 우경화하는데, 우리만 좌경으로 가고 있다. 그 속에서 진보가 나오고 민주가 나온다"
이 상황에서 이상현 민노당 대변인의 말은 참으로 적절했다. "그러니까 자민련이 수구라고 하는 거다"

이쯤 되면 그만할 법도 한데, 그냥 물러나면 확신범이 아니다.
"촛불시위엔 많은 의혹이 제기되고 있어요. 참석자가 노사모, 시민단체...게다가 열린우리당에서 버스를 동원하고... 저도 한번 가봤는데요, 촛불을 개개인이 가져오지 않고 나눠주더라구요. 13만개면 한 개에 1000원이라도...얼맙니까? 그 13만이 자발적으로 나왔냐, 전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가본 사람은 알겠지만, 초는 재활용을 하고, 참석자들이 자발적인 성금을 낸 돈으로 산다. 한번도 자발적인 지지자를 만난 적이 없는 자민련 지지자야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겠지만, 자기가 그랬다고 남들도 다 그러는 건 아니다.

사실 촛불집회는 자발적이지 못한 구석이 많이 있다. 남들 다 노는 주말에 광화문 바닥에 쪼그려 앉아 떨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는가? 썩어죽일 놈들이 탄핵을 하고, 실업자나 간다고 계속 자극을 해대니까 할수없이 나가는 거 아닌가. 다른 것도 다 그렇지만, 자민련 그사람은 정말 문제가 있다. 어떻게 "우리 당은 탄핵에 반대했습니다"라는 말을 하는 걸까? 그 193명의 쳐죽일 놈들 중 자민련 10명이 포함된 건 세상이 다 아는데, 여론이 안좋으니까 계속 "탄핵에 반대했습니다?" 자신이 한 짓거리에 대해 책임을 지게나. 참고로 남들은 '한-민-자'라고 부른다네. 하지만 그 뻔뻔한 인간은 시중에 떠도는 말이라고 전제한 뒤 "한나라당, 민주당이 노문현과 열린우리당이 쳐놓은 덫에 걸렸다. 믿고싶지는 않지만"이란 헛소리를 했다. "탄핵의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습니다. 한게 뭐가 있습니까?"는 그런대로 들어줄 만 하지만, "탄핵은...끌어내리려 한 게 아니라 경각심을 주려는 것"이라든지 "탄핵정국의 해법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있다"는 말은 그저 웃음만 나온다. 아니 겨우 경각심을 주려고 이 난리 부르스를 췄던 건가?

참, 한가지가 더 있다. 민주노동당 대변인에게 "민주노동당은 노동자를 위한 당이지, 국민의 정당은 아니다!"라고 말한 것. 분위기가 어수선해 묻혀 버렸지만, 이거야말로 자민련의 실체를 잘 나타내 주는 거라고 생각한다. 노동자는 그럼 국민이 아니란 말인가? 1천만 노동자 운운하지만, 나처럼 월급받고 사는 사람은 사실 다 노동자, 그렇다면 자민련이 생각하는 국민은 사장이랑 자영업 하는 사람들 뿐인가?

자민련에게 가려서 빛을 보지 못했지만, 유종필 민주당 대변인도 참 측은했다. "선거는 선거다. 탄핵만 가지고 투표하지 말"잔다. 탄핵 후 지지도가 급락하니 이따위 소리를 하는데, 탄핵이 지들 말대로 정정당당하고 옳은 일이었다면 탄핵을 이슈로 총선에 임해야 하는 거 아냐? 심지어 이런 말도 한다. "헌재에 따른다는 승복선언을 해야 한다!"
아니 헌재 결정을 따르지, 누가 안따른다고 했나? 손석희가 되묻자 이런 답변을 한다. "촛불집회가 지금 압력의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고... 결정이 불리하게 나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고..."
아이고, 정말 걱정도 팔자다. 니들 총선에서 박살나면 뭐먹고 살지 그거나 걱정해라.

한나라당 은진수는 그런대고 말이 통하는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한나라당 치고는 그렇다는 거지, 평균적인 국민수준에 있다는 건 아니다. 열린우리당이 250석을 얻을 것 같다느니, 그래서 일당독재가 우려된다는 말은 일당독재의 폐해를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한나라당 애로서는 할 말이 아니지 않을까? 지가 250석을 얻을 것 같다고 말해놓고선 갑자기 "열린우리당의 50%는 거품입니다"라고 하는 걸 보면, 자기도 굉장히 헷갈리나보다.
"우리도 좋은 신인들이 많이 있는데, 탄핵의 역풍 때문에 자신을 알릴 기회조차 갖지 못한다"고 말하는 은진수, 그런 것도 예상 못하고 탄핵을 했습니까?

탄핵 철회에 대해 은진수는 이렇게 말했다. "선진국의 근간은 법치주의입니다. 엘 고어가 득표는 이겼지만 선거인단에서 져서 깨끗이 승복을 했습니다. 우리나라 같으면 그럴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없지. 우리나라는 선거인단이 아니라 총득표수로 승패를 가르니까. 그런데...한나라당이 승복 운운하는 말을 할 수 있을까? 대선 직후 사상 초유의 재검표로 인해 아까운 국고가 낭비됐고, 요즘 읽고 있는 책을 보니 이런 말도 나온다.
"한나라당 모든 의원 및 당원들에게 물어보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지난 대선은 무효다, 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지금도 대선무효소송이 진행 중이잖아요(우리가 이들에게 희망을 걸어도 좋은가, 지승호 저, 343쪽)"
대선이 끝난지 벌써 1년이 지났다.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라도 제발 좀 승복하거라.

은진수의 히트작 중 한가지. "송두율 같은 사람이 수구입니다!"
혹시 그의 주변에 송두율이라는 이름을 가진 동명이인의 수구파가 있는 건 아닐까? 이래서 난 토론이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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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맘 2004-03-26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 번 서재에서 했던, 자신에게 맞는 당 찾는 프로그램 있지 않습니까? 의외로 많은 분들이 일희일비 하시기에, 혹여 내가 어디서 조작된 프로그램을 올린 건 아닌가...걱정이 되어 여러 가지 방법으로 다시 해 봤었습니다.
모든 질문에 다 '모르겠다'고 답변하니, "성의껏 질문에 응해주십시오."하는 결과가 나오더군요. 호오....그래?
이번에는 제 기준에서 '설마 이런 사람도 있으랴.'하는 심정으로, 막가는 답변을 했습니다. 결과는....자민련이더군요. ㅎ...ㅎ...ㅎ...

가을산 2004-03-26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동자, 그렇다면 자민련이 생각하는 국민은 사장이랑 자영업 하는 사람들 뿐인가? "
그러니까 '자'민련이겠죠. ㅡㅡa
근데 정치인들 정말 변신 잘하네요.. 지난번 총선때 분명히 자민련으로 출마했던 사람이 이번에는 한나라당으로 출마하네요. 대전도 이번에는 자민련 지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야 할텐데...

mannerist 2004-03-26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프로그램 아주 잘 맞던걸요. 재밌는것이, 탄핵에 반대하는 제 지인들의 선호정당 결과가 타국당, 열우당, 잔민당 비슷비슷하게 나왔습니다. 결국, 얘네들 정책상으로는 별반 차이 없다는걸 얘기해주는 거죠. 덕택에 균형감각 좀 있다고 자부(혹은 착각)하는 사람들 상대로 '국가보안법 고칠 필요는 있지만 있어야 되지 않냐?'란 물음에 똑같은 이야기를 몇번이나 했는지... 이 부분에 있어서는 지금 국해의원 수준 일반 한국인들과 별반 다를게 없어보이더군요. 어디까지나 '국정교과서', '군대', '돼먹지못한 언론 통제'에 길들여져 있다는 걸 감안해야겠지만요. 하여간 그거 유익한 프로그램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