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3월 20일(토)
마신 양: 소주 한병+알파

부제: 민주주의와 변의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몇차례 촛불집회에 참여해 봤으니, 따스하기만 한 낮과는 달리 날씨가 제법 쌀쌀하다는 것을 모르진 않을 것이다. 게다가 집회 때마다 내게 목도리를 빌려준 사람으로부터 "옷좀 제발 든든히 입고 오라"는 전화까지 받은 터였다. 그런데 난 무슨 배짱인지 봄냄새가 물씬 나는 옷차림으로 광화문에 갔고, 그 사람의 목도리를 빼앗아 두르고도 밤새 덜덜 떨었다. 추위에 대비해 마신 소주 4잔은 전혀 도움이 안됐다. 말이라도 잘 들리면 모르겠지만, 내가 앉아있던 시청 옆 도로는 마이크의 사각지대, 멍하니 앉아만 있으니 더더욱 추웠다.

추위보다 더 날 괴롭혔던 것은 최근들어 맹위를 떨치고 있는 변의. 어제도 분명 2차례나 일을 치렀건만, 저녁을 먹은지 한시간여가 지나자 어김없이 변의가 찾아왔다. 난 변의를 가장 잘참을 수 있는 자세로 바꾼 채 버텨야 했는데, 민주주의를 지키는 건 이렇게 어려운 법이다. 하지만 자세가 훌륭하다고 변의를 완전히 잠재울 수는 없는 일, 난 대략 여섯차례 정도의 방귀를 뀌었는데, 내 주위 사람들 중 유독 이탈자가 많았던 게 혹시 그때문은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밤 9시경, 참다못한 난 같이온 사람들을 설득, 인근 술집으로 갔고, 엊그제처럼 술집 화장실을 막는 건 아닌지 마음을 졸여야 했다 (막히진 않았지만 물을 세 번 내렸다). 한시간 동안 술을 마시고 다시금 광화문에 왔고, 빈곳을 노려 무대 가까이까지 접근하는 데 성공했다. 신해철, 안치환, 정태춘 등 유명 가수들이 나오자 사람들은 열광했고, 주최측이 표방한 '문화축제'라는 것도 어느정도 실감이 났다.

-내 친구 중 울산에서 올라온 친구가 있었다. 서울에 올 일이 있어서 온거지만, 자기 부인이 간김에 촛불시위에 참석하고 오라며 컵과 인터넷으로 뽑은 노래 가사들, 돗자리 등을 싸주었다고 했다. 훌륭한 부인이다. 앞으로 잘해줘야겠다.
-어찌어찌 해서 알던 여자애를 무대 앞으로 가다 만났다. 어머님이 촛불시위에 참가하시려고 전주에서 올라오셨다나? 또다른 남자애도 만났는데, 하여간 거기서 누군가를 만나면 너무 반갑고, 진한 연대감이 느껴진다. 예컨대 이런 것. "니가 그렇게 훌륭한 얘였구나!"
-이용할만한 화장실이 없는 것은 참으로 불편한 일이다. 월드컵 거리응원 때 기저귀가 그렇게 잘 팔렸다는 게 실감이 났다. 내가 12시가 조금 못되어 빠져나간 것도 바로 소변 때문인데, 역시나 시청역 화장실 앞에는 시민들이 길게 줄을 서고 있었다.
-뉴스를 보니 탄핵가결을 찬성하는 또라이들이 세종로에서 집회를 했단다. 2천5백명쯤 왔다는데, 극우 애들은 왜이리 게으른지 모르겠다. 독립신문의 꼴통 신혜식은 말한다. "탄핵반대만 문화집회냐?" 후후, 누가 뭐라나. 그래도 난 그들이 왜 세종로에 모였는지 이해할 수 없다. 시위란 건 원래 자신의 뜻이 관철되지 않았을 때 벌이는 수단, 국회에서 이미 탄핵안이 가결되었는데 왜 시위를 한담? 할 일 정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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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냐 2004-03-21 1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클클...민주주의를 지키는건 정말 어렵군요. 전 미리 겁먹어, 집에서부터 애들 쉬야 억지로 시키구...저녁 먹구 또 화장실 들렸습니다. 물론 애들 옷두 잔뜩 입혔죠..^^;; 과연 신해철이 오냐, 안 오냐..를 갖구 궁금해했는데, 역시 늦게까지 민주주의를 지키시면, 보답이 있군요.

연우주 2004-03-21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글과 상관없지만, 저도 습관적으로 한때 '남자애', '여자애'란 말을 잘 썼어요. 오죽하면, 군인애들, 이란 말까지 썼지요. 그러다 최근 들어 안 쓰는 이유는, 더 이상 제가 '애'자를 붙일만한 나이는 아니란 생각에서 였는데, 마태우스님은 아직도 쓰시는군요!
아, 그리고 민주주의 지키기 힘드네요. 정말.

마태우스 2004-03-21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냐님/어머, 우리가 같은 장소에 있었다니, 반갑습니다!
우주님/쓰고 보니까 좀 이상하네요^^

가을산 2004-03-22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뉴스로만 보았던 화장실 문제를 이렇게 리얼하게 묘사하다니! ^^
씨~~ 인기 가수는 왜 서울에만 나오냐~~ !
대전은 주로 풍물과 춤이었습니다. 나름대로 재미는 있었지만요.
전 초등학교 때부터 재래식 화장실이 무서워서 참는건 이력이 났습니다.
하루종일 외출시에도 어떨때는 한번도 화장실을 가지 않아서 저 스스로 '괜찮나?' 걱정되기도 합니다.

sunnyside 2004-03-22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민주주의를 위해 그정도의 변의를 참는건 제게 예사랍니다. ㅎㅎㅎ
(실은 .. 저와 함께 광화문에 갔던 이들이 '부녀회' 멤버들인데요. 우리 '조직'은 맥주를 마실 때마다 화장실 안가기 시합을 벌이곤 했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