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70년대
유시민이 대학을 다니던 시절에는 1학년을 마치고 나서야 전공을 정했다고 한다. 당시 최고로 잘나가는 과는 법대였지만, 유시민은 경제과를 택했다. 왜그랬을까? 딴지일보에 실린 그의 말이다.
[도~~~저히 쪽 팔려서 못 가겠는거야. 법대를. 법대를 간다는 얘기는, 유신헌법부터 시작해서 당시 법률을 공부해서 사법시험을 봐야 된다는 의미고, 그죠? 그때 판사가 된다는 거는, 정말.. 법정 방청석에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수첩 들고 와서 앉아서 체크할 때의 법원 아닙니까.. 그러고 긴급조치란 게 있어 가지고, 유인물 한 장 잘 못 쓰면 사형까지 시킬 수 있는 그런 시스템인데.. 그 밑에 가서 쪽 팔리게, 판검사 하냐 이거야..]

이런 사람은 유시민만이 아니어서, 경제과 78학번에는 최고의 인재들이 다 모여들었다고 한다. 그의 말이다. "그 정운찬 선생이, 지금도 78학번을 그래 칭찬하잖아. 78만큼 뛰어난 애들이 많이 모였던 적이 없다 이거야. 그 양반 말로는"

2. 80년대
내가 대학 1학년이던 80년대 역시 군부독재가 지배하는 시절이었다. 우리 과만의 특성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당시 우리들의 사회의식은 70년대와 같지 않았다. 우리는 소위 '운동권'들을 경원시했고, 그들이 '광주사태'가 어쩌니 하면서 선동을 해도 관심을 갖는 애들은 많지 않았다. 대학에 간 이후에 알게 된 광주의 진실은 분명 충격적이었지만, 난 내 인생을 감옥에서 보내고픈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 학교에는 전경이 상주했고, 늘상 벌어지는 시위 때마다 많은 학우들이 연행되었다. 난 데모도 안했는데 얼떨결게 잡혀갈까 두려워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앉아 시위를 구경하곤 했다. 한 학우의 말이 기억난다. "시위 안할 거면 이리와서 돌이나 깨요!"

비록 참여는 못했을지언정, 우리들 마음 속에는 군부독재에 대한 저항심이 자리잡고 있었다. 전경들이 수시로 불심검문을 해대는 사회, 머리를 짧게 깎았다는 이유로 닭장차에 끌고가는 야만적인 사회에서 어떻게 그러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운동권을 멀리하긴 했지만, 이정우, 김민석이나 임종석 등 당시 운동권 리더들은 우리에게 영웅이었다. 심정적 동조가 있었기에 모든 시민이 거리로 나간 87년 6월, 우리과 애들도 흰 까운을 입고 시위에 동참했고, 87년 대선에서 노태우를 찍는 게 쪽팔린 거라는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었으리라.

3. 90년대, 그리고 현재
절차적 민주주의가 자리잡은 87년 이후, 시위는 많이 사그라들었다. 91년의 분신정국 이후에는 그나마 시위의 방향도 등록금 투쟁이나 학교비리 같은 것으로 바뀌었다. 사회주의의 몰락과 맞물려져, 대학생들에게 마르크스는 더 이상 필독서가 아니었고, 각종 무협지가 대출순위 톱텐을 점거하기 시작했다. 대학생들은 이제 정치에 관심이 없고,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토플점수와 사법고시였다.

내가 속한 써클만 해도 그랬다. 진료써클을 표방하며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활동을 하는 그들이 노무현보다 이회창의 지지율이 낮다고 탄식들을 해댔다. "난 돈 많이 버는 의사가 될거야"라는 글을 버젓이 올린 사람도 있었다. 물론 이해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군부독재는 이미 물러갔고, 그들의 눈에 한나라당은 군부독재의 후신이 아닌, 민주당과 열린우리당보다 조금 더 부패한 당일 뿐이니까. 또한 고교 때까지 누리지 못했던 대학생활의 낭만도 즐겨야겠고, 갈수록 좁아지는 취업난에 대비해 자격증도 따고, 자신의 실력을 연마하는 게 필요하니까. 사회정의라는 게 밥을 먹여주는 것도 아닌 바, 신자유주의의 광풍 속에서 누가 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그렇긴 해도, 앞으로 우리 사회를 이끌어갈 대학생들이 지금 보여주는 모습은 우려스럽기 그지없다. 대학생이 공부보다는 정치투쟁을 해야만 했던 과거도 바람직한 게 아니지만, 지금처럼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한 대학생들이 앞으로 만들 사회는 대체 어떤 모습일까?

20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광화문에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 30대, 그걸 보면서 생각했다. 대통령이 쿠테타로 물러나는 일이 십년쯤 후에 일어난다면, 촛불을 들고 광화문에 갈 사람이 과연 있을까,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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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 2004-03-16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 맞는 말씀이십니다. 제가 2년간 대학에서 보고 배운 것은 개인주의, 합리주의 뿐이었습니다. 사회정의에 대한 진지한 토론은 해본 적도 없고 할 수도 없었습니다. 학생들의 관심은 어떻게 하면 인생을 즐겁고 편하게 살 것인가에만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속한 동아리에서도 연주회는 하고 싶은데 연습은 하기 싫다고들 했습니다. 전공 공부 할 시간, 영화 볼 시간, 데이트 할 시간은 있어도 연습할 시간은 없다고 했습니다.

갈대 2004-03-16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전 이런 비평을 할만한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저 역시 그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저는 단지 침묵할 뿐이었습니다.

도서관여행자 2004-03-16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침묵자입니다만, 이런 글은 반성하도록 하니까 좋군요. ㅠㅠ

2004-03-16 22: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가을산 2004-03-16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요... 어쩌면 우리가 80년대에 그렇게 한 것은 요즘처럼 개인의 일상이 보장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아니었을까요?
요즘은 취업 때문에 그다지 여유가 없다는 것이 안타깝지만요...
저는 요즘 20대에게 우리와 같은 삶의 태도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 생각하구요..
단지 나름의 고민과 문화를 충실하게 엮어나갔으면 합니다.

가을산 2004-03-16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 쓰고나서 보니 진짜 노티나게 쓰네요... ㅠㅜ
그래두요! 저 술자리에선 노티 안납니다! 암요!

연우주 2004-03-17 0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애들은... 이런 말을 가끔 할 때가 있습니다. 저 역시 요즘 애들이라는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진대 말이죠. 제가 한동안 몸담았고 만났던 사람들이 저보다 4살 이상 많은 분들이셨다보니 저도 은연중에 눈높이가 그렇게 맞춰졌던 모양입니다.
마태우스님의 글에 반론의 여지가 있었다면 좋겠지만 저도 공감을 하니 큰일입니다.
점차 개인화되는 대학사회에 저도 회의를 느낍니다.

진/우맘 2004-03-17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태백 시대에 즈음하여... '취업'이라는 화두가 그들을 너무 강하게 압박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다른 것은 되돌아볼 여유가 없는 것은 아닌지, 추측해 봅니다.

마태우스 2004-03-17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글을 보니 가을산님 말씀대로 노티가 물씬 풍기네요. 제가 바라는 것은 최소한 투표는 해야지 않느냐, 그리고 투표할 때 정의가 뭔지 한번쯤 생각은 해봐야지 않느냐 하는 거랍니다. 그게 그리도 어려울까요? 젊은 극우들이 여기저기서 생긴 작금의 현실을 비관하며 쓴 글입니다...

sunnyside 2004-03-17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90년대 학번인데도 이상한 과를 나와서 과에서만 세 명을 구치소에 보내고, 콜라 마신다고 선배한테 소리 듣고 그랬습니다. -.- 왜 글케 공불 안했을까... 별루 후회는 안하지만요.^^; (끝까지 공부의 재미를 모르고 졸업해서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