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번째, 일시: 3월 11일(목)

마신 양: 소주 14잔 정도?

좋았던 점: 지난번 모일 때는 비싼 고기집에 가는 바람에 회비를 3만원이나 내고도 고기를 4점밖에 못먹었다. 허기가 져서 공기밥을 두공기 먹었는데-김치에다가-이번엔 광우병 때문에 두부집에서 모여, 두부라도 실컷 먹었다.

나빴던 점: 선배 한분이 깽판을 치는 바람에, 소주를 아무리 마셔도 안취했다...

부제: 시간강사 단상

우리 사회에서 시간강사는 노예 그 자체다. 학생들로부터 '교수님' 소리를 듣긴 하지만, '보따리 장사'라는 자조적인 표현대로 전임이 되는 그날까지 열악하기 그지없는 신세를 감내해야 한다. 시간당 2만여원이 그가 지식을 팔아서 받는 대가며, 그마저도 방학 때는 없다. 강의를 하러 여기, 저기를 다녀야 하는 것도 고달프지만, 조금 일찍 오면 마땅히 있을 곳도 없다. 전임교수의 눈밖에 날까 두려워 이사, 경조사 등에 빠짐없이 참석해 노동력을 제공한다. <세기말>이나 <플란더즈의 개> 같은 영화에서도 시간강사의 열악한 처지가 묘사되는데, 신랑감 순위에서 50위가 농부고, 51위가 인문대 박사라는 대사는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지성 어쩌고 하면서 스스로를 포장하는 대학 사회가 강좌의 절반 가까이를 담당하는 시간강사의 처우에 무관심한 것은 범죄 그 자체다. 그들에게 쓸 예산이 없다면, 별로 하는 일도 없는 교수들의 봉급을 깎아서라도 돈을 더 주면 안되는 걸까.

한성 천안 동문회-한성고를 나오고 천안 지역에 근거지를 둔 사람들의 모임-에도 시간강사가 하나 있다. 지금 , 전임이 되는 것은 이미 글렀다고 봐야 한다. 그는 언제나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물론 나역시 그런 그에게 공감한다. 하지만 그는 정도가 심했다. 모일 때마다 그 소리를 하니 지겨울 법도 한데, 어찌된 게 갈수록 깽판의 강도가 커져간다. 제 스스로 흥분해 선배도 몰라보고 난동을 피우며, 쌍욕도 서슴치 않는다. 그걸 제지하는 다른 선배에게 "내가 한달에 얼마 버는지 알아?"라며 대들 정도니, 알만하지 않는가.

모든 전임 교수에게 적대감을 가진 듯한 그는 다른 교수와 싸운 걸 무슨 굉장한 무용담처럼 늘어놓는데, 엊그젠 여성 도의원에게 "미친년"이라는 말을 내뱉어 그녀를 울린 걸 무려 네 번이나 얘기를 했다. 그가 전임이 못된 것이 어쩌면 그의 괴팍한 성격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그로 인해 화기애애해야 할 동문회가 언제나 썰렁해지니, 앞으로는 나오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 선배도 처음부터 그런 성격은 아니었을 터, 십수년에 걸친 시간강사 생활이 그의 인성을 피폐시켰으리라. 또하나의 노예제도로 일컬어지는 시간강사 제도는 이렇듯 도처에서 괴물을 만들어내고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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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번째, 일시: 3월 12일

마신 양: 소주 한병+알파, 맥주 2병

왜 마셨나?: 여의도 집회가 끝난 후, 홍대앞에 와서 뒤풀이를 했다. 원래는 그 근처 포장마차에서 마시려고 했는데, 모든 술집은 사람들로 미어터졌다.

새로이 깨달은 점: 사람들은 자신이 노빠로 보일까봐 전전긍긍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일반 시민이고, 탄핵에 분노해서 나온 거야"를 거듭 강조함.

나빴던 점:
-술값을 내가 냈다.
-술값을 미리 냈는데 주인이 안냈다고 우겨서, 한판 붙을 뻔했다(안그래도 기분이 나쁜데..)
-한사람이 안주발을 세워서 힘들었다. 안주 하나 더하자니까 결사반대한 것도 그사람이었다. 그건 안주 많이먹는 사람의 특징인가보다.
-새벽 두시에 들어갔더니 벤지가 굶고 있었다. 미안해 벤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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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우주 2004-03-13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상황에서 안주빨 얘기나 하면 안 될 것 같은데, 그래도 안주빨에 상당히 찔리는군요. 저도 안주빨 엄청 세우는데...ㅠ.ㅠ

가을산 2004-03-13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노통에게 투표하긴 했지만 노빠(여기서의 의미는 노사모)는 아닙니다.
그런데도 친정이나 시댁에 가면 골수 노빠 취급 당합니다. 유일하게 노통을 찍었기 때문에. --+
대선이 끝난지가 언젠데 아직도 시댁에 가면 '지금도 노무현 찍은거 후회 안하세요?'하고 묻는 사람들이 있고, 남편도 정치적인 입장은 저와 대립됩니다.
친정 부모님은 제가 노무현에게 투표한 것을 아신 이후로는 - 작년 추석에서야 아셨음 - 아예 반년째 왕래가 끊긴 상태입니다. 두분은 이 정권 아래에서는 이민이라도 가실 태세인데, 다른 사람도 아닌 딸이 '배신'을 했다는 것이 무척 충격이었나봅니다.
저도 나름대로 '앞으로는 명절 때 우리 만날 필요 없이 노무현 사진이나 보지'라는 새어머니의 명언에 상당한 내상을 입은터라 - 아마 기생충학 교수님들에게서 받은 마태우스님의 내상과 비슷할까요? - 당분간은 저도 마주치기가 싫습니다.
정치 때문에 가족 관계에까지 금이 가다니, 저희 집안도 좀 유별난 것 같습니다.

마태우스 2004-03-13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주님/우주님은 괜찮습니다. 여자잖습니까<--이거 남녀차별인가요?
가을산님/역시 인간사란 것은 갈등의 연속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치 때문에 갈등을 겪는 건, 좀 비생산적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갈대 2004-03-13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행히 저희 집은 모두 노빠로 통일입니다^^; 만약 부모님께서 야당을 지지하고 이번 탄핵에 찬성했다면 제 성격상 가만있지는 않았을 겁니다. 아무리 부모자식간이라도 옳지 않은 길을 고집한다면 절대 동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제 소신이기 때문입니다.

마태우스 2004-03-13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갈대님/우와................... 정말 다행인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