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십며칠만에 술을 안마시는 날이었다. 정말 간만에 저녁을 집에서 먹기로 어머님과 약속까지 한 터. 학교 일이 늦게끝나 딴지에 도착한 건 밤 8시 15분이었고, 그때부터 싸인을 시작해 9시 40분쯤 끝을 냈다. 내가 싸인을 하는 동안 딴지 친구들은 맞고를 치거나,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싸인을 마친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서 이렇게 말했다.
"저... 제가 맥주라도 한잔 대접해야 하는데, 집에 일이 좀 있어서...핫핫"
그의 말이다. "무슨 말이어요? 맥주라도 한잔 해야지!"
알고보니 그들은 일을 다 끝내놓은 뒤 날 기다린 거였다. 그런 충정을 어찌 거절할 수가 있겠는가. 난 영등포 근처의 맛집 <벽돌집>으로 갔고, 고기를 안주삼아 소주 두병을 나누어 먹었다. 하지만 그 둘이 마신 건 잘해야 반병 정도일테고, 나머진 모두 내 입으로 들어갔다. 소주 한병 초과부터는 술 한번으로 치는 관행상, 어제도 '쉬는 날'이 아니었다. 주당들과 오대산에 놀러가는 오늘도 정신을 잃을 때까지 술을 마실 것은 당연한데, 난 언제나 쉬게 될까?
집에 갔더니 어머님이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날 기다리고 계신다.
"저...어머니...사실은..."
여기까지 말했을 때 엄마가 소리를 치신다. "너, 오늘은 약속했어!"
그 서슬에 놀라 이렇게 반격했다. "누가 뭐랬나요? 빨리 밥 줘요!"
난 낚지볶음에다 밥 한공기를 비벼서 꾸역꾸역 다 먹었다. 술도 알딸딸하고 배가 불러 잠이 오지 않았고, 새벽이 되어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
그렇다고 어제의 술자리가 전혀 의미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액자가 딸린 이효리 사진(산사춘 광고)을 얻었으니까! 담주에 출근하면 내 연구실에 걸어놓아야겠다. 음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