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에 맞서다 - 사례·담론·전망
이미경 외 지음, 한국성폭력상담소 기획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성폭행’을 넣고 검색해 보면 수많은 기사가 뜨지만,

보도되는 건 빙산의 일각일만큼 비일비재한 게 또 성폭행이다.

개인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갈 수도 있다는 점에서 성폭행은 살인에 필적할 죄인데,

문제는 지금까지 성폭행에 대해 대처하는 방법이 그리 효율적이지 못했다는 점이다.

사후에 고소를 해봤자 길고 지리한 싸움을 해야 하며,

성폭행 예방법이라는 게 ‘야한 옷을 입지 말자’ ‘늦게 다니지 말자’처럼

원인을 피해자한테 전가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성폭력상담소에서 낸 <성폭력에 맞서다>는

그런 차원을 벗어나 여성들에게 각성을 촉구하는데,

한마디로 요약하면 ‘각본 뒤집기’다.

성폭행의 절반 이상이 아는 사람이고, 그 사람들은 대부분 나름의 계획을 가지고 일을 벌이는만큼,

그네들의 각본을 뒤집음으로써 성폭행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누가 뒤에서 ‘움직이지 마!’라고 했는데 자지러지게 웃는다고 생각해봅시다]

물론 대부분의 여자들은 이렇게 할 수 없다.

“저리로 가!”라는 협박을 받는다는 것만으로 공포로 몸이 얼어붙고,

몸은 무기력해져 움직이기조차 하지 못한다.

이 책은 여자들에게 “이런 상황에 대비해 여러 차례 시뮬레이션을 하라”고 얘기하며,

달아날 시간을 벌만한 필살기를 연마하라고 주문한다.

<나잇 앤 데이>에서 카메론 디아즈가 킬러를 죽일 때 그랬던 것처럼,

잘 배운 필살기는 의외로 효과적일 수 있다.


난 잘 몰랐지만, “강간죄는 법정형이 매우 높은 범죄에 속”하며,

“살인, 강도와 더불어 흉악범죄로 분류되어 있”단다.

그렇기 때문에 판사들이 강간죄를 인정하는 데 있어 주저하기 마련이며,

웬만큼 저항을 하지 않으면 강간죄 구성이 안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것처럼 강간이 한 인간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갈 수 있으며,

성폭력 범죄자는 재범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통계 등을 고려해 볼 때

좀 더 과감한 판결과 그에 따른 처벌이 이루어지길 희망한다.

성폭력 범죄가 친고죄라는 것 역시 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데,

제3자의 고발이나 수사기관의 인지에 의해서도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는 반의사불벌죄로 바뀌는 것도 필요할 것 같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성폭력의 99% 이상을 담당하는 남성들의 각성,

나를 포함한 남성 분들게 이렇게 말해 본다.

“강제로 하면 좋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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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HIN 2010-07-18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 어떤 변태는, '나야 여자가 덮쳐주면 좋지'하고 대답할 것만 같군요.
마지막 질문에 말입니다. ㅡ.,ㅡ

외람된 말입니다만, 읽다보니 어제 인터넷 서핑 중 누군가의 글이 떠올라서 말입니다.
제목은 '성폭력 여자들을 도와주지 마라'였습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린가 싶어서
읽어봤더니, 대학 갈 돈 없어서 힘들게 공무원 고시 공부하는 젊은 남자 두 명이 위험에
처한 여성을 구하는 과정에서 상대방을 좀 때렸나 봅니다. 그런데 여자는 도망갔고 경찰
측은, '피해를 입은 당사자가 없으므로 진술이 맞지 않는다'라면서 도와준 남자들을 폭행
죄로 처리하여 '전과자'가 되었습니다. 물론, 공무원 될 자격도 잃어버리고요.
그 글에 딸린 다른 글들도 읽어보니, 여자 도와주려다 되려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이야기
이더군요. 현수막까지 걸었답니다. 여자분 보고 나와서 증언해달라고요. 물론, 여자
입장에서는 '강간될 뻔한 일을'가지고 앞에 못 나오는 심정은 이해가 되지만, 자신들을
도와주려다 졸지에 '폭행 범죄자'가 되는 선량한 남자들의 피해는 생각 안 하는지...

그래서 사람들이 더 여자들을 도와주지 않게 된다고 그들은 말하더군요.
여자들은 그런 상황에서 경찰 올 때 까지 도망가지 말라고 신신당부까지 하더군요.

저 역시, 성폭력범은 용서할 수 없는 범죄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그런 자들을 벌하기 위해서는, 기꺼이 도와주는 남자들과, 그 상황을 증언해줄
여성분들의 협조가 있어야만 되는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 놈을 잡아야만, 다른 여성들의 피해도 줄기 때문이죠.

사회가 점점 각박해집니다. 남의 일에 무관심해지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슬픈 시대입니다.

마태우스 2010-07-18 18:16   좋아요 0 | URL
그런 일이 있었군요. 성폭력의 위험에 처한 여성들을 도와주는 남자들도 물론 있을테고, 그런 좋은 분이 피해를 입는다는 건 가슴아픈 일입니다. 하지만 그 여자분으로선 지금 공포에 휩싸여 있을테고, 그 가해자들과 대면하는 게 무서울 수 있지요. 그 가해자들의 반대편에 서서 증언을 할 때, 위해를 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있구요. 그런 것에 대한 우리 공권력의 배려가 별로 없는 것도 문제일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분이 증언해 주면 좋겠지만, 이 경우 그 남자 말은 믿지 않고 폭력전과의 딱지를 붙이는 우리 경찰에 대해서도 문제제기가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님은 기꺼이 도와주는 남자의 중요성을 강조하시지만, 이 책의 주장은 남성의 도움 없이 여성들이 자기 몸을 지키자는 것입니다. 사실 여자를 보호한답시고 주변에 포진한 남자들이 성폭행을 일으키는 주체가 되는 게 현실이지 않습니까? 성폭행이란 게 평소 좀 이상하고 밝히는 애들이 저지르는 게 아니라 다 오빠같고 동생같은 남자들이 저지르는 일인지라 남성들만 믿고 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위에서 언급하신 그런 좋은 분도 존재하지만, 여성 스스로 자기 몸을 지키기 위한 연습을 하는 게 필요하겠지요. 달리기를 잘하는 것도 필요한 일이구요.

L.SHIN 2010-07-19 14:43   좋아요 0 | URL
네,맞습니다.
물론,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도, 마태님이 말하고자 하는 뜻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저 역시 여자분들이 스스로를 지킬 힘을 키웠으면 하고
바랍니다. 공권력의 안일한 일사처리의 문제 또한 생각하고 있었죠.

문제는, 한국 여성들이 이런 문제의 심각성을 알면서도 타국의 여성들에
비해 자신을 보호해줄 보호기구를 가지고 다니거나 호신술을 배우는 등의
노력을 별로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안타깝습니다.

마태우스 2010-07-19 16:16   좋아요 0 | URL
엘신님은 남성이면서도 여성에 대한 배려가 많으신 분입니다. 그점에 대해 늘 존경심을 품고 있습니다. 그게 여성 알라디너 분들한테 인기가 많은 이유이기도 하겠지요. 님이 말씀하신 보호기구 말입니다, 단지 그걸 갖고 있다는 것만으로는 안된다는 게 이 책의 주장입니다. 도구가 있더라도 시뮬레이션 훈련을 통해 쓰는 연습을 부단히 해야 실전에서 쓸수가 있다네요. 역시 도구보단 몸의 한방이 더 필요한 것이, 도구가 없으면 다시 무력해지니깐요

조선인 2010-07-18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신술의 첫번째가 '소리지르기', 두번째가 '물기', 세번째가 '달리기'입니다. 특히 소리지르기는 아주 중요한 첫 단추가 되지요. 시덥잖은 복장단속보다 여자들의 데시벨을 마구 올릴 수 있는 장소가 더 필요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마태우스 2010-07-19 16:17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소리도 질러본 사람이 지를 수 있습니다. 참고로 여성부에서 내놓은 캠페인 중 방귀뀌기도 있어서 많은 비판을 받은 모양입니다^^

2010-07-20 00: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02 22:4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