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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매듭은 누가 풀까
이경자 지음 / 실천문학사 / 2003년 12월
평점 :
품절
여성주의 관련 책들은 꽤 읽는 편인데, <절반의 실패>로 명성이 자자한 이경자님의 책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간 외면해온 게 미안해 이번에 구입한 <그 매듭은 누가 풀까>를 서둘러 읽었지만, 읽고 난 느낌은 그다지 상쾌하지는 않았다. 내가 기대한 것은 여성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의 어려움이었지만, 그리고 이 책 역시 그런 내용인 것 같기도 하지만, 복잡다단한 내면세계가 주를 이루다 보니 읽는 내내 머리가 어지러웠다.
우선, 난 이 책의 주인공 손하영의 불행에 별로 공감이 안되었다. 유명세를 얻고 있는 모 대학 무용과 교수, 45평 아파트에서 남편과 두 딸이랑 함께 산다. 무용과라는 곳이 미모와 몸매가 전제되어야 하니, 손하영은 여러 모로 가진 자였다. 게다가 남편도 너그럽기 그지 없다.
[결혼 초에 정인호(남편)는 아내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겠다고 타협안을 내놓았다. 살림은 가정부가 하고, 아이들도 가정부가 돌본다. 다만 집안 행사에는 참석해라 (45쪽)]
이 정도면 이해심 많은 남편 아닌가? 하지만 손하영은 이 최소한마저 지키지 않았다. '시아버지 제삿날을 잊은 며느리. 제사에 참석한 날보다 잊은 날이 훨씬 더 많았다. 대부분 공연이거나 회의거나 연습이었다'
이래놓고서는 다른 남자-한두명이 아니다-와 자고, 걸핏하면 이혼 생각만 한다. '혼자 살지 못할 것이 없었다....' 하영은 남편이 자신에게 무관심하다고 투덜대지만, 내가 보기에는 남편이 더 불쌍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남편 역시 다른 여자가 있었지만, 그게 하영의 무분별한 성을 정당화하지는 못한다고 본다.
또하나. 아이들을 가정부가 키운다고 해도 최소한 할 도리는 해야 하지만, 하영은 이런 식이었다.
[아이들은 어머니를 자신에게 돌려놓으려고 애를 썼다...하지만 어머니는 언제나 냉정했다. 비켜! 귀찮아! 저리가!...아이들은 어머니를 조금씩 미워하고 버리기 시작했다 (317쪽)]
그래놓고서는 아이들이 자신을 미워한다고 속상해 하고, 히스테리를 부린다. 책을 읽어감에 따라 그런 것들이 하영의 어린 시절, 즉 지극히 폭력적이고 무능한 아버지와 돈을 벌어오면서도 늘 매를 맞는 어머니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이해는 안갔다. 왜 그 복수를 자기 남편과 아이들에게 하는 걸까? 같이 고생한 자기 어머니와도 불화하는 걸 보면, 안타깝기까지 하다.
하여간 난 하영의 태도가 시종일관 이해가 안가고, 폭포를 보더니 갑자기 해탈을 하는 마지막 장면은 더더욱 얼떨떨했다. 저자가 이런 책을 쓴 이유는 뭘까? 교육적인 가정에서 자라야 인격이 성숙된다는 것인지, 무용하는 여자는 한번 더 생각해보라는 것인지, 성공한 커리어우먼이 되려면 가정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인지?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이 그래도 가진 자인 남성으로 태어나서인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여성주의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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