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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자는 영화에서 과학을 본다 - 개정증보판 ㅣ 정재승의 시네마 사이언스
정재승 지음 / 동아시아 / 200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나라의 소위 전문가들은 너무 높은 곳에 있다는 단점이 있다. 그들은 대중과 유리되어 자신들이 알아듣는 언어로 소속 집단 내에서만 소통을 할 뿐, 대중과 전문지식을 공유할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의사인 마이클 크라이튼이 <쥬라기 공원>을 쓰고 칼 세이건이 영화 [콘택트]의 원작을 쓴 것처럼, 전문지식을 이용해 대중에게 즐거움을 주는 사람도 극히 드물다. 현실과 유리된 그들만의 학문, 이런 불만은 정재승이 쓴 <물리학자는 영화에서 과학을 본다>라는 책을 읽으며 어느 정도 사라졌다.
그는 일단 글을 잘쓴다. 어려운 말 대신 나같은 문외한도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말로 골치아픈 과학을 설명해 준다. 영화처럼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걸 가지고 과학을 설명하는 것이 가능한 것은 물론 전문 분야인 과학에 대해 방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리라. 게다가 [종횡사해]같은 영화까지 섭렵한 걸로 보아, 그는 영화 매니아임에 틀림없다. 어떤 전문가가 어떤 취미-골프 빼고-를 갖고 있다면 그가 훨씬 인간적으로 느껴지기 마련인데, 영화 매니아인 정재승은 내가 가졌던 물리학자에 대한 고정관념을 깬다.
이 책이 독자들의 좋은 반응을 얻은 또다른 이유로는 매우 긍정적으로 쓰여졌다는 것을 들 수 있겠다. 영화 평론가들의 책이 짜증이 나는 것은 그들의 높은 눈으로는 도대체 만족할 만한 영화가 없을성 싶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이게 맘에 안든다, 저건 저래서 싫다, 영화 평론가의 글은 매사가 이런 식이다. 하지만 이 책에는 그런 식의 폄하가 없다. 작품성이 떨어지는 영화라 할지라도 긍정적인 면을 찾으려 애쓰고, 과학과 관련된 부분을 담담히 성찰한다.
이 책에서 새로이 안 사실, '핸드폰 사용이 가능한 지역은 지구 전체 면적의 4% 정도밖에 안된다'는 것. 마라도에서 '여기 마라돈데'라고 외친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지만, 과학자의 말인데 믿어야지 어쩌겠는가.
타임머신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대목 역시 무릎을 치게 만든다.
[만약 먼 미래에 과학이 발달해서 타임머신을 만들 수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는 과거로 여행을 떠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까지 미래에서 온 방문자를 한번도 만난 적이 없다. 역사에도 그런 기록은 전혀 없다. 따라서 먼 미래에도 타임머신은 개발되지 않았다는 결론이 나온다 (133쪽)]
과거로 가서 맘모스를 만나는 게 소박한 소원인 내게는 그다지 좋지 않은 말이지만, 어쩌겠는가. 과학자의 말이니 포기하는 수밖에. 과학의 대중화에 힘써온 걸로는 이인식이 선구자지만, 두 사람의 책을 모두 읽고 난 후 평가를 해보자면 정재승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그가 쓴 <과학콘서트>도 주문을 해놨는데, 빨리 읽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