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굴장으로 - 제139회 나오키상 수상작
이노우에 아레노 지음, 권남희 옮김 / 시공사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가을이라 그런지 갑자기 불륜소설이 땡겼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책이 바로 <채굴장으로>.

표지에 이런 구절이 쓰여 있다.

“그에게 끌린다. 남편을 사랑하는데....”


제목으로 보아 채굴장에서 뭔가 일이 벌어지는 모양,

바로 이거다 싶어 읽기 시작했다.

책의 소제목은 월별로 나뉘어져 있고, 3월에 시작해 이듬해 4월에 끝이 난다.

주인공은 조그만 섬에서 학교 선생을 하고 있는 유부녀,

초반부에 토교서 온 남자 선생이 그 섬에 부임을 한다.

“아, 그러니까 이 둘이서 그렇게 되는군!”

혼자 좋아하며 계속 책장을 넘겼다.

하지만 중반부를 읽을 때까지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자 조금 초조해졌다.

“대체 언제쯤 일을 벌일 거냐, 응?”

주인공과 그 남자선생을 채근하며 책을 읽는데,

갑자기 둘이서 지금은 폐허가 된 극장에 가는 장면이 나온다.

“그래! 바로 이거야! 어서 일을 벌이라고!”

이 장면은 이렇게 끝난다.

“이사와(남자 선생)는 내 쪽으로 다가왔다. 나는 엉겁결에 뒷걸음질쳤지만,

이사와는 성큼성큼 내 옆을 지나갔다...이사와는 끝내 돌아보지 않고 가버렸다.”

일을 벌이기는커녕 스킨십조차 없다.  

뭔가 될듯하면 남자가 저벅저벅 가버리는 이런 장면, 이 책에서 자주 나온다. 

이 대목에서 난 이렇게 한탄했다.

“곧 연말이다. 이렇게 진도를 못나가서 어떻게 하냐?”


이듬해 1월을 읽을 때쯤, 난 이 책에서 뭔가를 기대하는 게 바보같은 짓이란 걸 깨달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을 버렸는데도 계속 책장을 넘긴 건 뉴톤이 말한 관성의 법칙 때문이었다.

일본 책 특유의 구조, 그러니까 양장본에 페이지수가 얼마 안되고

글자도 큰 이 책을 난 500페이지짜리 책보다 더 힘들게 읽어야 했고,

마지막 장을 넘기고 난 뒤 난 엄청난 해방감을 느끼며 만세를 불렀다.

어떻게 그 둘이서 스킨십을 한 게 남자의 발에 박힌 가시를 빼준 게 전부냐?

남편이 시시때때로 집을 비우는데 말이다!

표지의 그 구절은 나처럼 불륜소설을 땡겨하는 놈을 낚기 위한 것일 뿐,

전혀 사실이 아니었다.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이 작업을 하기 위한 지침서가 아닌 것처럼

<채굴장> 역시 채굴장에서 일어나는 불륜 이야기가 절대로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 책이 나오키상을 받은 건,  

자기들만 낚이는 게 억울했던 심사위원들의 심술 때문이 아닐까? 

나오키상이 가장 잘 낚은 책에게 주는 상이 아니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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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9-11-11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흐~~~ 불륜소설의 압권은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가 진짜입니다.
물론 불혹이 지난 사람들만 읽을 것!
확실한 대리만족~~~~ 이런 불륜을 꿈꾸는 것조차도 행복하지요.^^

무해한모리군 2009-11-11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쩝쩝쩝.. 네.. 제가 요즘 광고랑 완전히 다른 영화 몇 편에 낚였더니 남의 일 같지 않은것이.. 감정이입이 막되는데요 ㅎㅎㅎ

다락방 2009-11-12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아 아침부터 완전 대박 웃었어요. 음, 작가가 더 진행하는게 무서워서 그랬을까요? 와- 완전 맥빠지겠어요, 하하하하하하하핫 근데 왜 저는 이 리뷰를 읽고 나니 이 책을 한번 보고 싶어질까요?하하하하하하

마태우스 2009-11-25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님한테 웃음을 드릴 수 있어서 대박 행복했습니다. 글구 책은 절대 보심 안됩니다. 저 믿죠?^^
휘모리님/한번 낚인 분들은 피해자에 대해 동병상련의 정을 느끼기 마련이지요. 감사합니다 꾸벅.
순오기님/불혹이 지나긴 했지만 철이 아직 안든 사람도 메디슨카운티를 읽어두 되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