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으로부터의 한마디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권일영 옮김 / 예담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강원도로 워크샵을 다녀왔다.

내게 있어서 장거리여행은 오가는 동안 책을 원없이 읽을 수 있는 기회,

절반쯤 읽은 <검은 꽃>과 더불어 최근 선물받은 <신으로부터의 한마디>(이하 신)를 집어들었다.


해야 할 숙제가 있어 점심메뉴로 예정된 생선회를 마다하고 아침 일찍 귀가해야 했는데,

요즘 일이 밀려 잠을 거의 못잔데다 전날 세게 달렸던 탓에 무지하게 피곤했다.

난 곧 곯아떨어졌지만, 이십분도 못되어 잠이 깨고 말았다.

차 안이 너무 더웠기 때문.

안그래도 반팔 차림이라 더 벗을 게 없었기에

난 가방에서 대형부채를 꺼내들고 열심히 부채질을 했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더위가 가시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기사 아저씨한테 갔다.

“아저씨, 혹시 난방 트셨어요?”

아저씨의 대답, “네.”

기절할 뻔했다.

이 날씨에 난방이라니, 이게 무슨 만행인가?

전날 학교 버스로 갈 때는 에어콘을 틀어주던데,

그것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해도 난방을 트는 건 좀 심하지 않은가?

이십명 가까이 탄 다른 승객들은 왜 아무런 항의도 안하는지

다들 기사 아저씨처럼 극심하게 추위를 타기라도 한단 말인지?


난방이 꺼져 더위는 가셨지만, 난 다시 잠들지 못했다.

남아서 싸온 오징어를 씹으며 <신>을 펴들었는데,

피곤했던 내가 서울에 도착할 때까지 한번도 졸지 않을 만큼의 재미를 그 책은 선사해 줬다.

일본의 젊은이가 회사에 들어가 겪는 얘기로,

어쩜 그렇게 우리 사회랑 똑같은지,를 생각하며 읽을 수 있었다.

예상은 되었지만 주인공이 일을 벌이는 마지막 장면은

도박영화에서 로얄스트레이트 플러시가 나올 때처럼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줬다.

한가지 아쉬웠던 점은 주인공이 6개월 전에 헤어진 여자에게 계속 집착한다는 것.

떠나고 나서야 “그(그녀)만한 사람이 없구나”고 탄식해 봤자

별 소용이 없다는 소신 때문이다.

내가 너무 냉정한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이란 변하지 않는 동물이고, 그렇게 다시 만나봤자 헤어질 때의 문제가 고스란히 반복되는 게 당연한 거 아닐까.

내가 지금 곁에 있는 미녀에게 잘하려고 하는 건

“떠난 버스는 다시 오지 않는다”는 걸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녀는, 놓치기에 너무도 아까운, 신으로부터의 선물이니까.



댓글(3)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해한모리군 2009-10-13 0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이란 변하지 않는 동물이고, 그렇게 다시 만나봤자 헤어질 때의 문제가 고스란히 반복되는 게 당연한 거 아닐까.

라는게 저의 신념이기도 합니다 ㅎㅎ

다락방 2009-10-13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리뷰를 읽다보니 문득 나도 언젠가 누군가에게는 신으로부터의 선물이 되어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신으로부터의 선물은 아무나 받는게 아닌 것 같아요, 마태우스님. 그러니 꽉 안고 놓지 마세요!

마태우스 2009-10-14 1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후 다락방님, 님은 무조건 신으로부터의 선물이지요!!!!! 미모에 지성까지 겸비하셨잖아요!!
휘모리님/님도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 글고보면 이 작가는 저보다 인생 경험이 좀 덜한 듯 싶네요. 헤어진 연인을 믿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