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토커>는 로빈 윌리암스가 자신이 동경하던 가족의 구성원을 괴롭히는 내용이다. 앞부분을 못봐서 왜 괴롭히는지 모르겠는데, 네이버를 찾아보니 이렇게 되어있다. "...욜킨 가족에 얽힌 충격적인 현장을 목격한다. 극도로 분노한 그는 직접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치밀한 계획을 짜고 윌을 추적하는데..."

영화 뒷부분으로 추측컨대 그가 충격을 받은 건 아마도 남편이 바람을 피우는 장면을 목격해서가 아닐까 싶다. 칼을 들고 밀회현장에 찾아간 로빈이 둘의 성행위 장면을 열심히 카메라로 찍는 걸 봐도 그렇다. 로빈이 경찰에게 모든 걸 고백할 때, 갑자기 방에서 나오신 우리 어머니가 말을 시키는 바람에 사건의 동기를 듣는 데는 실패했는데, 좌우지간 경찰은 그에게 "솔직히 말해줘서 고맙다"고 한다. 에라 모르겠다. 그냥 내 추측이 맞다고 하자. 홀로 외롭게 살아가며 "사진 속에서 더없이 행복한 표정의 그들을 보며 자신이 단 한번도 누려보지 못한 행복을 공유하고 싶어"했던 로빈으로서는 남편의 배신에 "있는 놈이 더하다"는 생각을 했던게다.

스토커가 무서운 것은 이런 거다. "..밖에서 자주 마주치게 되고, 그때마다 그가 자신은 물론 남편 윌과 아들의 사소한 일상까지 모두 파악하고 있음을 알게 되면서 점차 두려움을 느낀다" 그렇다. 누군가가 내 히프에 반점이 있는 걸 알고 있다면-사실은 없다-얼마나 무섭겠는가? 경찰이 로빈의 집에 들이닥쳤을 때, 그들은 이게 보통 사건이 아닌 걸 파악하게 된다. 벽면을 가득 메운 수백장의 사진들은 모두 욜킨 가족들을 찍은 거였고, 그 중 남편의 얼굴은 하나같이 칼로 긁혀 있었으니까. 그 증오심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섬뜩함을 불러일으킨다.

이거야 같은 남자끼리니까 좀 낫지만, 문제는 애정을 빙자한 스토커다. 진정한 사랑과 스토킹의 경계가 애매한 것도 사실이지만, 싫다는 여자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 추근댄다면 그건 스토킹이 아닐까? 여자의 거절은 "예스"라는 사회통념도 문제가 있지만, 더 큰 문제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그런 걸 부추기는 데 있다. [...<졸업>에서 더스틴 호프만의 스토킹이 숭고한 사랑으로 포장되고, 결국 그는 캐서린 로스를 얻는다....반면 여자가 그렇게 하면 그녀는 미친 여자거나 살인자다. <위험한 정사>, <어둠 속의 벨이 울릴 때>, <위험한 독신녀> 등등...(범죄신호, 284쪽)]

하여간 가빈 드 베커의 명저 <범죄신호>에 따르면 스토킹시 최선의 방책은 아예 상대를 안하는 거란다. 다음 말을 기억하자. "집착할 수밖에 없는 남자들은 거절할 줄 모르는 여자들을 선택한다(291쪽)" 그러니까 애매하게 거절할 게 아니라, 단호하게 거절한 뒤 상대를 안해버리는 게 좋단다. 이렇게 말이다. "난 당신에게 이성적인 관심이 없어요!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확신해요!" 이 말 이외의 어떤 말도 스토커에게 관계를 계속 맺을 수 있다는 희망을 주기 때문이다. 그들은 뭐든지 지 맘대로, 자기에게 유리하게 해석을 하며, 끈질김과 집요함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경찰은 전혀 도움이 안되며, 스스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나 역시 스토킹을 당한 적이 몇번 있다. 니가? 그것도 몇번이나? 하고 놀라겠지만 진짜다. 외롭게 혼자 살던 남자가 있었구, 나머진 여자다(한번은 96년인데...). 기간이 그리 길진 않았지만 그땐 정말 괴로웠다. 남자인 나도 그런데 여자는 더욱더 괴로울게다. 당시엔 <범죄신호>를 읽지 않았었지만, 난 나도 모르게 책에 나온대로 행동을 했던 것 같다. 그/그녀에게서 걸려온 전화/삐삐는 아예 무시했고, "제발 그러지 말라"는 말같은 건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달을 외면하니 그들은 더이상 날 괴롭히지 않았다. 마음 한구석에서는 미안하기도 했지만, 그들이 떠나가니 좋았다. 금방 그만둔 걸로 보아 그다지 나쁜 사람들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들은 지금 어디서 뭘하고 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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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2-13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직접 스토킹을 당하셨다니...무섭지 않으셨나요?? 여자분은 애정공세라고 하면...외로운 남자분은 무슨 이유로...^^; 이 글을 보니, 유명인들을 쫓아다니는 거미여인이 생각나네요. 첨엔 웃으면서 봤는데, 나중에 무슨 취재한걸 보니 왠지 오싹하던데...

마태우스 2004-02-14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앤티크님/처음에는 짜증이 나다가, 나중에는 얘가 날 죽이러 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111 2011-05-14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금방 그만둔걸로 보아 그리 나쁜사람들이 아니...라니요?ㅋㅋㅋㅋㅋㅋ 정말 착하시네요 그게 정신병의 일종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미 스토커라면 "난 당신에게 이성적인 관심이 없어요" 이런 소리 씨알도 안먹힘ㅋㅋㅋ 전 당해본적은 없지만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