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지 영진공 분들과 술자리를 했다. 좋은 친구들과 함께하는 술자리는 언제나 유쾌하다. 어제 난 그저께 했던 은퇴선언을 번복했다. 소주 두병 가량을 마시고도 끄덕없이 집에 간 것. 물론 3차를 안가고 도망치긴 했어도, 그 정도면 아직 난 젊다.
어제 우린 명동에 있는 <명동찜닭>에서 모였다. 모르긴 해도 장소를 그렇게 정한 건 조류독감 때문에 고사위기에 처한 양계장을 살려보고자 하는 의도이리라. 정말이지 사람들은 닭을 먹지 않는다. 닭으로 인해 조류독감-하마터면 조루독감이라고 쓸 뻔-에 걸린 사람이 한명도 없으며, 닭을 일정 온도 이상에서 조리하면 안전하다는 건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안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닭을 외면하며, 닭집 주인이 자살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조류독감은 우리나라에서 닭집 주인만을 죽였을 뿐이다. 이 사태에 관해 <범죄신호>라는 책의 일부를 인용한다.
[우리는 우리에게 책임이 있는 위험(흡연으로 인한 사망, 영양실조, 교통사고)-이런 것들이 우리에게 해로울 가능성이 더 높지만-은 무시하는 반면,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위험(비행기 충돌, 원자력발전 사고)에 모든 관심을 기울이는 경향이 있다. 앨빈 코너 박사는 <왜 무모한 사람이 살아남는가?>에서 "우리는 술을 마시고 안전벨트를 매지 않은 채로 운전을 하며 또 한대의 담배에 불을 붙인다...그러면서도 100만분의 1의 가능성이 있는 아랍 테러리스트의 공격 때문에 유럽여행을 취소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집트에서 살해당할 것이 두려워 피라미드 관광 여행을 취소하지만 사실은 집에 있는 것이 스무배나 더 위험하다....
우리는 어떤 위험들은 자초하면서 타인이 가하는 위험은 거부한다. "만일 내가 흡연으로 죽길 원한다면 그건 내가 알아서 할 일이지만, 어떤 회사가 석면이나 신경가스와 관련된 위험을 방치하려 한다면 나는 분노할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코너 박사는 지적한다...(49쪽)]
그렇다. 광우병과 조류독감에 대해 우리가 지금 보이는 반응은 분명 오버다. 몸에 해로운 술을 마시면서 "닭은 안돼!"라고 외치는 건 얼마나 우스운가. 불행 중 다행으로 어제 <명동찜닭>은 사람이 미어터져, 대기석까지 꽉 차 있었다. 사람들이 단체로 '닭집 살리기' 운동을 벌이는 걸까? 다른 닭집도 다 잘되기를, 그래서 닭집 주인이 더이상 희생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