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중에는 지기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어느 정도냐 하면...
나: 얼마 전에 고속도로에서 160 밟다가 걸렸어.
친구: 야, 난 200킬로로 달리다 걸린 적 있어.

나: 얼마 전에 큰일날 뻔했다. 맥주 한병 마시고 운전하다 검문에 걸렸는데, 정말 무섭더라.
친구: 야, 난 소주 세병 마시고 부산까지 왕복한 적 있어.

나: 배고픈데 밥 먼저 먹지 않을래? 나 어제 저녁부터 쭈욱 굶었어.
친구: 난 너보다 더 배고파. 지금 사흘째 굶고 있어!

난 이 친구가 매우 특이한 경우인 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엊그제 밤 9시쯤, 평화롭게 독서를 하고 있는데 친구에게서(아까랑 다른 친구다) 전화가 왔다. 술마시러 강남까지 나오란다. 알았다고 하고 옷을 챙겨입으려는데, 창밖을 보니 눈까지 온다. 눈이 오는 날, 술마시고 택시가 안잡혀 고생한 기억도 있고, 며칠째 술을 마셔서 몸이 안좋기도 해 나가지 말자는 생각을 했다.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오늘 술 안마시면 안될까? 나 오늘 마시면 5일짼데...
친구: 너만 그러냐? 난 지금 일주일째 하루도 안빼놓고 술 마셨다.
나: 밖에 눈도 오고 한데, 집에는 어떻게 가?
친구: 야, 난 너보다 집이 훨씬 더 먼데도 마시잖냐.
나: 그래도 좀 봐주면 안될까? 사실은 몸살기운이 좀 있어서...
친구: 나도 지금 약먹어가면서 술마시는 거야.

말로는 안되겠다 싶어 친구에게 울며 호소했다. 한번만 봐달라고. 친구는 "다음에 크게 한번 쏴"라며 전화를 끊었는데, 술 약속을 거절하는 건 이렇게 힘이 들고, 한번 거절한 건 빚으로 남는다. 언제나 술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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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nyside 2004-02-10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습니다. 거절이... 거절이 문젭니다. -.- 친구관계 뿐만 아니라, 업무에서도 거절 못해 받는 불이익이 얼마나 많은지.. 왜 세상은 저의 여리고 선한 심성을 지키며 살 수 없게끔 돌아가는지 모르겠어요. ^^;;; 그래서 저 위의 책표지 <거절을 즐겨라>가 눈에 확 띄었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품절이네요.

비로그인 2004-02-10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처음 친구분은 정말 사소한 것도 지기 싫어하시나보다-라는 생각을 했는데, 두번째 경우는 저두 종종 겪는 일인거 같네요. 나는 너보다 더 심해-라며, 나의 거절 사유를 결코 용납해주지 않는...결국은 마음의 빚으로 남죠. 에휴~

waho 2004-02-11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구들이랑 저런 경우에 저두 거절하는 법에 익숙하지 않아 곤란 할 때가 많읍니다. 요즘은 온통 "거절"해야 할 일들 투성인데...곤란하거든요. 집이 강릉이다 보니 집이 스키 시즌이면 콘도처럼, 여름이면 바다 보로 오는 사람들이 들려가는 통에 신경이 많이 쓰이거든요. 직장에 다니면서 사회 생활을 해봤더라면 좀 더 노련했을텐데...후회하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