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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6펜스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8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 민음사 / 2000년 6월
평점 :
책을 읽지도 않고 아는 체를 하다간 실수하기 십상이다. <달과 6펜스>에 대해 어디서 주워들은 게 있어서 "어, 그거? 고호 얘기지"라고 잘난 체를 했다가 한동안 그 사람을 피해다닌 쓰라린 경험이 있어서 하는 말이다. 서머싯 몸을 이제라도 읽어서 아는 체를 할 수 있게 된 스스로가 대견해 보인다. '6펜스'보다 달의 가치를 더 높게 생각할 나이에 읽었다면 훨씬 좋았겠지만 말이다.
난 이 책을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실존했던 인물을 대상으로 했고, 내가 원래 천재나 영웅의 이야기를 좋아하는지라 더더욱 재미있었을 것이다. 이 책을 읽기 전만 해도 난 고갱에 대해 안좋은 선입견을 갖고 있었다. 언젠가 고호에 관한 책을 읽었을 때, 고갱이 ‘이기적’이라는 말이 반복해서 나왔었던 탓이다. 게다가 고호의 그림들이 “아, 과연 천재구나!”라는 느낌을 주는 반면 고갱의 그림은,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의 반응이 그랬던 것처럼, 대체 그게 왜 명화인지 의아했었다. 그래서 난 “고갱이 고호와 동시대 인물이고 같은 성씨라 같이 뜬 게 아닐까?”라는 바보같은 생각까지 했었다. 하지만 나란 놈이 원래 아는 게 별로 없고, 남의 한 마디에 생각이 왔다 갔다 하는지라, 이 책을 읽고 난 뒤엔 고갱에 대해 완전히 다른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이 책이 고갱의 실제 모습과 다르다 해도, 하던 일을 때려치우고 미술계로 투신하는 그의 용기와 생활고에도 불구하고 계속 그림을 그린 인내심은 정말 존경할만하다.
‘자기가 바라는 일을 한다는 것, 자기가 좋아하는 조건에서 마음 편히 산다는 것, 그것이 인
생을 망치는 일일까? 연수입 일만 파운드에 예쁜 아내를 얻은 저명한 외과의가 되는 것이 성공인 것일까?(259쪽)’
예쁜 아내에 대해서는 좀 생각이 다르지만, 주인공의 이 말은 이 책이 주장하는 바를 함축하고 있다. 돈이 있다는 게 곧 훌륭함과 동일시되는 요즘 같은 시대일수록 이런 책이 더 읽혀야 할 것 같지만, 같은 이유로 부모들은 아이들이 <달과 6펜스>를 읽는 걸 싫어하지 않을까 싶다. 자기 자식이 “영혼이 날 부른다”며 미술을 하겠다고 할 때, 그걸 허락하는 부모가 우리나라에 얼마나 있을까? 그러고보면 과거와 달리 요즘 유명한 화가가 나오지 않는 이유는 색으로 표현할 수 있는 한계에 도달해서가 아니라 자본주의가 심화된 탓이 아닐까? 자본주의, 미술의 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