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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황제 역사 청문회
이태진.김재호 외 9인 지음, 교수신문 기획.엮음 / 푸른역사 / 2005년 5월
평점 :
품절
토론이란 건 정말 어렵다. 논리가 맞붙는 장이 아닌 말꼬리 다툼이 되기 십상이고, 결국에는 감정싸움이 되어 토론이 끝나고 나면 원수가 되버린다. <고종황제 역사 청문회>는 토론에 대해 가졌던 선입견을 씻을 수 있는, 예의 바르고 자신의 논리에 충실한 대결이 이루어진 멋진 무대였다. 마주앉아 토론을 하는 대신 '교수신문'에 번갈아가며 글을 싣는 식으로 토론이 이루어진 것도 감정싸움으로 치닫는 것을 방지했으리라.
가끔씩 사회자가 그간의 경과를 정리해 줘 토론의 진척상황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었고, 자기 주장에 대한 근거가 튼튼해 '고종은 왕의 자질이 없었던 사람이었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던 나같은 사람마저도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책을 덮고 나니 고종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오히려 증폭된 것으로 보아 토론이란 게 한 사람의 생각을 바꾸기는 참으로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는 나랑 입장이 같은 분들이 토론을 잘했다기보다 내 고정관념이 반대측 사람들의 주장에 귀를 닫게 만든 측면이 더 크다. "강 박사는 여러 가지 부담 때문에 논쟁에 참여해 달라는 요구에 매우 곤혹스러워했다"거나 "서영희 교수는...이태진 교수와의 관계 때문에 논쟁 참여를 여러 차례 마다했지만"이란 대목을 보면서 아직도 우리나라에서는 토론을 한다는 게 그다지 쉽지는 않구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더욱이 이영희 교수가 쓴 다음 글은 순도 100%의 비아냥으로, 원만한 토론을 방해할 뻔한 대목이었다.
[그런데 이 교수는 성리학의 교의에 더없이 충실한 민국이념을 근대지향이라고 함으로써 우리들의 오랜 상식과 전통을 간단히 일축하고 있다. 상식과 전통은 결국 어느 위대한 지성에 의해 무너지기 마련이다. 나는 이 교수가 그러한 위대한 전환을 시도하고 있는 중인지 매우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97쪽)]
읽고나니 나도 이런 식의 토론을 누군가와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 정도였는데, '배리 본즈가 위대한 타자인가?'을 주제로 하면 어떨까 싶다.
내 친구 중 아주 젊은 남자애가 있다. 그는 우연한 기회에 내게 메일을 보냈고, 나와 답장을 주고받는 와중에 친구가 되었다. 내가 알기에 그의 나이는 20대 초반인데, 아직 일면식도 없지만 그는 내게 주옥같은 음악을 수시로 보내주고, 자신이 재미있게 읽은 책을 내게 추천해 준다. <고종황제 역사 청문회>를 내게 권한 것도 그 친구인데, 인터넷이 아니었다면 이런 관계가 무척 어려웠을 것이다. 지금 시대에 태어나 인터넷의 혜택을 보게 된 걸 행운으로 여기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