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에서 젊은 여자가 구역질을 하면 무조건 임신을 의심한다. 임신의 상징이 되어버린 구역질은 전체 임산부 중 60-85%가 경험한다는데 (미국 통계임), 그 원인에 대해서는 해석이 다양하다. 정신과 선생님의 말씀에 의하면 구역질이란 어머니가 될 마음의 준비가 안된 산모가 갖는 "태아를 죽이고 싶은 욕망"이 무의식적으로 발현된 것이란다. 굉장히 그럴듯한 말이라서, 한 십여년 동안 그걸 대단한 진리인 것처럼 남들에게 떠들곤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란다. 어제부터 읽기 시작한 <나는 고발한다, 현대의학을>을 보니 그 이론에 대해 이렇게 나와있다.

[아직도 많은 의사들이 임신오조(구역질하는 것)를 임신에 대한 무의식적 거부로 인한 증상이라는 한물간 프로이드 이론을 신봉하고 있는 모양이다]
윽, 그렇구나. 그게 아니라면 도대체 뭐지? 이 책에 씌여진 대목을 옮겨본다.

[프로펫(M. Profet)은 입덧이 태아가 자연독에 노출되는 것을 줄이기 위해 발달된 현상일 수 있다고 하면서, 입덧을 하는 임산부들이 쉽게 상하지 않는 자극성 적은 음식(빵이나 시리얼) 등을 선호하며, 쓰거나 자극성 있는 음식, 신선하지 않은 동물성 제품처럼 고도의 자연독이 함유된 음식들을 특히 싫어한다는 사실을 증거로 들었다(183쪽)]
그러니까 입덧은 태아의 자기방어 시스템의 일환인 셈이다.

[그 이론은 입덧이 왜 주로 처음 3개월간 발생하는지도 설명한다. 그 시기는 태아가 장기를 발달시키며 독성물질에 가장 민감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시기에는 태아의 크기가 작아서 모체에 저장된 지방만으로도 필요한 열량을 쉽게 충당할 수 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보통 또는 중증의 입덧 증상을 보였던 산모들이 입덧이 경미하거나 전혀 없었던 산모들보다 유산률이 낮았다(같은 쪽)]

이렇게 깊은 뜻이! 태아도 참 대단한 놈인 게 틀림없다. 엄마가 해로운 걸 못먹게 하려고 입덧을 시키다니. 그런데 태아는 어떻게 그런 일을 하는 것일까? 독성 물질을 엄마가 먹으면 어떤 단백질 같은 것이 태아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그런 단백질이 발견된다면, 임신 중 입덧이 아주 심한 사람-심지어 그 때문에 유산을 하는 사람도 있단다-에게 그 단백질의 항체를 투여해 입덧을 가라앉힐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 책에 안나온 걸 보니, 아직까지 어떤 물질이 입덧을 유발하는지는 밝혀지지 않은 모양이다.

입덧과 관계가 없지만 얼핏 기억이 나는 또하나의 이야기는, 임신 중 엄마의 면역이 약해지는 것은 태아 역시 이물질이므로 자신의 면역이 태아를 공격하지 못하도록 하는, 즉 태아를 보호하는 기전의 하나라는 것. 하여간 어머니와 아이가 겪는 열달 동안의 과정은 정말 신비롭기 그지없는 현상이고, 내가 인간을 아메바 같은 생물에서 진화한 게 아닌, 신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것을 믿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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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맘 2004-02-03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오...그러고보니, 입덧을 할 때는 대부분 <신 것>을 먹고 싶어하지요? 염장식품과 더불어 초절임같은 식초 음식도 부패할 가능성이 적은데...신기하네요.
고등학교 때 꿈의 해석을 읽은 후로 프로이드를 꽤나 신봉했지만...역시, 좀 <오버쟁이>입니다.^^;;;

111 2011-05-21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오 몰랐어요 인체의 신비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