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이 80일 앞으로 다가왔다. 어찌보면 대선보다 더 큰 한판승부가 바로 총선인 바, 지금부터 하는 일은 모두 총선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면 맞을 거다. 노무현이 4월 1일 만우절날 고속전철을 개통하겠다고 하는 거나, 한창 수사중인 대통령 측근비리를 가지고 한나라당에서 청문회를 하겠다는 거나, 총선이 아니었으면 일어나지 않을 일들이다. 김대중이 대통령을 할 때 총선 사흘전 남북정상회담을 발표했다가 역풍을 받아 참패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선을 겨냥해 한탕 하려는 버릇은 여전한 것 같다.
1) 이만기
누구나 다 아는 대선후보에 비해, 총선후보는 대개 알려져 있지 않다. 정치신인의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각 당에서는 지명도가 있는 사람을 끌어들이기 위해 열심히 노력 중이다. 박원순, 최열같은 시민운동가는 물론 이계진 같은 아나운서도 각 당에서 러브콜을 받는다. 이만기. 천하장사를 열번이나 한 그는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경남에서 나온단다. 그 얘기를 듣고 기가 막혔던 것은 그가 씨름선수 출신이어서가 아니다. 난 씨름선수 출신도 얼마든지 정치를 잘 할 수 있다고 믿으며, 특히 몸싸움을 많이 해야하는 우리 국회의 특성상 이만기가 꼭 필요한 존재라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그것도 정도와 원칙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4년전을 생각해 보자. 이만기는 그때도 경남에 공천신청을 했다. 한나라당 소속으로 말이다. 막판에 김호일한테 밀려 공천이 취소되자 "업어치기를 하겠다"느니 하는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 그가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공천을 낸다?
열린당과 한나라당은, 물론 별 차이가 없게 보는 사람도 있지만, 이념적으로 제법 차이가 있다. 예컨대 국가보안법의 존페여부나 햇볕정책에 관한 관점 등은 두 당이 다르다. 그렇다면, 두 당에 모두 공천 신청을 한 이만기의 소신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정치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최소한의 소신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당 저당을 왔다갔다 하는 철새도 수두룩하지만, 이제 막 정치를 시작하는 신인이 그래서야 되겠는가? 열린당도 그렇다. 힘들게 민주당을 깨고 나온 이유가 '새로운 정치'라면, 그에 걸맞는 새로운 인물을 공천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한나라당 소속인 김혁규 지사를 영입하고, 강금실의 출마를 목놓아 바라고, 한나라당에서 공천 탈락한 이만기를 끌어들이는 걸 보면 당을 왜 따로 만들었는지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2) 황수관
난 그가 싫지도 좋지도 않다. 관심이 없다는 뜻이다. 그가 나오는 TV프로를 거의 본 적이 없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별로 웃기지도 않는 그가 왜 그리 TV에 자주 나오는지 이해가 안간다.
그런 그가 4년 전 내 터전인 마포을에서 민주당 후보로 나왔다. 마포을은 사실 몇십년 전부터 전통적인 야당지역이었고, 그 유명한 신성일마저 공화당 공천을 받았다는 이유로 낙선시킨 곳이다. 그 전통은 봉두완이 민정당 후보로 전국 최다득표를 하면서 깨어졌지만, 그래도 난 나름대로 마포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노승환이란 사람이 마포의 터줏대감이다). 그런데... 황수관이 구야당을 계승한 민주당 후보로 나왔다고? 그땐 내가 다른 곳에 살고 있어서 투표를 못했지만, 거기 계속 살았다면 아마도 기권했을게다 (당시 민노당은 후보를 안냈다). 정치에 대한 아무 철학도, 소신도 없는 사람을 단지 TV에 나왔다는 이유로 마포에 공천한 건, 적어도 내게는 마포에 대한 모욕으로 느껴졌다.
박주천에 밀려 낙선했던 그는 이번에 한나라당에 비례대표 신청을 냈단다. 정치에 관한 철학이 없다는 내 예상은 정확히 들어맞었다. 그래서 씁쓸하다.
3) 누굴 찍지?
박주천은 마포에서 3선을 했다. 국회의원 대부분이 그렇지만, 박주천도 집이 부자다. 그냥 부자이기만 한 게 아니라, 지역 발전을 위해 많은 공헌을 했다. 그가 3선을 한 것도 그 점을 높이 산 것이리라. 하지만 난 국회의원을 지역발전을 잣대로 평가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모든 국회의원이 자기 지역구만 챙기려고 예산을 끌어간다면 이 나라는 도대체 누가 지킬까? 하지만 조순형의 지역구에서조차 "지역에는 신경안쓴다"고 욕을 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자기 지역을 따지는 유권자들은 아직도 많다.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한다해도 난 박주천이 싫다. 그가 한나라당이라서 그런 건 아니다. 기업을 잘 봐주겠다며 돈을 받아먹은 게 탄로가 나, 감옥에 있어서도 아니다. 별의 별 국회의원이 있긴 하지만,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국회의원을 하기에는 자질이 너무 떨어진다.
김현철의 주치의였던 박경식이 청문회에 나왔을 때, 그의 행태는 가관이었다. 박경식에게 쩔쩔 매면서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이렇게 땀까지 흘리는데 잘 좀 답변해 달라"는 소리나 하고... 박경식이 그랬다. "그러는 의원님은 나라를 위해 무슨 일을 하셨냐"고. 그 얘기를 듣고도 박주천은 찍소리 한번 하지 못했다. 그때 난 체육사에서 테니스 라켓의 줄을 매고 있었는데, 줄을 매던 사람이 이랬다. "으이그, 저거 어느 동네 출신이야?" 가만히 있었으면 좋았을걸 반사적으로 답했다. "우리 동네요!" 그 후부터 그 아저씨는 날 그다지 좋게 보지 않는 듯하다.
감옥에 있긴 해도 그는 옥중출마를 한단다. 군사독재 시절 옥중출마가 아주 멋지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이 그런 시절인가? 모르긴 해도, 한나라당 역시 세간의 화두인 물갈이를 외면할 수 없을테고, 비리로 감옥에 간 그를 공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면 누가 나올까? 모르겠다. 우리집에 걸려온 ARS 전화에서 후보를 쭉 불러 줬는데,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물론 앞으로 차차 알아가면 되겠지만, 지금으로서는 누굴 찍을지 아무 생각이 없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당보다는 인물을 보고 찍어야겠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