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학교에 다니던 80년대만 해도 '섹시하다'라는 말은 칭찬이 아니었다. '섹시' 혹은 '야하게 생겼다'는 말은 그당시는 '헤프다'는 뜻으로 들렸다. 한 여자애가 자기더러 "섹시하게 생겼다"는 말을 한 남자에게 화를 내던 기억이 난다.
언제부터인가 시대가 변했다. '섹시'는 여자에게 최고의 찬사로 자리잡았다. 공중파 방송에서도 '섹시'라는 말은 하루에도 수십번 나온다. 연예인을 소개할 때 "섹시의 대명사" 어쩌고 하는 경우도 많이 본다.
언젠가 군인들에게 가장 좋아하는 여배우가 누구냐는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1등은 그당시 별로 유명하지도 않은, '눈동자'로 막 뜨기 시작하던 엄정화였다. 군인들은 섹시한 여자를 좋아한다는 점에서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다. 섹시의 특징 중 하나가 촛점없는 눈동자인데, 그런 면에서 엄정화는 딱이다.
<오리지널 씬>을 보기 전까지 누군가 내게 "니가 생각하는 가장 섹시한 사람은 누구냐?"고 묻는다면 아마 난 "글쎄?" 하면서 "이소라?" "엄정화?" 이런 대답을 했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키가 그다지 크지 않고 귀여운 스타일인지라 '섹시'에 관해서는 별로 생각해 보지 못한 까닭이다. 하지만 지금 내게 같은 질문을 한다면 나는 1초도 안되어서 대답을 할꺼다. "안젤리나 졸리요!"라고 말이다. 그녀가 주연한 '오리지널 신'에서, 졸리는 섹시가 뭔지를 유감없이 보여 주었다. 야한 장면이 그리 많지 않음에도 아주 야한 영화를 본 것같은 느낌이 드는 건 바로 그녀 때문이었다.
내가 손가락을 입에 넣으면 주위에서 "더러워!"라고 말할 꺼다. 하지만 안젤리나 졸리는 손가락을 입에 넣어도 야하고, 고개를 45도 각도로 돌려도 야하고, 무슨 말을 해도 야하다. 별 줄거리는 없지만 화면에 있는 그녀의 모습만 바라봐도 별로 돈이 아깝지 않은 영화가 아닐까. 화면을 정지시켜놓고 관찰한 결과 그녀의 섹시함은 엄정화와는 비교가 안되는 촛점없는 눈동자와 두툼한 입술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하는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렸다.
물론 입술이 두껍다고 아무나 야한 건 아니다. 우리 때 한 남자애는 입술이 두꺼워서 별명이 '썰면 두접시'였던가 그랬다. 또한 촛점이 없다고 누구나 야할 수는 없다. 나같은 사람이 그랬다간 "멍청해 보인다"는 소리만 들을 뿐이다.
좌우지간 이쁘다는 건 좋은 것 같다. 이뻐지려는 건 자기만족 때문도 있겠지만, 입신양명에도 도움이 된다. '이쁘면 성공하는 데 있어 유리하다'라는 말에 여성의 80% 이상이 동의했다나. 이뻐서 손해를 봤다는 사람이 별로 없는 걸 보면 우리 사회가 너무 미모만을 절대적 잣대로 고집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하여튼, 이름은 '졸리'지만 잠이 확 깨는 '졸리'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