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온 Go On 1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9년 5월
평점 :
절판


<빅픽처> 이후 더글라스 케네디 (이하 더글라스)는 내가 아는 작가 중 이야기를 가장 재미있게 풀어가는 작가였다.
하지만 내가 익숙해져서 그런지 그 다음 작품부터는 밤을 새면서까지 읽게 되진 않았고,
거기서 더 시간이 지나자 새 책이 나와도 안사게 됐다.
그의 신간 <고 온>을 읽은 것은 더글라스의 팬인 아내가 책을 샀기 때문,
요즘 어려운 책만 읽고 있어서 머리가 무거웠고,
마침 또 멀리 갈 일이 있기도 해서 가방에 <고 온> 1, 2를 챙겨넣었다.

‘이게 얼마만의 더글라스 케네디냐.’


헤어진 연인을 우연히 만난 기분으로 책을 펼쳤지만,
진도는 쉽사리 나가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주인공인 앨리스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더글라스의 소설은 여성이 주인공인 경우가 많은데,
그 여성들의 말투가 좀 피곤한 스타일이다.
별것도 아닌 걸 물고 늘어진다고나 할까?
앨리스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자신이 사귀는 밥이란 친구가 풋볼선수라는 게 마땅치 않아 했는데
결국 밥은 풋볼을 그만두기로 한다.
문제는 그 결정을 풋볼팀에게 먼저 얘기했다는 점이다.
앨리스는 이게 못내 서운하다.

앨: 왜 어제 얘기하지 않고 오늘까지 기다렸어?
밥: 적당한 때 얘기하려고.
앨: 내가 들을 준비가 돼 있지 않은 것 같았어?
밥: 왜 그렇게 말해?
앨: 매우 중요한 결정인데 하루 반이 지나서야 나에게 얘기하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모두들 알고 있는데 나만 모르고 있었던 셈이잖아.
밥:...풋볼은 내 삶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잖아. 익숙한 세계와 결별하자니 나도 모르게 기분이 서글퍼졌어.
앨: 나 때문에 풋볼을 그만두었다는 뜻이야? (184쪽)

풋볼을 그만둔 것은 밥이 그만큼 앨리스를 사랑한다는 뜻,
그런데 앨리스는 자기보다 풋볼팀에게 먼저 그 사실을 통보한 게 기분이 나빠 밥을 잡다시피 한다.
이때뿐 아니라 앨리스는 전반적으로 이런 식의 날선 태도를 보이는데,
이거야 뭐 캐릭터라고 넘어가자.

더 큰 문제는 앨리스에게 최소한의 도덕성마저 결여됐다는 점이다.
고교 시절 앨리스는 아놀드란 친구와 깊이 사귄다.
변호사를 꿈꾸는 아놀드는 매우 똑똑한 친구로, 앨리스가 사건에 휘말렸을 때 큰 도움을 준다.
둘이 다른 대학에 진학했을 때, 난 앨리스가 아놀드 때문에 다른 남자를 안사귈 줄 알았다.
그러기는커녕 빛의 속도로 밥과 사귀고, 곧 동거를 시작한다.
아웃 어브 마인드 어쩌고 하는 격언으로 이 행위를 이해한다 쳐도,
그 다음 하는 짓들은 정말 가관이다.
자신을 가르치는 행콕 교수에게 연정을 품더니,
소설을 쓰는 던컨이란 친구와 술을 같이 마신다.
밥이 모임이 끝나자마자 합류하기로 했으니 이건 그럴 수 있다고 치자.
다음 장면.
[던컨이 갑자기 내 손을 잡았고, 나는 뿌리치거나 빼지 않았다. 술기운 때문이 아니었다. 던컨이 내 입술에 키스를 했을 때에도 밀쳐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내가 더 적극적으로 키스했다. 이러면 안된다는 죄책감이 오히려 더욱 어두운 욕망을 부채질했다. (237쪽)]
일말의 양심이 있기에 더 진도를 나가려는 던컨을 앨리스가 만류한다.
던컨은 물러서지 않는다.
[던컨: 앨리스 나 네가 좋아. 넌 어때? 우리 감정에 솔직해지자.
앨: 난 감정에 충실해야 할 사람이 있어.
던컨: 충실? 지금은 1973년이고, 그런 의무 따윈 없어.
...잠시 뒤 나는 또 던컨을 껴안고 키스했다. 던컨이 더욱 격렬하게 반응했고, 나도 더 흥분을 느꼈다. 던컨의 손이...나는 거부하지 않았다. 오히려 짜릿한 전율을 느끼며 몸을 더 밀착시켰다.(237-238쪽)]

그러던 중 밥이 인생의 위기에 처한다.
밥의 행위는 비난받아야 마땅하지만, 그래도 둘은 연인 아닌가.
위로해 줄 수도 있을텐데 앨리스는 정말 냉정했고, 결국 이렇게 말한다.
“이제 우리도 끝이야.”
앨리스가 밥에게 요구하는 그 엄격한 도덕성을 자신에게 한번 되돌렸다면 어땠을까?
밥이 없어지니 이젠 거리낄 게 없어진 앨리스,
그녀는 그 뒤 마음껏 썸을 타는데, 좀 너무하다 싶었고, 짜증도 났다.

물론 그 뒤 큰 사건이 닥치는지라 계속 책을 읽게 됐지만,
그 큰 사건도 더글라스의 책을 몇 권만 읽어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줄거리를 재미있게 쓰는 능력, 존경한다.
하지만 난 소설을 읽을 때 주인공에게 동화되려고 노력하는지라
주인공이 최소한의 윤리는 지키는 사람으로 만들어주면 좋겠다.
그게 아니라면, 이번 책이 내 마지막 더글라스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감은빛 2019-06-10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느 순간부터 더글라스 작품에 손이 가지 않더라구요.
너무 뻔한 느낌이랄까
매력적이지 않다고 해야할까
암튼 그렇더라구요.

마태우스 2019-06-11 0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이어요 그간안녕하셨어요 노통브 알랭드보통 베르베르 다들 확조아하다 절연한 작가들이죠 유일하게 오래가는 작가는 미미여사뿐

미운오리새끼 2019-06-13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제로 뵙게 될 기회가 있을 줄 알았다면 이 북플에서 멀어져 있지 말걸...하는 후회를 잠시 해본 하루였습니다. 오늘 낮에 해운대 어느 학교 계단에서 짧은 인사라도 드릴 수 있어 정말 반가웠습니다. 마태우스님 덕에 다시 리뷰를 공유하는 용기를 내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3년이 지났네요. 물 속에서 혼자 버티고 있었던 시간들이...그냥 마태우스님의 등장만으로도 잠시 소통의 욕구가 생긴 하루였습니다. 감사해요.

마태우스 2019-06-19 11:56   좋아요 0 | URL
알라딘 어느 분이신지 궁금했는데 이렇게 댓글 달아주셔서 고맙습니다. 물속에서 혼자 버티고 계셨군요. 물속은 너무 차갑습니다. 그래도 부대끼는 세상이 더 좋지요. 앞으론 여기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