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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학의 거의 모든 역사
제임스 르 파누 지음, 강병철 옮김 / 알마 / 2016년 1월
평점 :
이런 말을 하는 게 좀 쑥스럽지만, 그간 ‘의학의 역사’라는 책을 쓰느라 바빴다.
제목은 정해진 게 아닌데, 아무튼 신석기시대부터 최근까지
의학의 발전과정을 다루는 내용이다.
첫 삽을 든 것은 3월 초의 일이였으나 글에만 매달리기엔 사정이 그리 좋지 않았기에
짬이 날 때마다 쓰다보니 결국 원고를 다 완성한 게 9월 말이다.
지금은 수정 단계인데, 고칠 부분이 워낙 많다보니 언제쯤 책이 나올지는 아직 모른다.
이 책을 쓰기 위해 시중에 나와있는 ‘의학의 역사’를 거의 다 구입해 읽었다.
그 중 최고의 책을 꼽으라면 단연 제임스 르 파누가 쓴 <현대의학의 거의 모든 역사>다.
워낙 알찬 정보가 많은데다
의학발전에 기여한 결정적인 에피소드들이 재미있게 나열돼 있어서 읽는 내내 즐거웠다.
신장이식에 혁혁한 공을 세운 ‘로이 칸’이란 의사의 에피소드를 보자.
[“당시 과장님이 그 아이가 1-2주 안에 죽을 거라고 말했기 때문에 되도록 편안하게 해주어야 했지요.”라고 칸은 회상했다. “나는...콩팥 같은 장기는 과일 나무나 장미 가지를 이식하는 것과 비슷한 방법으로 이식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물어보았죠. 신장을 이식할 수는 없나요? 과장님은 대답했어요. 안 돼. 불가능해. 왜요? 안 되니까 안 되지. 옆에 있던 친구가 더 이상 묻지 않는 편이 낫겠다고 속삭였어요.” (180쪽)]
게다가 번역도 오자나 비문 하나 없이 완벽하다시피해서, 술술 읽힌다.
가격이 3만3천원이라 좀 비싸긴 해도, 598쪽에 이르는 분량을 생각하면 수긍할 만하다.
책을 쓰는 내내 생각했다.
이렇게 훌륭한 책이 있는데 도대체 내가 왜 또 의학의 역사를 쓴단 말인가?
가장 큰 이유는 ‘출판사가 시켜서’지만,
책을 쓰면서 나름의 의미를 부여한 게 ‘의학의 역사를 재미있게 쓴 책은 없잖아?’였다.
하지만 다 쓰고 난 뒤 수정을 위해 내가 쓴 원고들을 다시 읽어보다 보니,
‘재미’ 면에서도 <거의 모든 역사>가 나은 것 같다.
하지만 지금사 확인한 알라딘 세일즈 포인트는 충격 그 자체다.
2016년 1월에 나왔으니 2년 반이 더 지나긴 했지만,
‘429’의 세일즈 포인트는 이 좋은 책이 받아야 할 점수 치고는 너무 적어 보인다.
리뷰는 물론이고 100자평마저 하나 없다는 것 역시 안타깝다.
그러니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의학의 발전사에 대해 별 관심이 없는 모양이다.
여기서 앞으로 나올 내 책의 운명을 점쳐볼 수 있다.
이렇듯 훌륭한 책이 429라는 결과에 좌초하고 만 걸 보면
그보다 못한 내 책이 잘 될 것 같진 않다.
이 생각을 하면 그간 책을 쓰느라 고생했던 게 아깝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책 쓰는 것만큼 좋은 공부는 없는 법,
덕분에 내가 의학의 역사에 대해 잘 알게 됐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