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네 마리 늑대 - 생태계를 복원한 자연의 마법사들
캐서린 바르 지음, 제니 데스몬드 그림, 김미선 옮김 / 상수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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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네 마리 늑대

 

이 책을 읽으면서 떠오른 것은 자연의 신비함이다.

자연은 자연스럽게 두어 자연이 스스로 되어가도록 해야지,  거기에 사람의 행위가 들어가면 안 된다는 것,  깨달았다

 

옐로스톤, 미국의 국립공원이다.

이 공원은, 1872년 3월 1일, 세계에서 처음으로 국립공원이 되었다.

그런 공원에 늑대 14마리를 방사하기로 결정했다. 1995년의 일이다.

 

이 공원에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 공원이 생긴 후 몇 백년을 늑대들이 지배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 늑대가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사냥꾼들이 늑대의 털을 노려 덫을 놓았고, 가축을 해치면 총으로 쏘아 죽였다.

그렇게 하다가 결국 늑대는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인간의 손에 의해 모두 멸절하고 만 것이었다.

 

늑대가 사라지자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그러자 어떤 일이 생겼을까?

인위적으로 포식자가 사라지가 옐로스톤 공원의 생태계가 변하기 시작했다.

늑대가 사라지자 늑대의 먹이었던 엘크가 번성하기 시작했다.

엘크의 먹이는 풀이다. 그들은 늑대의 위협이 사라지자, 마음껏 풀을 먹으면서 번성하기 시작했다.

 

엘크가 늘어나자,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강둑을 따라 자라나던 새순을 야금야금 씹어먹는 바람에 나무가 새로 자랄 수 없었다.

한때 풀로 무성했던 푸른 초원은 이내 황폐해져서 갈색으로 변하고 말았다. (7쪽)

 

옐로스톤 공원의 생태계가 파괴되버린 것이다.

 

엘크가 골짜기를 차지하자, 다른 야생동물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나무가 자라지 않자, 나무에 집을 짓던 새들도 더 이상 살 수 없었다.

다른 동물들도 쉴 곳을 잃어버렸고, 먹이도 구할 수 없었다.

 

이런 문제에 봉착하여, 환경보호 활동가들은 늑대가 사라져서 그런 일이 생긴 것이라며

늑대를 불러들이면 될 것이라 주장했다. 다시 늑대가 옐로스톤 공원에서 살도록 공원에 풀어놓자는 것이다.

 

그런 논의가 무려 20년동안이나 이어졌고, 드디어 늑대를 다시 들여놓도록 하자는 쪽으로 결정이 되었다. 

그래서, 캐나다에서 늑대 14마리를 생포해서, 옐로스톤 공원에 풀어놓게 된다.

 

늑대가 나타나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래서 이 책 제목인 『열 네 마리 늑대』는 옐로스톤 공원에 다시 들여놓는 늑대 14마리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게 늑대 14마리가 옐로스톤 공원에 다시 나타나자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늑대가 사라질 때 일어났던 사건들이 이번에는 거꾸로 생겨나기 시작했다.

 

늑대가 다시 나타났을 당시 옐로스톤 공원에는 약 2만 5천 마리의 엘크가 있었다.

늑대들은 엘크를 먹이로 삼아 잡아먹기 시작했고, 엘크가 사라지자 엘크 때문에 없어졌던 풀들과 나무들이 다시 자라나기 시작했다. 나무가 잎을 무성하게 자라나니 거기에 새들도 다시 깃들기 시작했다.

 

늑대가 나타나자, 이런 일이 일어났다.


 


 

그렇게 차츰차츰 생태계가 복원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다시, 이 책은?

 

이 책은 그렇게 다시 복원된 옐로스톤 공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자연의 생태계를 유지하기 위해, 한번 무너진 생태계를 복원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힘을 기울여야 하는지를 옐로스톤 공원의 사례를 통하여 잘 보여 주고 있다.

 

자연이 돌아가는 원리는 어떤 것일까? (44쪽 이하)

 

자연 속에서 동물과 식물은 생존하기 위해 서로서로 의지하며 살아간다, 는 것이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식물은 동물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늑대가 사라지자 연쇄반응이 일어나 생태계가 무너졌고, 늑대가 다시 나타나자 또한 연쇄반응이 일어나 생태계가 복원된 것이다.

 

이 책, 그런 원리를 실제 사례인 옐로스톤 공원의 늑대를 통해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실로 간단한 일이면서도 놀라운 일이다.

 

생태계를 복원한 자연의 마법사, 늑대 열 네 마리.

우리 주변에도 무너진 생태계를 살리기 위한 자연의 마법사를 들여놓을 곳이 많다.

특별히 기후 변화로 인한 이상 기후에 봉착한 인류에게, 이런 마법사들이 시급하다는 것,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니, 이런 책으로 경각심을 심어주는 것, 필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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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와 함께 프란츠 파농 읽기
박홍규 지음 / 틈새의시간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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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와 함께 프란츠 파농 읽기

 

파농은 모른다. 그의 책을 읽어본 적이 없다.

카뮈는? 겨우 『이방인』과 『페스트』 정도 읽어보았다.

 

해서 이 책은 그 두 사람을 자세히 알아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그러니, 나야말로 저자가 의도한 이 책의 저술목적에 딱 들어맞는 독자이다.

저자는 이 책의 저술목적을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밝히고 있다.

 

이 책은 카뮈와 함께 파농을 읽자고 권하는 책이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카뮈를 읽는 사람은 많지만, 파농을 읽는 사람은 적기 때문이다.

또 식민지 해방 문제를 각각 연대와 독립이라는 차원에서 두 사람을 함께 읽고 생각할 이유가 많다.

그리고 한국의 카뮈나 파농에 대한 책에 알제리나 마르티니크의 역사를 비롯하여 두 사람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상식에 대한 소개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14-15쪽)

 

그러면 무엇무엇을 알아야 할까? 목차를 살펴보면, 저자가 주목하고 있는 부분이 보인다.

 

1장 왜 카뮈와 파농인가_이 책을 쓰는 이유

2장 카뮈와 파농의 고향_알제리와 마르티니크

3장 카뮈와 파농의 성장_노동자의 아들들

4장 1940년대의 카뮈와 파농_부조리와 차별

5장 카뮈와 파농의 1950년대_반항과 반란

6장 알제리 전쟁_절망하지 않기 위해

7장 카뮈와 파농의 비전_새로운 인간

 

해서, 먼저 알제리 나라와 도시 이름 확실히 알아두자.

 

알제리의 수도는 알제다.

알제는 알제리 인구 최대의 도시이자 수도이며, 알제리의 북쪽 끝에 위치하여 있다.

‘알제’라는 이름을 듣고 맨처음에 오자인 줄 알았다. 알제리를 급하게 쓰다가 ‘알제’라고 한 줄 알았다. 이제 확실히 알게 된다. 알제리와 알제의 차이를.

 


 

 그리고 ‘오랑’이란 도시도 실제 알제리에 있는 도시라는 것도 확실하게 알게 된다.

하기야 『페스트』를 읽으면서는 오랑이 가공의 도시인줄 알았으니, 이제 많이 알게 된 셈이다.  

특히 ‘오랑’은 카뮈의 처가가 있는 도시다.

 

실직한 카뮈는 오랑으로 갔다. (151쪽)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신문사가 경영난에 처하는 바람에 카뮈는 다시 실직했고, 처가가 있는 알제리 오랑으로 간다.(153쪽)

 

그리고 알제리의 위치와 나라 현황도 알아두자.

 

국명 : 알제리 민주 인민 공화국

면적 : 238만 제곱킬로미터 (한반도의 20배가 넘는다, 남한보다는 40배가 넘는다.)

인구 : 2천만명 조금 넘는다. (75쪽)

 

북아프리카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주권 국가이다. 알제리는 세계에서 10번째로 넓은 국가이자, 아프리카에서 가장 넓은 국가이다.

 

이제 파농에 대하여

 

파농에 대하여는 전혀 아는 바 없어, 이 책에서 처음 접했다.

그의 삶에 대한 정보가 아주 자세하게 나와 있어, 그의 삶과 사상을 이해하는데 아주 좋은 교과서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파농은, ‘식민지가 인간성을 파괴한다는 이유로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으로 기억이 시작한다.

 

파농의 고향 마르티니크는 제주도 반정도 크기. (83쪽)

 

파농과 관련있는 나라와 도시는 알제리도 있지만 그 옆의 나라인 튀니지도 있다.

그는 알제리에서 추방된 후에 그 옆의 나라인 튀니지에서 알제리 민족 해방전선에 가담하여 알제리를 위해 투쟁했다.

 

튀니지(Tunisia)는 나라 이름인데, 그 나라 수도는 튀니스(Tunis)다.

 

그들의 작품 독해 가이드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이 그들의 작품 소개한 부분이다.

 

카뮈의 작품 :

 

『이방인』 154쪽

『시지프 신화』 165쪽

『페스트』 173쪽,

『반항인』 199쪽

『전락』 262쪽

『적지와 왕국』 270쪽

『최초의 인간』 185쪽

 

『이방인』은 카뮈를 거세 콤플렉스의 희생자로 보는 정신분석학적 견해로부터 카뮈를 식민주의의 지지자로 보는 견해까지 다양한 평가를 받아왔다. (160쪽)

 

『페스트』의 주제는 연대의식이다. (175쪽)

 

카뮈는 『반항인』에서 혁명이 아닌 반항을 통해 부조리를 극복하고자 했다. (201쪽)

 

파농의 저작 :

 

『검은 피부, 하얀 가면』 214쪽

『알제리 혁명 5년』 319쪽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 331쪽

 

『검은 피부, 하얀 가면』에서는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드는 생각거리들이 있다.

예컨대, ‘흑인의 자기 이해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하는 문제의식인데, 이 부분이 파농을 1960년대 이후에 흑인들로부터 환영받았던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이에 대하여는 이런 말 기억해 두고 싶다.

사람은 주위의 다른 사람들을 참조하지 않으면서 자기를 결코 설명할 수 없다. 인간이 자기를 해석하는 동물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221쪽)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하여 두 사람의 작품 대부분을 살펴볼 수 있다.

저작의 동기부터 시작하여 작품의 개요, 그리고 그 작품에 대한 평자들의 비평과 저자의 날카로운 비평 또한 들을 수 있으니, 카뮈와 파농을 이해하는 데 최상의 교재라 할 수 있다.

 

밑줄 긋고 새겨볼 말들

 

나의 육체여, 나로 하여금 항상 물음을 던지는 인간이 되게 하소서. 파농 (195쪽)

 

인간이 인간을, 말하자면 자아가 타자를 노예화하는 일을 그만두기를. 파농. (245쪽)

 

카뮈는 이렇게 죽었다.

 

1960년 1월 3일의 일이다. 파리로 가는 길에 그가 탄 자동차가 도로를 벗어나 플라타너스 나무를 들이받았다.

조수석에 탔던 카뮈는 그렇게 죽었다. 의사에 의하면 카뮈는 이미 양쪽 폐가 심하게 감염되어 있어 자동차 사고가 아니었더라도 오래 살지 못했을 것이라 한다. (287 -288쪽)

 

무덤은 그가 살던 루르마랭의 공동묘지였다.

 

파농은 이렇게 죽었다.

 

1960년 12월, 파농은 백혈병에 걸렸음이 판명되었다.

1961년 1월, 파농은 치료차 모스크바로 갔으나 병세는 더욱 악화되었다.

그후 마지막 치료차 미국을 방문했으나 CIA의 방해로 입원이 8일간이나 지체되었고, 결국 1961년 12월 6일에 사망하였다. (329쪽)

 

그의 시신은 튀니스로 옮겨져 그의 소원대로 알제리에 묻혔다.

 

이 책은? - 카뮈와 파농, 그 두 사람을.

 

두 사람은 거의 같은 시대를 살았고, 알제리와 관련이 깊다.

알제리라는 나라를 매개체로 하여 두 사람은 만나게 된다. 물론 생전에 서로 만났다는 기록은 없지만, 저자에 의해 이 책에서 서로 만나게 되는 것이다.

 

나 또한 그렇게 두 사람을 만난다.

이 책으로 카뮈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하게 되고, 파농에 대하여도 이제 서서히 알아가며 기억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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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낀 이야기 스페이드의 여왕 - 뿌쉬낀 명작 단편선
알렉산드르 세르게비치 푸시킨 지음, 백준현 옮김 / 작가와비평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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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낀 이야기 스페이드의 여왕 뿌쉬낀 명작 단편선

 

뿌쉬낀, 러시아 작가다.

그가 쓴 단편소설이 담겨있는 책이다.

크게 보면 2 편인데, 그 안에 또다른 이야기들이 들어있어 모두 6편이라고 볼 수 있다.

 

「벨낀 이야기」

발행인의 말

남겨둔 한 발

눈보라

장의사

역참지기

귀족 아가씨-시골 처녀

「스페이드의 여왕」

 

이 안에 들어있는 작품들, 한마디로 단편소설의 정수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가 단편으로 가능하다, 는 사실에 놀랐다.

 

맨처음에는 약간 지루하다 싶을 정도로 느리게 시작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그때부터 눈을 떼지 못하게, 온통 빨려들어가는 신기한 일이 벌어진다.

 

그중에 압권, 「벨낀 이야기」중 <귀족 아가씨-시골 처녀>라는 작품이다.

정말 이 리뷰에서 이 작품만 조목조목 말하고 싶을 정도로 재미있다.

이것을 읽고는 다른 작품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게 된다.

다른 작가들의 작품중 이런 작품을 만나지 못했다.

한마디로, 단편소설 중에서 단연 압권이고 백미이며, 최고봉이기도 하다.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시작한다.

 

이야기 시작은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오마주한다.

이렇게 말이다.

 

이반 뻬뜨로비치 베레스또, 아들 알렉세이. 그러니까 셰익스피어로 바꾸어 말하면 로미오의 집안이다.

 그리고리 이바노비치 무롬스끼, 딸 리자베따 그리고리예브나 무롬스끼 (리자, 벳시)

줄리엣의 집안이다.

 

두 가문은 서로 앙숙이다. 한 마을에 사는 두 가문, 서로 앙숙으로 지낸다.

그런 가운에 이반 뻬뜨로비치 베레스또의 아들이 시골집으로 아버지를 찾아와 지내게 된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 시골에 있는 아버지의 집에 와 묵게 된 것이다.

 

아들인 알렉세이가 시골에 와 지내게 되자, 그 마을 처녀들 사이에 관심의 대상이 될 수밖에.

해서 지주댁의 아가씨들은 그를 흘끗거리며 훔쳐보거나 아예 넋을 잃고 바라보기도 한다. (129쪽)

그러나 그는 그런 아가씨들에게 관심이 없다.

 

이러한 소문을 들은 줄리엣 가문의 리자, 그를 만나보고 싶은 마음에 꾀를 낸다.

그녀의 아버지와 그의 아버지 사이에 교류가 없으므로, 만나볼 기회를 얻지 못하게 되자.

꾀를 내는 것이다. 이런 꾀다.

 

시골에 사는 아가씨처럼 분장을 하고 알렉세이가 자주 지나가는 곳으로 가서 버섯을 따는 시늉을 하고, 기다린다. 이윽고 알렉세이를 만난 리사, 시골 아가씨로서 아주 훌륭하게 역할을 하면서 알렉세이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성공한다.

 

그런 만남을 계속하다가, 정이 들어 둘은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그런데 여기에서 두사람의 인간성이 드러나는 모습이 전개된다. 그러니 두 사람 잘 만난 것이라는 판단이 든다. 해서 독자들은 그 두 사람의 장래가 잘 되기를 응원하는 입장이 되어 진지하게 그 다음 줄거리를 기다리게 된다.

 

더 이상 이야기를 하기 전에, 그들의 처음 만남을 복기해보자.

 

알렉세이가 리자에게 어디에서 왔으며 누구냐고 묻는다.

리자는 이렇게 대답한다.

“ 제 아버지는 대장장이 바실리예요. 전 버섯을 따러 나왔구요.”

 

그런 대답에 알렉세이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나는 젊은 도련님의 시종이란다.”

알렉세이는 자신과 시골 처녀의 관계를 동등하게 만들고 싶어서 그렇게 말을 했다. 하지만 리자는 그를 잠시 바라본 후 웃기 시작했다.

“거짓말을 하시네요.” (142쪽)

 

하여튼 그런 만남이 계속된후,

<두 달이 못되어 우리의 알렉세이는 정신없이 사랑에 빠졌고 리자 역시 말은 아끼더라도 무심한 태도를 보인 것은 결코 아니었다는 점만 간략히 말해둔다.>(149쪽)

 

리자는 계속해서 신분을 속인 채 알렉세이를 만나고, 알렉세이는 시골 아가씨인 리자를 사랑하게 되고 결혼까지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에서 사건이 벌어진다. 두 사람의 관계를 복잡하게 만드는 사건이다.

두 사람의 아버지가 관계가 좋아져버린 것이다.

 

사이가 좋아진 두 아버지는 각각의 딸과 아들을 결혼시키려고 한다.

그러니, 알렉세이에게 시험의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시골아가씨인 리자를 버리고 지주의 딸인 리자와 결혼하느냐, 아니면 지주의 딸을 몰라라하고 시골아가씨와 결혼을 하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같은 사람 아니냐고? 그래서 뭐가 문제냐고?

그렇게 간단한 문제 같으면 뿌쉬낀이 이런 문제를 다루었을까?

그게 아니니까 , 소설이 진지해지는 것이다. 

 

여기서 뿌쉬낀은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창조적으로 해체 변형하여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낸다.

줄거리를 게속해서 이야기하면서, 알렉세이도 리자도 그토록 현명하게 사랑을 가꾸어 간 사람들을 본 적이 없다고 말하면, 이미 스포일러, 그러니 여기서는 여기까지 말해둔다. 더 이상의 이야기는 꼭 독자들이 책을 통해 읽어야 한다. 그래야 한다. 꼭!

 

뿌쉬낀이 마음에 든다. 좋아진다.

 

또 있다. 뿌쉬낀을 좋아하게 만드는 또다른 단편소설,

「벨낀 이야기」중 <눈보라>라는 작품이다.

 

등장인물 먼저 소개한다.

마리아 가브릴로브나, 지주의 딸이다.

그녀가 좋아하는 남자 블라지미르 니꼴라 예비치.

 

마리아는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블라지미르와 결혼하기로 한다.

그래서 눈보라가 치는 어느날 도망을 쳐서 블라지미르와 결혼식을 하기로 약속하고, 결혼식을 감행한다.

 

그리고.... 아, 이건 그다음 이야기를 하는 순간, 이미 스포일러가 되버린다.

그러니 더 이상 이야기를 할 수가 없다.

다만 한가지, 남자가 왜 이리 매력적일까? 다른 데 매력이 있는 게 아니라 순정남이라는 매력이 철철 넘친다. 앞에 소개한 <귀족 아가씨-시골 처녀>라는 작품에서 알렉세이가 순정남이더니, 여기에서도 남자가 보통이 아닌 순정남이다.

 

누가 순정남이라고? 블라지미르가?

아니,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이건 줄거리가 한 차원 다르게 진행이 된다.

그래도 남자 주인공이 어쨌든 순정남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해서 뿌쉬낀이 좋아진다. 이런 작가를 여지껏 잘 모르고 있었다니.

이런 이야기 만들어준, 그래서 사랑이라는 것을 한 차원 다르게 생각하게 만든, 작가 뿌쉬낀, 독자들에게 괄목상대해야 할 작가라고,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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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과 콘텐츠 혁명 - 세계를 열광시킨 K-콘텐츠의 비밀
정길화 외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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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과 콘텐츠 혁명

 

오징어 게임, 추억의 게임이다.

그런데 그런 게임이 드라마로 만들어지더니, 그야말로 세계를 석권했다.

 

<오징어 게임>이 넷플릭스를 통해 세운 기록은 이렇단다.

 

2019년 9월 17일 넷플릭스로 <오징어 게임> 론칭.

4일 만에 미국에서 1위, 글로벌 넷플릭스 2위 차지함.

6일만에 2019년 9월 23일, 전세계 1위 달성. (17쪽)

 

46일 동안 정상을 지키다. 애니메이션 <아케인>에게 잠시 1위를 내주었다가,

2일만에 정상를 되찾아, 최장기간 1위 기록을 세웠다.(75쪽)

 

두 번째로 1위를 내준 게 우리나라 작품 <지옥>이다.

11월 20일, <지옥>은 공개 하루만에 정상에 올랐다. (75쪽)

 

<오징어 게임>은 공개 첫 4주 동안의 시청 시간은 총 16억 5,045만 시간

(햇수로 따지면 무려 18만 8,000년이다.)

넷플릭스 역사상 영화와 TV 부문을 통틀어 최다 시청시간이다. (105쪽)

 

그런 <오징어 게임>을 본 사람 중에 나도 하나 차지하고 있어, 이 책을 읽으면서 장면 장면을 복기하면서 읽을 수 있었다.

 

비록 N차 관람은 아직 안 했지만, 이 책을 읽고나니 그럴 마음이 생긴다는 것, 감출 수 없다.

그건, <오징어 게임>을 독자의 풀어나감을 통해 텍스트를 완성하는 것이라 말한 롤랑 바르트의 개념에 납득이 되었기만은 아니다. (133쪽)  이 책에 실린 7편의 글이 내가 오징어 게임을 보면서 놓쳤던 많은 의미들을 되짚어 주고 있었다는 점이 재시청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었다.

 

1장 서사적 관점에서 본 「오징어 게임」

2장 「오징어 게임」 신드롬 취재기

3장 세계는 「오징어 게임」을 어떻게 해석했나?

4장 플랫폼 리얼리즘의 세계: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읽기

5장 「오징어 게임」은 한국 드라마를 어떻게 바꿀까?

6장 「오징어 게임」의 경제 효과 1조 원이 말하지 않는 것들

7장 드라마 산업적 관점에서 본 「오징어 게임」

 

먼저 <오징어 게임>은 데스 게임의 클리셰를 깬다.

 

그간 보았던 데스게임을 다룬 영화나 드라마들, 그것과는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오징어 게임>을 볼 때, 이런 것 비교할 수 없어, 그것이 가지는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그저 보기만 했다.

 

<오징어 게임> 2화에서의 일이다.

‘참가자의 과반수가 동의할 경우, 게임을 중단할 수 있다.’는 규칙에 따라 1라운드의 생존자들이 투표를 하고, 결과에 따라 게임장을 나오게 된다.

 

이 대목에서 어라, 이게 왜 이러지, 하는 의문을 채 갖지 못하고, 어차피 9회까지 있는 작품이니까 뭐, 뒤에 다른 방법이 있겠지, 하고 그냥 흘러넘긴 것이다.

 

저자의 해설에 의하면 지금까지 이런 방식의 데스 게임은 없다는 것이다. (27쪽)

 

우리나라 게임의 우수성(?) 다시 새겨보게 된다.

 

우리모두 어릴 때 즐겨 놀았던 놀이들, 뭐 지금 세대야 제대로 알지 못하겠지만, 추억의 놀이들이다. 그렇게 추억이 되어 버린 놀이들을, 화면으로 보니, 신기했다.

해서 외국인들이 그것을 보면서 굳이 게임의 규칙을 별도로 설명하지 않아도 금방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신기하게 느껴졌다.

 

우리 게임의 우수성이라고 할까, 그런 것도 데스 게임을 다룬 영화에서 장점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황동혁 감독은 그것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단순하지만 드라마틱한 재미를 느끼게끔 게임의 진행과정을 만드는 작업이 중요했고,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공개되는 만큼 외국인도 단박에 게임의 규칙을 이해하도록 만들었다. (45쪽)

 

주옥 같은 명대사들

 

들을 땐 몰랐다. 그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게임 참여자들에게 다가오는지를.

그리고 그걸 보는 시청자들에게도 깊은 울림을 주는 대사라는 것을, 이 책을 보면서 다시 깨닫게 된다.

 

밖에 나와보니 그 사람들이 맞더라고... 여기가 더 지옥이야. (43쪽)

이러다간 우리 다 죽어. (47쪽)

여기 지옥이야. 지옥에 규칙이 어디 있어. (54쪽)

돈이 너무 많은 사람과 돈이 없는 사람의 공통점은 삶이 재미가 없다는 점이다. (59쪽)

 

다시, 이 책은? - 이 책에서 밑줄을 굵게 긋고 싶은 부분

 

그거 아무래도, <3장 세계는 「오징어 게임」을 어떻게 해석했나?>를 꼽을 수밖에 없다.

 

그글을 쓴 필자는 다음과 같이 그 글의 요지를 밝힌다.

 

콘텐츠 측면에서 분석하기 위하여 나는 다음과 같은 방식을 취하려고 한다.

먼저, 쏟아져 나온 기존의 비평들을 요약해서 정리하고, 그 후에 텍스트 비평 이론에 근거해서 다양한 비평 접근법을 펼쳐보이려고 한다. (107쪽)

 

그리고 필자가 제시한 비평 접근법이 다양한데, 이런 것들이다.

 

사회 규범 비평 (115쪽)

페미니즘 비평 (120쪽)

신화, 이데올로기 비평 (123쪽)

기호학적 비평 (126쪽)

스타 비평 (134쪽)

 

그 누가 알았겠나, 이런 다양한 비평적 관점을 가지고 <오징어 게임>을 본다는 것을.

그런데 그게 비단 비평가 차원의 안목으로만, 그래서 나같은 장삼이사와는 별 상관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는데 문제가 있다.

 

예컨대, 게임 운영진은 참가자들에게 이런 말을 한다.

“지금 다시 선택의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돌아가서 남은 인생을 빚쟁이에게 쫓기며 쓰레기처럼 사시겠습니까?아니면 저희가 드리는 마지막 기회를 잡으시겠습니까?” (125쪽)

 

필자는 그말에서 돈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자본주의, 혹은 신자유주의가 자리잡고 있음을 포착해낸다.

 

또한 여성 캐릭터인 한미녀가 섹스를 재화 삼아 깡패 장덕수와 거래하는 장면에서,

현실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 과정에서 여성의 현실에 대한 구조적 분석은 소홀히 다뤄지는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역시 드러내 보이고 있다.

 

그렇게 <오징어 게임>의 의미를 천착해 내면서, 그 작품이 다만 흥미위주의 일시적인 작품이 아니라는 것을, 그래서 1위에 오를만한, 작품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해서, <오징어 게임>을 독자의 풀어나감을 통해 텍스트를 완성하는 것이라 말한 롤랑 바르트의 개념에 이제 충분히 동의한다. 그래서 N차 관람을 할 생각이 더 강하게 드는 것, 감출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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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저쪽 밤의 이쪽 - 작가를 따라 작품 현장을 걷다
함정임 지음 / 열림원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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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저쪽 밤의 이쪽

 

이 책은 코로나 팬데믹이 발발하기 직전까지 작가와 작품 주인공의 여로를 따라 현장에서 답사하고 쓴 스물 네 편의 글로 이루어져 있다. (337쪽)

 

이 책의 에필로그에 있는 저자의 말이다.

작가와 작품 주인공의 여로를 따라가며 적은 글들이니, 독자로서는 해당 작품을 한 걸음 더 깊숙하게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만나게 되는 셈이다.

 

정말, 글을 읽으면서 저자가  작가를 추적하는 모습이 실로 경이롭기까지 했다.

그래서 이런 소개 안 할 수가 없다.

 

파리에서 뉴욕으로 건너가 두여달을 체류하던 중, 열흘 동안 오대호 연안의 디트로이트와 앤아버, 그리고 시카고를 돌아보는 여정에 올랐다. (27쪽)

 

그동안 나는 파리 여행안내서보다 작가나 화가의 족적을 쫓는 방법을 더 선호해왔다. (73쪽) 

나는 삼십여 년 가까이 유럽과 아메리카, 아프리카로 따나고 돌아오는 삶을 반복해왔다.

그러다보니, 우연이든 필연이든 이들이 태어나고, 자라고, 떠돌고, 머문 공간들과 맞닥뜨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작품들의 공간으로 직접 들어가 작가와 인물들이 처한 환경과 내면을 짐작해 보는 여정을 기록해왔는데 (.........) (168쪽)

 

저자가 얼마나 추적, 그 행위에 정성을 쏟는지 짐작이 될 것이다.

그렇게 저자가 노력한 결과 독자들은 이런 정보를 얻어 듣게 된다.

 

헤밍웨이의 망원경

 

쿠바에서, 헤밍웨이는 타워형 저장창고를 개조해 집필실을 만들었는데

그 안에 책상이 놓여있고, 그 옆에 망원경이 있었다.

그는 서서 글을 썼고, 글을 쓰다가 망원경으로 먼 곳을 바라보았다.

망원경은 아바나 시내 쪽을 향하고 있었다. (30쪽)

 

일리에콩브레가 생겼다.

 

콩브레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공간을 이야기할 때면 제일 먼저 거론되는 장소다. (.......) 콩브레는 소설의 화자가 어린 시절 부활절 방학 때만 부모를 따라갔던 아버지의 태생지로, 실제로는 일리에를 가리킨다.

그러니까 콩브레와 일리에는 다른 이름의 같은 곳인데, 마르셀 프루스트가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오른 뒤, 허구와 실제의 이름이 합쳐져 공식 행정명칭으로 일리에콩브레가 되었다. 현실이 수많은 소설을 낳지만, 때로는 소설이 현실을 보완하여 풍요롭게 이끌어가기도 한다. 바로 일리에콩브레의 경우가 독보적이다. (70쪽)

 

해서 지도를 찾아보았다. 과연 그러한 지명이 있는지?

있다.


 

루앙에서 플로베르와 모네가 만나다.

 

얼마나 읽었을까, 129쪽에 이르렀을 때. 이런 글을 만난다.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의 주도 루앙에 간 것은 근 십년 만이었다, 라는 말을 서두로 하여 저자가 루앙 이야기를 시작할 때만 해도, 난 모네를 생각하지 못했다. 모네의 <루앙 성당 연작>은 더더구나,,,,

그래서 무심하게 더 읽었다.

..............................

 http://blog.yes24.com/document/16081436

 

프루스트 읽는 방법은?

 

저자의 프루스트 사랑은 지극하다. 도처에서 프루스트를 언급한다.

마치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틈만 나면 프루스트 이야기를 한다.

이런 식이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궁극적으로 잃어버린 공간을 찾아가는 회상의 순례다. 현재의 시간에서 순간순간 맞닥뜨리는 대상들을 모두 과거의 크고 작은 공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순간(시간)과 공간은 하나의 장면으로, 나아가 하나의 이야기로 창조된다. (69쪽)

 

프루스트 읽기에 대하여, 저자가 취한 독법은,

저자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나의 독서 편력과 관심 영역에 따라 선택하고 집중하는 것이다. (228쪽)

 

더 자세한 내용이 이어지는데, 관심 있는 독자는 참고하시라.

 

한병채의 책, 읽어야지

 

프루스트 이야기를 하다가, 한병철의 책 『시간의 향기』를 소개한다.

 

시간이 지속되는 한, 프루스트 읽기는 계속된다. 독자만 바뀔 뿐이다. 당대의 정서와 감각에 따른 독법(담론)이 생성되고 통용된다. 프루스트 읽기의 최근 작업은 한병철의 『시간의 향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을 포함 전작 피로사회, 심리 정치, 그리고 최근작 에로스의 종말 등 한병철 저작의 한국어 번역본은 한결같이 시집처럼 초경량화된 형태지만, 서구의 철학, 문학, 미학의 축적된 지식을 전제로 하기에 일반 독자가 단숨에 읽어갈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 (228쪽)

 

그래서 나는 다행이다. 내가 힘들게 읽었으므로, 나만 그런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니, 다행이라는 것이다.

 

한병철은 고유한 문체를 가진 문장가다. 심오한 내용이지만, 그의 문장은, 한 번 접하면 , 읽고 싶고, 계속 읽어가게 만드는 비상한 힘을 가지고 있다. (231쪽)

 

이런 사실도 있다. 놀랍다.

 

엑스에서는 대학의 동아시아학부 한국어문학과에는 현재 오백명이 넘는 프랑스 학생들이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공부하고 있다. (192쪽)

 

저자가 권하는 방법 하나, 여행 갈 때에

 

나는 여행길에 오르는 사람들에게, 런던이나 뉴욕, 더블린이나 파리에 갈 때, 그곳을 무대로 쓴 소설 한 권씩을 품고 가라고 권유하고는 한다. (209쪽)

 

저자가 권하는 책이 어떤 것인지, 적어둔다.

 

더블린 : 조이스의 『율리시즈』

뉴욕 : 폴 오스터의 『뉴욕 삼부작』

런던 :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이나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 또는 『두 도시 이야기』

파리 : 조르주 페렉의 『인생 사용법』이나 플로베르의 『감정교육』, 또는 보들레르의 『악의 꽃』

 

더 자세한 내용은 210쪽 이하를 참조하시라.

 

다시, 이 책은?

 

이 책을 읽으면서 대체 몇 권의 책을 읽었는지, 모르겠다.

저자 뒤를 부지런히 따라가다 보니, 나도 모르게 이 책 한 권이 아닌 수십권의 책을 읽은 것 같다.

이게 모두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준 덕분이다.

 

저자가 30여년을 부지런히 작가와 작품들을 쫓아다녀서 그 결과를 여기 남겨두었는데, 다 소화 못한 것이 아쉽기는 한데, 그래도 그저 맛만 본 것만도 한두 권이 아니니. 그것만 해도 감지덕지다.

 

이 책, 책을, 작가를 더욱 사랑하게 만드는, 큐피드의 화살이라고 할까, 그 화살 된통으로 맞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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