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에 지다
조열태 지음 / 퍼스트북(도서출판)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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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면초가, 이순신 장군을 위한 조가(弔歌)

 

새삼 역사 팩션이란 소설 장르를 생각해 보게 된다.

사실(Fact)과 픽션이 결합된 팩션, 그래서 사실을 기반으로 하되 픽션인 소설 기법.

 

이 소설은 이순신 장군이란 실존 인물을 중심으로 하여 픽션인 이순신 장군 암살 사건을 만들어 놓고, 이순신 장군이 왜 노량에서 전사해야 했을까를 탐구해 나가는 소설이다,

 

이순신 장군, 노량해전에서 전사.

 

과연 이순신 장군의 전사가 필연적이었을까?

이순신 장군의 종전을 앞두고, 딜렘마에 빠진 처지를 피부로 와 닿게 그려내고 있으니, 그 것 하나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있다 할 것이다.

 

이 순신 장군이 왜군과의 종전을 앞두고 어떤 처지에 있었던가?

 

선조는 자기보다도 다른 사람이 주목의 대상이 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 임금이었다. 그래서 강한 신하들이 나타나면 가만두고 못보는 의심많은 사람이며(13), 그런 사람이 나타나면 자기 자리를 노리는 것이라 생각하고 어떻게 해서든 그 자리에서 내치고, 조금 더 위험한 인물이다 싶으면 역적이란 이름을 붙여 없애고 말았다. 임진왜란중에 큰 공을 세운 김덕령 장군이 바로 그렇게 장살당했고, 정여립이 그래서 역적의 누명을 쓰고 죽게 되었다.(13)

 

이제 시간이 흐른 뒤 바로 화살은 이순신 장군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그래서 노량해전에서 적의 유탄을 맞고 전사한 이순신 장군의 죽음이 역사가의 입에 오르내리고, 이렇게 소설의 소재가 되는 것이다.

 

저자가 이순신 장군의 죽음에 대해 하고 싶은 말

 

이 소설은 앞에 말했듯이 역사 팩션이다. 그래서 허구의 사건이 들어있게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역사팩션 소설이 그렇듯이,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그러한 픽션이 팩트 사이에 끼어 들어간 것, 그렇게 그것을 살짝 가려놓고 보면, 거기에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이 오롯이 드러난다.

 

이 소설 역시 마찬가지다.

 

서교리가 선조의 밀명을 받고 내려갔는데, 거기서 그는 이순신 장군의 암살미수 사건을 만난다. 그 사건이 과연 누구의 소행인지, 왜 그랬는지를 파헤치는 작업에 뛰어 들게 된다.

 

그 사건을 빼어 버리면, 그 중간 중간에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이 보인다.

그것은 선조는 이순신 장군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선조는 이순신장군을 죽일 것인가, 그러지 않을 것인가, 그 판단을 하게 만드는 핵심이 보인다.

 

사람에 대한 감정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은 죽었을 때에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하는 것이다.어떤 사람의 사망소식을 듣고 별무반응이라면 그사람에 대한 감정은 별로 라는 것이 확실하다, 그 반면에 그 소식을 듣고 슬픔이 극에 달한다면 그사람에 대한 감정이 각별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리라.

 

이순신 장군에 대한 선조의 감정은?

선조가 이순신 장군의 전사 소식을 들었을 때 반응을 저자는 이렇게 말해주고 있다.

 

<통제사의 전사 소식을 들은 임금의 반응도 내 귀에 전해졌다. 임금은 전사 소식을 듣고 통제사의 장례를 도우라고 하는 전교를 내린 뒤 우의정을 추증했다. 다음 통제사로는 이시언을 내정했다. 여기까지가 공식적인 반응이었다. 사적인 반응은 시큰둥했다. 전사 소식을 밤에 들은 임금은 오늘은 밤이 깊었으니 내일 승정원에서 알아서 처리하라고 귀찮은 듯이 한마디 던졌다고 한다. >(275)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가 죽으면 어떤 반응을 보이는 것이 개주인 다운 행동일까? 귀찮은 마음만 생기면 과연 그 개주인은 사람일까? 아니면 사람이 아닐까? 집에서 키우던 개가 죽어도 그러지는 않을 것이다. 나라를, 위란지기의 나라를 구해준 장수의 죽음- 그것도 싸우다 죽었는데 -을 듣고도, 시큰둥해했다면, 그것은 이미 사람이 아니다. 임금은 더더욱 아니다.

 

또 하나 힌트가 되는 사항이 있다.

 

서교리가 임무를 마친 다음에 한양에 올라가 임금을 만난다, 그 자리에서 서교리는 임금에게 이렇게 보고한다.

통제사가 살아 있을 때 왜적들이 암살을 시도하다가 실패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외에 제가 발견한 일은 없었습니다.”(280)

 

그 외라는 것은 선조가 서교리를 내려보내면서 지사한 사항, 즉 반란의 기운(13)이라도 있는지를 파헤치는 것이다.

 

반란의 기운을 파헤치는 것이 선조에게 급한 일이었지. 이순신 장군이 암살 당하고 말고는 전혀 관심사가 아니라는 것, 역시 선조의 모습이다.

 

그리고 이순신을 보호해주던 방패막이가 되던 사람들의 행방, 역시 참고가 된다.

 

< 그 이후 나는 일상으로 돌아와 내 본래의 생활에 열중했다. 내가 한양으로 돌아왔을 때, 류성룡은 끝내 실각되어 있었다. 공교롭게도 통제사의 사망과 류성룡의 실각이 겹쳤다.>(281)

 

따라서 저자는 결론내리기를, 이렇게 말한다.

<행여 통제사가 전사하지 않았다고 할지언정, 종당에는 류성룡과 마찬가지로 탄핵당하고 말았을 거라는 쑫덕거림도 펴져 나갔다. 아니 류성룡은 그나마 시골에서 살 수 있지만, 무군지죄가 있는 통제사는 필시 죽임을 당했을 것이라는 쑥덕거림도 있었다.> (282)

 

더하여 이런 원인이

 

이 소설은 그렇게 선조의 생각을 전해주는 결말로 끝이 난다. 그러나 저자는 단순히 그 것만을 말하려는게 아니다. 그 다음, 소설의 말미부분에서 박희출의 편지 한통을 보여준다. 그 편지 안에 모든 것이 담겨있다. 이순신 장군이 왜 죽지 않으면 안되었는가? 선조? 선조 탓만이 아니다. 물론 그 최종 책임자는 선조이지만, 바로 역사가 그렇게 만든 것이리라.

 

선조를 그리 만든 것도, 그 개인의 책임만은 아니리라. 해서 이 나라의 역사가- 쌓이고 쌓인, 누대에 걸쳐 먼지 쌓이듯 쌓인 그 적폐들이 바로 역사가 되고, 그런 역사는 가차없이 이순신 장군을 사지로 몰아 넣었고,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이다.

 

저자는 그렇게 이순신 장군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준열하게 묻고 있다, 역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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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 명화 한 점 - 명화 같은 인생, 휴식 같은 명화
이소영 지음 / 슬로래빗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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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 길, 커피 대신에 그림 한 점

 

책 제목이 재미있다. <출근 길 명화 한 점>

마치 출근길에 커피 한잔 마시라는 말 같다. 바쁜 출근길이지만 손에 커피 한잔을 들고 가면서 마시는 여유를 가지듯이, 명화 한 점을 들고 가면서 감상하라는 말, 그거다.

 

그런데 어디 책 제목만 재미있나, 책 내용도 흥미진진하다.

명화, 그림을 전문가적 차원에서 또는 미학적 차원에서 보자는 게 아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각박하고 메마른 현실의 삶에서 고군분투하는 우리가 감성적으로 자기를 계발하고 자신을 위로해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그림을 보는 일이라 생각해요.> (서문중)

 

그러니 이 책을 읽으면서, 그림을 대하는 안목도 높이고, 더하여 감성적으로 자기 자신을 위로도 할 수 있으니 독자로서는 일석이조가 되는 것이다.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이 책의 구성은 제목에 걸맞게 월요일, 화요일 이런 식으로, 요일별로 그림을 보면서 거기에 따른 생각을 하게끔 되어 있다.

 

월요일에는 이러한 소제목이 붙어있다. “상쾌한 월요일을 위해

 

, 한번 읽어보자, 그림을 전공하는 저자, 시립미술관에서 그림 전시해설을 업으로 하고 있는 저자가 월요일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기지고 있는지?

 

<월요일.....달콤하고, 산들산들한 장밋빛 월요일 같기를 항상 바라지만, 혹여나 이번 한 주가 가혹하고, 버겁고, 혼잡스러울 것 같다면 그림이라도 경쾌한 것을 보면서 시작하고 싶다.>(13)

 

하는 말을 들어보니, 무조건 월요일은 상쾌하게!'라고 우기지 않는다. 이런 책의 구조로 보아 '월요일, 새로운 주간을 시작하니, 상쾌한 발걸음.' 어쩌고 할 만한데, 그러지 않다는 것은 저자가 마냥 구름 위를 떠다니는 것 같이 예술을 정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생활을 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인생에는 여러 날이 있다는 것, 그래서 월요일을 누구나 상쾌하게 맞이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 그럴지라도) 그림이라도 경쾌한 것을 보면서 시작하고 싶다.”

 

, 이런 저자의 태도에 적극 동의한다. 인생은 모두가 장밋빛만 있는게 아니다. 그런 인식을 보여주는 저자이니, 그가 택하여 보여주는 그림도 볼만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월요일에 저자가 보여주는 그림은 라울 뒤피의 장밋빛 인생으로 시작한다. 배경은 모두 분홍색이다. 바닥도 벽도 분홍색이다. 그런 배경을 바탕으로 탁자 위에 꽃병이 하나 놓여있는데, 빨간 색 장미가 꽂혀있다. 그런 그림, 비단 화가가 누구인지, 무엇을 말하는지 듣지 않더라도 기분이 상쾌해진다. 그러니 그림 잘 골랐다. ‘장밋빛 인생’, 그 그림을 보는 순간, 내 인생이 장밋빛으로 바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저자는 이렇게 그 그림에 설명을 붙인다.

< 뒤피의 그림은 밝고 경쾌한 색감으로 그려서 가벼운 봄 옷처럼 얇고 리드미컬한 느낌이다. .....뒤피의 그림을 바라보며 활기차고 달콤한 월요일이 되기를, 그림 제목처럼, 장밋빛 인생 라비앙 로즈을 떠올리면서.> (16)

 

이제 수요일로 가보자.

수요일 정도면, 아직 견딜만 하지 않은가? 그래서 저자는 부제를 이렇게 잡았다.

명랑한 수요일을 위해

그리고 그 밑에 에드와르 마네의 말 한마디를 덧붙여 놓았다,

<무엇보다도 당신의 색깔을 신선하게 유지하라!>

 

우리에게 보여주는 그림은, 비오는 날의 여러 모습이다. 비오는 날과 명랑이 무슨 관계?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비오는 날은 울적해지지 않는가?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맑은 날에 울적해지면 날씨에게 미안해지기 마련인데, 비오는 날은 울적해져도 날씨에게 미안하지 않다. 또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는 마음을 뻥 뚫리게 해서 시원하지만, 온종일 내리는 비는 내 마음을 무기력하게 한다.> (95)

 

그러니 비오는 날에는 비의 종류에 따라 다양한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무기력하게 되기도 하지만 또는 마음이 뻥 뚫리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 여러 생각들이 드는데, 저자가 부제 밑에 붙여 놓은 말, 마네의 당신의 색깔을 신선하게 유지하라!”는 말을 바로 그런 때에 쓰라는 것이 아니었을까?

 

설령 비가 와 마음이 무기력하게 될지라도 당신의 마음의 색깔을 신선하게 유지해라! 그 정도면 비가 올지라도, 그래서 마음이 다소 울적하게 될지라도 너끈히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 명랑하게 수요일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출근 길, 커피 대신에 그림 한 점

 

그런 식으로 월요일부터 그림을 감상하면서, 거기에 따른 저자의 깊은 울림있는 해설들을 따라가노라면, 어느 덧 한주간이 훌쩍 지나갈 것 같다. 해서 이 책은 다음 편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출근 길 명화 한편1일부터 31일까지> 한 달간을 그렇게 명화를 감상해 보는 책 말이다. 물론 이 책, 요일마다 그저 한 점씩 그림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몇 점씩 보여주고 있으니, 한 달은 무난히 사용해도 될 듯하다. 그래서 아침 출근 길에 커피 한잔 들고 가는 멋보다는 이 책을 통해 그림 한 점 보고, 읽고 생각하면서 출근하는 것, 더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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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인 심리학 - 내가 알지 못했던 가족과 사회의 가면
이재연 지음 / 글로벌콘텐츠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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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화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이 책의 글들을 펼치는 독자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습니다. 스스로의 모습에 을 비춰서 객관화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7)

 

저자의 이 말이 마음에 든다. 이 말이 이 책을 손에 들게 한 이유일지도 모른다.

나를 객관화해서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기르라는 말이다. 그렇다.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자신을 찾고, 자존을 회복하고, 자긍을 심을 수 있다면? 그게 바람직한 인생의 모습이 아닐까?

 

사건을 통해서 나를 바라볼 수 있다

 

이 책의 글들 모두가 어떤 사건을 예로 들고 그 사건의 이면에 숨어있는 심리적 배경을 살펴보는 형태로 글이 씌여 있는데, 실상 그 사건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을 나를 읽어보게 만드는 아주 귀한 자()가 되는 것이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2015513일에 벌어진 예비군 훈련장 총기 사건(223). 그 사건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최씨의 유서 중, 다음과 같은 부분을 저자는 소개하고 있다.

<깨어있는 게 모든 것들이 부정적으로 보인다. 내 자아감, 자존감, 나의 외적인 것들, 내적인 것들 모두 싫고 낮은 느낌이 밀려오고 그렇게 생각한다.>(225)

 

이렇게 스스로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 즉 자존감의 문제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 얼마나 살아가는 것이 힘들었을까? 게다가 그는 가족으로부터, 군대생활에서 상처를 입은 사람이다. 그런 그가 심리 치료를 받고 자기 자신을 돌아보았더라면, 즉 이 책이 지향하는 바 스스로의 모습에 을 비춰서 객관화할 수 있는 기회가있었더라면 그런 끔찍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안타까움이 남는다.

 

그래서 그런 글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나 자신의 자존감과 자신감을 되돌아 보는 계기가 되었다, 과연 나는 어떠한가? 글에 드러난 가슴아픈 사연들을 나 자신의 경우에 비추어 보면서 나를 객관화 해보려고 노력하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이런 차이 들어봤나?

 

우리가 살아가면서 수많은 감정을 가지게 되고, 그런 감정을 가지고 다가오는 일에 대응하게 되는데, 실상 우리는 그러한 감정들을 그냥 아무렇게나 표현하기 때문에 정확하게 대처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우리에게 일어나는 감정들을 자세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는데 이런 경우 심리학의 구분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실생활에서 우리가 그냥 뭉뚱그려 표현하는 어려 감정들을 심리학에서는 다음과 같이 구분하여 사용하고 있다.

 

두려움과 무서움

 

심리학에서는 두려움과 무서움을 구분한다.

 

<두려움은 내 안에서 생겨나는 감정이고, 무서움은 분명한 외부의 대상을 보고 생기는 감정이다. 김씨(주한 미대사를 공격한 김기종)의 이전 행동들을 보면 자신의 내면에 두려움이 가득해서 자신보다 강하고 큰 것을 향해 감정전이를 한 후 폭력성을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33)

 

부끄러움과 창피함

 

<부끄러움의 감정은 자기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감정으로 양심과 함께 하는 개념을 말한다. 양심에 가책을 느끼는 내면적 감정을 바로 부끄러움이라 말할 수 있다.

반대로 창피함의 감정은 내면이 아니라 타인으로부터 오는 감정을 말한다, 예를 들면, 남들 앞에서 발표를 하고 자리로 돌아왔을 때 바지 지퍼가 열려있는 것을 알게 되면 창피함을 느끼게 된다. 남이 안본다고 해서 지갑을 훔치거나 비도덕적인 행동을 했을 때에 마음속에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것은 창피함이 아닌 부끄러움이 올라오는 것이다.> (54)

 

다투다와 싸우다

 

<‘다투다싸우다는 다른 의미를 가진다. 힘이나 무기가 수단일 경우에는 싸우다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이 수단인 경우에는 다투다이다.>(109)

 

버릇과 습관

 

<버릇은 여러 번 반복하면서 몸과 마음에 굳어져 고치기 힘든 기질이나 행동을 말한다. 반대로 심리학에서는 습관을 학습된 행위를 통해 형성되는 양식으로 본다,>(124)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

 

심리학에서는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을 구분한다.

<남을 통해 내가 행복해지려고 하는 마음은 좋아하는 것이고, 나를 통해 남을 행복하게 만들고 싶어하는 마음을 사랑하는 것으로 구분한다.>(175)

 

<내가 행복해지려고 이성을 옆에 두는 것은 좋아하는 사람이다. 나로 인해 상대방을 행복하게 만들고 싶어서 옆으로 가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이다.>(188)

 

이 책은 따끈따끈하다.

 

이 책은 사회심리학, 말의 심리학, 가족 심리학, 스포츠 심리학으로 구분하여, 각종 사건들과 그 사건에서 찾아 볼 수 있는 심리학 이슈들을 검토하고 있다. 그렇게 분야별, 사건별로 이슈들을 살펴보노라면 우리 사회가 지금 어떤 모습으로 흘러가고 있는가의 흐름과 추세를 살펴 볼 수 있디. 게다가 이 책에서 다룬 사건들은 최신의 것들이다. 2015513일에 벌어진 예비군 훈련장 총기 사건(223)까지 다루었으니, 그야말로 따끈따끈한 책이다. 그런 사건들을 저자의 분석을 따라 읽어가면서 우리 사회가 어떤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는가 하는 속사정을 알아가는 것, 또한 이 책을 읽는 기쁨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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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 섀도우
마르크 파스토르 지음, 유혜경 옮김 / 니케북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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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은 항복하지 않고 싸우는 것

 

이 책은 단순한 스토리를 위주로 하는 범죄소설이 아니다. 죽음과 삶이 무엇인가를 성찰하는 소설이다.

 

바르셀로나에는 당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었나?

 

먼저 사건의 무대인 바르셀로나가 시대적으로 1911년을 중심으로 어떤 곳인지 살펴보자.

 

<바르셀로나에서는 폭력적인 살인사건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다.> (202)

 

이 소설의 모티브가 된 홍등가를 중심으로 한 하층민의 아이들이 사라지는 엽기적인 일이 발생하는데, 저자는 이 사건을 소설의 서두에서부터 밝히고 시작한다. 그러니 사건의 범인이 누구인가, 심지어 어떻게 진행이 되는가까지 독자들은 다 알고 읽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저자의 관점은 사건 해결에 있지 않다는 점이 이 소설의 첫 번 째 특징이다.

 

소설의 화자인 는 누구인가?

 

그럼에도 이 소설을 읽으면서 긴장감을 놓지 못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 화자(話者)의 시점(視點)이 참으로 오묘하다는 데 있다.

 

이 소설의 화자는 이다. ‘는 누구일까?

 

저자는 에 대하여 여러 가지 힌트를 남겨둔다. 이 소설은 어쩌면 가 누구인지를 알아가는게 주된 줄거리인지도 모르겠다. 이미 아이를 유괴하는 사건의 얼개는 다 드러냈으니, 사건 자체에 대한 궁금증은 덜한데 비하여, ‘라는 화자가 누구인지 물론 이것도 알려줄 것은 다 알리고 시작한다. 소위 말하는 죽음의 사자이다 - 왜 등장하는지, 궁금한 노릇이었다.

 

해서 초반부에 이런 내용들을 다 밝히고 시작하니, 끝까지 혹시나 이게 어떤 트릭을 감추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또한 이 라는 존재가 죽음의 사자인만큼 이 소설의 주인공 모이세스는 어떻게 될 것인가? 왜 죽음의 사자인 가 모이세스 주변에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는지, 그것 역시 관심사였다.

 

그런 궁금증이 이 책을 끌고 가는 견인차 노릇을 하고 있는 점이 이 책의 두 번째 특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모이세스는 누구인가?

 

그래서 자연이 관심은 모이세스라는 인물에게 향한다. 이 소설에서 저자는 유독 모이세스에 대하여 애착을 드러내고 있다. 그는 단순한 범죄, 범인을 잡기 위하여 쫒아다니는 경찰로서가 아니라, 죽음을 대표하는 와 대척점에 서서, 삶이 무엇인가를 그려내 보이기 위하여 저자가 심혈을 기울여 창조해 낸 인물이다.

 

그는 그래서 이 소설을 끌고 가는 주인공이기는 하지만, 사건 해결이 될 즈음해서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그것은 저자가 작중 화자를 로 설정한데서 이미 예견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모이세스가 등장하는 모습

 

인간을 대표하는 모이세스는 그래서 이 소설에서 등장할 때에 가장 원초적인 욕망을 드러내는 장소에서 등장한다. 바로 창녀의 방이다. 흔히 범죄소설에서 범인을 추적하는 경찰 또는 탐정의 멋진 모습처럼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창녀와의 동침을 마치고 그녀에게 말을 건네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16)

인간의 적나라한 모습을 드러내 보이기 위해 저자는 그런 자리를 모이세스에게 설정해 준 것이 아닐까?

 

모이세스의 능력

 

모이세스는 경찰관으로서의 직무 능력도 출중하지만 더하여 다음과 같은 능력도 보유하고 있다.

<모이세스는 살 가죽 뒤의 모습, 가면 안의 얼굴을 볼 줄 안다. 그는 뛰어난 통찰력을 가지고 있다.> (238)

 

이는 의 발언인만큼 그런 능력은 생과 사를 통찰하는데 필요한 능력이라고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해서 와는 겨룰만한 상대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가 처음부터 모이세스 곁을 오가는 것이 아닐까?

 

모이세스의 생각

 

모이세스의 통찰력은 여기저기 발견할 수 있지만, 그가 이 사건을 취급하는 모습에서도 볼 수 있다. 그는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그는 차분하게 사건을 추적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소설에서 사건은 항상 해결되지만, 이 소설은 사건 해결을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사건의 진행을 마구잡이로 몰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 숨가뿐 사건 전개라는 추리 또는 범죄소설에서 볼 수 있는 공식이 여기에서는 찾아 볼 수 없다. 그저 인물 주변, 또는 사건 주변을 맴돌 듯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식이다.

 

<하지만 조심하라는 말을 하면 기셀르는 멋대로 결론을 내리고 사람들에게 퍼뜨릴 것이다.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사람들이 최악의 상황은 이미 지나갔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좋을지도 모른다. 그래야 수사를 차분히 할 수 있다.> (293)

 

저자가 말하는 삶이란 ?

 

모이세스는 동료들에게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그러니 이 소설이 범죄소설로만 국한한다면, 허무한 결말이고, 어찌 보면 범죄소설의 모든 공식에도 들어맞지 않는다. 해피 엔딩은 아니더라도, 범죄 수사의 끝맺음은 주인공 손에 맡겨야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해서 이 소설은 단순한 범죄소설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소설의 백미는 대미를 장식하기 전에 나눈 와 모이세스 간의 대화에 들어있다.

 

< .....(그는) 자신의 소신을 위해 역경에 맞서 싸웠습니다. 모든 것을 바쳐서 결국 해냈어요. 모이세스, 마지막 순간에 사랑했던 사람들 가슴 속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별로 없어. 산다는 것은 항복하지 않고 싸우는 거야. 떠날 때도 고개를 꼿꼿이 세우는 거지.>(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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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2 - 누구를 사랑하든, 누구와 일하든 당당하게 살고 싶은 나를 위한 심리학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2
배르벨 바르데츠키 지음, 두행숙 옮김 / 걷는나무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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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상처, 나만이 치유할 수 있다.

 

 

어릴 적 말뚝에 묶여 봤던 코끼리의 슬픔

 

서커스 공연에 동원된 코끼리는 엄청난 몸무게와 거대한 몸집, 굉장한 힘을 보여준다. ,,,그러나 공연이 끝나면 한 쪽 발에 쇠사슬을 차고 작은 말뚝에 묶인 채 천막 뒤에서 염전히 다음 공연을 기다린다. ...

 

사실 코끼리의 발목을 붙들고 있는 말뚝은 겨유 몇 센티 미터 정도의 깊이로 땅에 박혀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코끼리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그 말뚝을 뽑아내고 야생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코끼리는 왜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일까?

서커스단의 코끼리에게 말뚝에 묶여 있지 않은 세상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기 코끼리 시절부터 그 코끼리는 말뚝에 묶인 채 살아왔다. ....

어릴 때에 말뚝에서 벗어나려고 앴던 자신이 얼마나 무력햇는지 잘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안 좋은 것은 코끼리가 그 기억에 대하여는 자시는 진지하게 의문을 가져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고통스럽다고 해서 상처를 마음속에 묻어놓고 외면하면 그 상처가 결국 코끼리의 말뚝이 되어 우리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한다. (54-55)

 

이 책,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2>에서 인상깊게 읽은 이야기이며, 이 책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라 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책의 키워드는 상처라는 말인데, 그 상처를 직면하지 않고 방치하면 그 코끼리처럼 평생을 거기에 묶여 지낼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 그 상처 없애라는 말이다.

 

어떻게? 내가 내 안에 있는 상처를 치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만이 나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

 

문제 의식

 

그런 상처를 치유하기 위하여 저자는 먼저 우리의 자세를 점검한다.

왜 우리들은 남의 시선에 당당하지 못하는가, 하는 점에 착안한다.

그리고 나온 결론은 세상에서 나에게 가장 많이 상처를 주는 사람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라는 것이다.

 

, 우리들은 불쌍한 인생들이다. 사랑하는 동안에는 버림받을까 두려워하고, 행복해지길 원하면서도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될까 불안해하며, 상처받고 싶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과거의 마음 아팠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항상 상처를 받으면서 사는 것이다.

 

사람들은 특히 다른 사람이 준 상처가 마음의 벽을 쌓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마음의 감옥을 만드는 것은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끝없는 의심이다.

 

분명한 것은 다른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는 한, 상처를 주고받을 수밖에 없으며 이겨내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16)

 

그러나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발생한 상처라고 해도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것만으로는 바닥에 내동이 쳐진 자존감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없다. 지나간 상처에 계속해서 물을 주고 자라게 만드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16)

 

이 책은

 

이 책은 그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다양한 각도로 접근하며 문제 해결에 나선다.

다른 사람의 시선과 평판을 의식하느라, 정작 자기 자신에게는 진지하게 고민해 보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자기 삶에 집중하고 당당하게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주고자 하는 목적에서 쓰여진 책이다. (6)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한 저자는 다양한 조언들 - 실제적으로 적용 가능한 조언들-을 제시한다. 그래서 실제 상황에서 자기가 자기를 상처주고 상처받는 사람들에게 실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이라 할 수 있겠다.

 

몇 가지 밑줄 그은 조언들

 

가정에서 친밀하고 안정적인 사랑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누군가와 진지하고 따뜻한 관계를 맺는 것을 두려워한다. (41)

 

자기 자신이 만족하는 기준을 세우고 지금까지 억지로 강요받았던 이미지가 아니라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106)

 

시기심과 관련하여 버트란트 러셀은 현명한 사람은 누군가 가지고 있는 어떤 것 때문에 자신의 즐거움을 망치지 않는다고 했다. (115)

 

우리의 가치는 꼭 최상급에 속해야 빛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당함을 잃지 않을 때 더욱 큰 힘을 발휘한다.(116)

 

세상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것으로 불안과 두려움을 해소하려고 하지마라. 누군가 손을 잡아주고 고통스런 상황에서 끄집어 내주기를 바란다면 우리가 세상을 향해 손을 내밀고 있어야 한다.(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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