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초가,
이순신 장군을 위한 조가(弔歌)
새삼
역사 팩션이란 소설 장르를 생각해 보게 된다.
사실(Fact)과
픽션이 결합된 팩션,
그래서
사실을 기반으로 하되 픽션인 소설 기법.
이 소설은 이순신 장군이란 실존
인물을 중심으로 하여 픽션인 이순신 장군 암살 사건을 만들어 놓고,
이순신
장군이 왜 노량에서 전사해야 했을까를 탐구해 나가는 소설이다,
이순신
장군,
노량해전에서
전사.
과연 이순신 장군의 전사가
필연적이었을까?
이순신 장군의 종전을
앞두고,
딜렘마에
빠진 처지를 피부로 와 닿게 그려내고 있으니,
그
것 하나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있다 할 것이다.
이 순신 장군이 왜군과의 종전을
앞두고 어떤 처지에 있었던가?
선조는 자기보다도 다른 사람이
주목의 대상이 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 임금이었다.
그래서
강한 신하들이 나타나면 가만두고 못보는 의심많은 사람이며(13쪽),
그런
사람이 나타나면 자기 자리를 노리는 것이라 생각하고 어떻게 해서든 그 자리에서 내치고,
조금
더 위험한 인물이다 싶으면 역적이란 이름을 붙여 없애고 말았다.
임진왜란중에
큰 공을 세운 김덕령 장군이 바로 그렇게 장살당했고,
정여립이
그래서 역적의 누명을 쓰고 죽게 되었다.(13쪽)
이제
시간이 흐른 뒤 바로 화살은 이순신 장군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그래서
노량해전에서 적의 유탄을 맞고 전사한 이순신 장군의 죽음이 역사가의 입에 오르내리고,
이렇게
소설의 소재가 되는 것이다.
저자가 이순신 장군의 죽음에 대해 하고 싶은 말
이 소설은 앞에 말했듯이 역사
팩션이다.
그래서
허구의 사건이 들어있게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역사팩션 소설이 그렇듯이,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그러한 픽션이 팩트 사이에 끼어 들어간 것,
그렇게
그것을 살짝 가려놓고 보면,
거기에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이 오롯이 드러난다.
이 소설 역시
마찬가지다.
서교리가 선조의 밀명을 받고
내려갔는데,
거기서
그는 이순신 장군의 암살미수 사건을 만난다.
그
사건이 과연 누구의 소행인지,
왜
그랬는지를 파헤치는 작업에 뛰어 들게 된다.
그 사건을 빼어
버리면,
그
중간 중간에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이 보인다.
그것은 선조는 이순신 장군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선조는 이순신장군을 죽일
것인가,
그러지
않을 것인가,
그
판단을 하게 만드는 핵심이 보인다.
사람에 대한 감정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은 죽었을 때에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하는 것이다.어떤
사람의 사망소식을 듣고 별무반응이라면 그사람에 대한 감정은 별로 라는 것이 확실하다,
그
반면에 그 소식을 듣고 슬픔이 극에 달한다면 그사람에 대한 감정이 각별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리라.
이순신 장군에 대한 선조의
감정은?
선조가 이순신 장군의 전사 소식을
들었을 때 반응을 저자는 이렇게 말해주고 있다.
<통제사의
전사 소식을 들은 임금의 반응도 내 귀에 전해졌다.
임금은
전사 소식을 듣고 통제사의 장례를 도우라고 하는 전교를 내린 뒤 우의정을 추증했다.
다음
통제사로는 이시언을 내정했다.
여기까지가
공식적인 반응이었다.
사적인
반응은 시큰둥했다.
전사
소식을 밤에 들은 임금은 ‘오늘은
밤이 깊었으니 내일 승정원에서 알아서 처리하라’고
귀찮은 듯이 한마디 던졌다고 한다.
>(275쪽)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가 죽으면 어떤
반응을 보이는 것이 개주인 다운 행동일까?
귀찮은
마음만 생기면 과연 그 개주인은 사람일까?
아니면
사람이 아닐까?
집에서
키우던 개가 죽어도 그러지는 않을 것이다.
나라를,
위란지기의
나라를 구해준 장수의 죽음-
그것도
싸우다 죽었는데 -을
듣고도,
시큰둥해했다면,
그것은
이미 사람이 아니다.
임금은
더더욱 아니다.
또 하나 힌트가 되는 사항이
있다.
서교리가 임무를 마친 다음에 한양에
올라가 임금을 만난다,
그
자리에서 서교리는 임금에게 이렇게 보고한다.
“통제사가
살아 있을 때 왜적들이 암살을 시도하다가 실패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외에 제가 발견한 일은 없었습니다.”(280쪽)
‘그
외’라는
것은 선조가 서교리를 내려보내면서 지사한 사항,
즉
반란의 기운(13쪽)이라도
있는지를 파헤치는 것이다.
반란의 기운을 파헤치는 것이
선조에게 급한 일이었지.
이순신
장군이 암살 당하고 말고는 전혀 관심사가 아니라는 것,
역시
선조의 모습이다.
그리고 이순신을 보호해주던
방패막이가 되던 사람들의 행방,
역시
참고가 된다.
<
그
이후 나는 일상으로 돌아와 내 본래의 생활에 열중했다.
내가
한양으로 돌아왔을 때,
류성룡은
끝내 실각되어 있었다.
공교롭게도
통제사의 사망과 류성룡의 실각이 겹쳤다.>(281쪽)
따라서 저자는
결론내리기를,
이렇게
말한다.
<행여
통제사가 전사하지 않았다고 할지언정,
종당에는
류성룡과 마찬가지로 탄핵당하고 말았을 거라는 쑫덕거림도 펴져 나갔다.
아니
류성룡은 그나마 시골에서 살 수 있지만,
무군지죄가
있는 통제사는 필시 죽임을 당했을 것이라는 쑥덕거림도 있었다.>
(282쪽)
더하여 이런 원인이
이
소설은 그렇게 선조의 생각을 전해주는 결말로 끝이 난다.
그러나
저자는 단순히 그 것만을 말하려는게 아니다.
그
다음,
소설의
말미부분에서 박희출의 편지 한통을 보여준다.
그
편지 안에 모든 것이 담겨있다.
이순신
장군이 왜 죽지 않으면 안되었는가?
선조?
선조
탓만이 아니다.
물론
그 최종 책임자는 선조이지만,
바로
역사가 그렇게 만든 것이리라.
선조를 그리 만든
것도,
그
개인의 책임만은 아니리라.
해서
이 나라의 역사가-
쌓이고
쌓인,
누대에
걸쳐 먼지 쌓이듯 쌓인 그 적폐들이 바로 역사가 되고,
그런
역사는 가차없이 이순신 장군을 사지로 몰아 넣었고,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이다.
저자는 그렇게 이순신 장군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준열하게 묻고 있다,
역사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