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산’에만
불이 나나?
내 마음에도 불이
난다
징비록의
징비(懲毖)를 이 시대에 새겨야
한다.
이 소설의 제목은
<징비록>이다.
원래
<징비록>이라
함은 조선 선조 때에 왜란이 끝난 후에 유성룡이 지은 참회서이다.
저자는
그 이름에서 따와 소설 제목을 정한 것이다.
'징비'란
지난 잘못을 경계하여 삼가다라는 뜻으로,
<시경(詩經)>에
나오는 "여기징이비후환(予其懲而毖後患·내가
지난 일의 잘못을 징계하여 후에 환란이 없도록 삼간다)"는
문장에서 따왔다.
류성룡은
<징비록>
서문에서
“지난날을
생각할 때마다 황송하고 부끄러워 몸 둘 곳을 모르겠다”
하면서,
다시는
임진왜란 같은 일을 우리 민족이 당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징비록을 기록했다.
이 소설의 저자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
소설을 그저 재미로만 읽을 것이 아니라,
독자들에게
나라를 한번 생각해 보라는,
그래서
역사에 다시는 같은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도록 하라는 마음에서 이 책을 썼을 것이다.
나라 국록을 먹는 자
-
‘그들에게 나라는
없다.’
그래서 그런 저자의 마음을
헤아리면서,
임진왜란의
경과들을 저자를 따라가며 새겨보았다.
<왜적들이
우리나라가 경계하지 않은 틈을 타서 대군을 일으켜 침입하였건만,
병권을
거머쥔 장수는 싸울 생각을 아니하였고,
군수들은
고을을 내팽개치고 도망쳐 버렸다.>(
149쪽)
고경명의 격문중에서 인용된
것이다.
나라를
책임진 사람들은 아무도 자기들의 실수에 대해 책임지지 않았다,
그저
자기 목숨,
자기
가족의 안위만 생각하고 도망치기 바빴다.
그런
가운데 애꿎게 희생된 것은 평소에 자기 목소리 하나 변변히 내지 못하던 백성들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나라가 위란지기에 처했는데도 자기의
체면을 위하여 공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썩어빠진 무리들이 오히려 힘을 주어 나라를 위해 싸우겠다는 사람들을
핍박한다.
예컨대
사적인 감정을 가지고 곽재우 장군을 모함하던,
경상감사
김수가 바로 그런 인물이다.
(101쪽)
그들에게 나라는 중요하지
않다.
당장
자기 체면이 중요하다.
그래서
자기 채면이 깎이면 이에 대해 앙심을 품고 두고 두고 해코지를 한다.
‘그들에게
나라는 없다.’
그래서 그들이 오히려 이적행위를
하는 자들이다.
그럼 장수들을
어땠는가?
<아!
내가
사람을 잘 못 보았구나!
신립
장군이 그리도 병법에 어두운 사람일 줄이야!>
(74쪽)
신립에 대한 유성룡의
탄식이다.
<아!
대장께서는
만고의 충신이시나 병법의 이치는 잘 모르시는구나!>
(159쪽)
고경명에 대한 유팽로의
탄식이다.
그
반면,
병법을
알고 전술을 아는 장수들에게는 모진 핍박이 뒤따른다.
김덕령의 경우가 바로
그렇다.
그는 억울한 죽음을 앞에 두고
다음과 같은 시를 남긴다.
<춘산(春山)에
불이 나니 못다 핀 꽃 다 붙는다.
저 뫼 저 불은 끌 물이나
있거니와
이 몸의 내 없는 불이 나니 끌 물
없어 하노라.>
그런데 그의 죽음으로만 끝이 나는게
아니다.
임진왜란을
초래하여 조선을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혼군 선조는 질투인지,
장난인지
장수 목숨을 파리 목숨같이 여겨 해치고,
그들과
관련된 장수들조차 가만히 두려하지 않는다.
아예
씨를 말리려 작정한 사람같다.
그래서 김덕령의 친구이자 부장인
최담령이 김덕령의 무덤에 찾아와 한 말이 가슴에 남는다.
“죽기만
하면 다행이겠으나 역적으로 몰린다면 내 가문까지 위험해지니 어찌 할 도리가 없네.”(262쪽)
더욱더 내 심사를 불편하게 한 말이
말미에 등장하다.
김덕령을 추모하기 위하여 그의
무덤에 모인,
이인경,
곽재우,
최담령이
이런 이야기를 나눈다.
“우리
세 사람이 한자리에 너무 오래 모여 있으면 누군가 우리를 모함할 수도 있으니 조심할 필요가 있을 듯하오.”(291쪽)
역사는
되풀이된다,
희극적으로
마르크스는 이렇게
말했다.
<역사는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희극으로.>
정확하게는 이런
문장이다.
“헤겔은
그의 저서 어디선가 역사상의 중요한 사건과 인물들은 두 번 나타난다고 말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덧붙이는 걸
잊었다.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희극으로.'"
그럼,
그의
말이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가 살펴보자.
<선조가
한양을 버리고,
백성을
버리고 제 살길만 찾아 도망치다.>(78쪽)
<이승만이 서울을
버리고,
국민을
버리고 제 살길만 찾아 도망치다.>
그러니
맞다. 선조때는 비극으로, 그 다음에도 교훈을 얻지 못한 역사는 희극적이기까지 하다.
두 사건의 간격이 몇
년인가?
선조는
1592년에
그랬고,
이승만은
1950년이니
그 간격이 약 360년,
물론
이것은 단순히 이 책에 등장하는 선조의 도주만 비교한 것이다.
그런
반복이 우리나라에서 몇 번이나 일어났을까?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그러니,
역사에서
전혀 교훈을 얻으려 하지 않는 민족 아닌가?
안타까운 일은 이 책에 서술된
전투장면에서도 같은 실수가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시신더미
옆에 죽은 척하고 누워있던 개야무라 로쿠스케가 쏜 총탄이 황진의 이마에 명중한 것이다.
.....지난
해 김시민이 순찰중에 시신 더미 옆에서 죽은 척하고 있던 왜군의 총탄에 맞아 전사했던 것과 똑같은 수법에 당한 것이다.>
(228쪽)
진주성 방어를 책임진 장수 황진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던가?
전에
김시민이 그런 식으로 당했다면,
또
다시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누구 하나 옆에서 진언하는 장수가 없었다는 말인가?
‘장군,
지난
번 김시민 장군도 순시 중에 죽은 척 하고 있던 왜군의 흉탄에 전사하셨으니 이 점 유의하소서’라는
말 한마디,
하는
장수가 없었다는 말인가?
이런 의문에 대해서는 우리 시대가
답해야 한다.
이
책의 의미는 바로 그런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