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이 말을
하다니!
기기묘묘한 하우스
천일야화
아라비안 나이트에서 셰헤라자드는
천일 동안 끊임없이 이야기를 해 나간다. 그
이야기들이 하나같이 기기묘묘한 것들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도 기기묘묘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가구가
말을 한다.
방이
말을 한다.
집에
있는 모든 것들이 하나하나 말을 한다.
그런데
말하는 내용 또한 기기묘묘하다.
그러니
이 책은 하우스 천일야화같다.
하우스의
욕실,
침실도
말을 한다.
부엌,
거실
등등 모두다 자기들의 내밀한 이야기로 이 책은 넘쳐난다.
이
책은 그런 말들로 엮어진 신기한 책이다.
이 책은 하우스 내의 공간을 공개
구역과 비공개 구역으로 나눈다,
비공개
구역은 침실과 욕실이며,
공개
구역은 거실과 부엌이다.
하우스
안에서의 실내 구조를 이렇게 구분하는 것은 우리 인류의 역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비공개 구역
-
침실과
욕실
비공개 구역인 침실과 욕실을
살펴보면 그 발전의 역사가 자못 흥미롭다.
그리고
각각 거기에서 행해지는 삶의 모습도 흥미진진하게 발전되어 간다.
가령,
'침대의
역사를 아십니까?'
라고
도전해 오는 첫 번째 장을 읽어보면,
침대가
오늘날 우리들의 침실에 자리잡기까지,
사회의
발전과 과학의 발전이 얼마나 필요했는가를 알 수 있다.
그렇게
그런 역사를 알게 된다면,
오늘
밤 따뜻한 잠자리가 마련되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를 새삼 느끼게 될 것이다.
비공개 구역인 침실과 욕실에서
다루어지는 주제는 다양하다.
비공개구역인만큼
이루어지는 행위들도 역시 비밀스러운 것들이다.
임신,
출산,
수유,
속바지
등등,
이름만 들어도 비밀스러운
이야기들이 넘칠 것 같지 않은가?
그런데
이 책은 단지 그러한 것을 설명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장소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요소로 의술을 거론한다.
맞다,
임신
출산 등을 의술의 간여를 빼놓고는 말할 수 없지 않은가?
그렇게 이 책은 단지 공간만을
말하려는 게 아니라,
그
공간이 존재하기 까지 사회와 과학의 발전을 종으로 횡으로 교직하여 내어 놓는다.
그러니
그런 공간을 현재 사용하는 우리로서는 그런 역사 위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읽으면 더 흥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공개 구역
-
거실과
부엌
원래의 집에서는 거실만 존재하고
있었다.
거실에서
모든 일이 행해졌던 것이다.
그렇게
지내다가 점점 특정 행위를 위한 별도의 공간이 필요하게 되고,
그
목적의 수행을 위해 거실은 쪼개지고,
분화되기
시작한다.
예컨대
수면과 성행위를 위한 공간으로 침실이 따로 떼어지게 된다.
결국
거실은 거실만의 거실이 되었다.
거실이 여러 가지 특화된 공간으로
발전한 이유도 흥미롭다.
남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특정 활동을
수행하기가 점점 거북살스러워졌다.
그런
예절의식 때문에 공간들이 특화되어 구분되기 시작하였다.
그
다음 이유는 고독을 선호하는 경향이 짙어졌기 때문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신사들은 조용하고 사적인 공간이 필요한 활동인 독서와 공부를 좋아했기에 거실을 특화시켜 공부하는 곳으로 만들었다.
(202쪽)
흥미로운 것은 비교적 미천한 신분의
사람들이 거주하는 주택에서는 특화된 거실이 침실이나 부엌보다 더 느린 속도로 발전했다.
왜냐면
노동에 전념하는 사람들은 여기 공간이 필요없었기 때문이다.
(205쪽)
그러므로 거실의 존재는 높은 사회적
지위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런 거실이
생기자,
그
다음으로는 어떤 일들이 생겼을까?
예상한
것처럼 거실 공간을 채울 가구나 비품이 소요되게 되었다.
그
예로,
저자는
거실을 설명하면서 첫 번 째 요소로,
편하게
앉아있기를 선택하고 가구 중 의자를 핵심으로 꼽고 있다.
(203쪽)
기타 기억하고 싶은 이야기들
나이팅게일도 하수구에서 풍기는
냄새가 성홍열과 홍역을 옮긴다고 생각했었다.
185쪽)
그
당시에는 모두다 그렇게 병이 수인성병 -
예컨대
콜렐라-
도
공기로 옮긴다고 생각을 했었으니까.
나이팅게일도
이런 생각을 했다는데 믿어지지 않을 정도이다.
수세식 화장실의 선구자인 존 해링턴
경(Sir
John Harrington)이
있다.
그는
바스 인근의 자택에 최초로 유수 장치를 설치했고,
나중에는
엘리자베스 1세를
위해 리치먼드 궁전에 하나 더 설치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존 해링턴 경을 기리는 뜻으로 미국인들이 화장실을 존(the
john)으로
부른다는 설도 있다.
(181쪽)
여기 이 책에서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특징,
유명인사들의
하우스에 관한 발언들을 접할 수 있다.
프란시스 베이컨은 이런 말을
했다.
<유리를
가득 채운 주택에서는 어디를 가야 햇빛 혹은 그늘을 피할 수 있는지 알기 어렵다.>(368쪽)
베이컨이 유리로 가득한 대저택을
비난하면서 한 말이다.
집에서의 행복을 위하여!
그런 이야기를 저자가 펼쳐놓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그저
그런 일이 있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일까?
아니다,
저자는
마지막 장인 ‘결론’의
타이틀을 이렇게 잡았다.
<과거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
그래서 저자는 각각의 하우스의
공간과 그 공간을 채우고 있는 것들 -
물질적인
것과 비물질적인 것-이
말을 하게 하고,
그것으로부터
현재와 미래의 인간의 모습을 조망해보려고 한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이 책에서 주로
다루고 있는 유럽의 역사에서 배울 것도 있지만,
우리
각자 가정만의 역사와 시간도 있지 않은가?
그래서
이 책을 읽고 실제 우리들이 살고 있는 집에 들어가 한번 말을 걸어보자.
한국
번역판은 <하우스
스캔들>이라
했지만,
원제는
<If
Walls could talk>이다.
그러니
서두에 가구가 말을 한다.
거실이
말을 한다고 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이제 벽에게뿐만
아니라,
매일
앉아 지내는 거실의 소파에게,
또는
식탁 의자에게, 말을 걸어보자. 그러면
길고긴 인류역사까지는 말하지 못하겠지만,
각자
나름대로의 짧은 역사라도 분명 말을 해 줄 것이다.
그런
말을 들으면서 오늘 밤,
침실에서
과학이라고 외치는 침대에서 편안한 잠을 즐기시기를!
왜냐하면,
이
책의 저자는 다음과 같이 존슨박사의 말을 인용하는 것으로 이 책을 마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집에서의
행복은 모든 야심이 지향하는 최종결과이다.”
(37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