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질한 위인전 - 위인전에 속은 어른들을 위한
함현식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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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질함도 위대함의 일부인가?

 

어쩔 수 없는 모순적 존재, 인간

 

저자는 보잘 것 없고 변변하지 못하다는 뜻을 가진 표준어 지질하다를 발음대로 표기한 찌질함과 훌륭한 사람의 이야기라는 뜻을 가진 위인전의 결합은 그 자체로서 모순이라 말한다.(5) 맞다. 찌질함과 위인전이라는 말은 같이 사용할 수 없이 모순적이다. 그러나 한편 생각해보면, 인간치고 모순 없는 존재가 어디 있던가? 인간은 어쩔 수 없이 그런 모순의 존재이고, 따라서 이 책 그런 모순을 찾아내어 위인의 진면목을 보여주는데 그 목적이 있다.

 

그런 목적을 지닌 이 책에서 등장하는 위인 11명은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에게 처음 각인되었던 처음의 이미지와 다른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러니 위인의 위인다운 모습에 익숙해 있는 우리들은 그러한 위인들의 이면을 만나게 되는 재미, 그게 이 책을 접했을 때 처음 갖게 되는 생경함이요, 신선함이다.

 

위인의 찌질함을 보는 두가지 방법

 

그러면 저자는 어떤 측면에서 위인들의 다른 모습들을 보여주는가?

저자는 위인을 우리 보통 사람들과는 동떨어진 자리에 놓고, 마치 하늘의 별처럼 생각하는 것에서 탈피하여 위인을 다시 보자는 주장을 한다.

 

그 방법으로 저자는 첫째로, 위인에게서 우리가 듣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들을 찾아낸다. 지금껏 듣지 못했던 그 사람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이 그들을 인간답게바라보는 근거가 된다는 것이다.

 

예로는 김수영의 경우를 들 수 있다. 김수영의 시를 읽으며 저자는 김수영이 아내를 구타한 사건을 보여준다. 왜 김수영은 길에서 아이들도 보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보는 곳에서 아내를 구타했는가? 그리고 거기에 얽힌 사연은 무엇인가? 등등을 읽으면서 우리는 지금껏 몰랐던 김수영의 모습을 보게 된다.

 

둘째는 그 사람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갖느냐,하는 점이다.

예로는 간디의 경우를 들 수 있겠다. 저자는 간디에게서 한계적 인간의 전형을 찾아낸다.

 

<간디의 한계는 그가 카스트 제도의 철폐까지는 주장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200쪽)

 

<간디는 기존의 틀 자체를 무너뜨리는 데에는 큰 관심이 없었던 듯하다.>( 201쪽)

 

<20세기 이후 세계 역사에 있어서 간디만큼이나 정치적, 종교적 색채가 혼재되어 있는 인물을 찾기는 어려운 일이다. 때문에 어떤 관점을 갖고 간디를 바라보느냐에 따라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리기도 한다.>(218)

 

여기서 찾아낸 새로운 사건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알게 되는 위인들의 찌질함은 실상은 위대함의 일부이다. 결코 그것이 분리되거나 따로 존재하지 않는데, 우리들은 위인의 그러한 면에는 애써 눈을 감고 있었지 않았나, 하는 반성을 하게 만든다.

 

그래서 그러한 찌질함을 읽게 되어, 결국은 사람이 어떤 존재인가를 새삼 깨닫게 된다.

 

헤밍웨이의 경우, 찌질함 자체

 

헤밍웨이의 경우는 처음부터 위인이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작품은 어쩔지 모르겠으나, 그 작품 몇 편만으로 그를 위인의 대열에 세워본 적이 없었다. 그런 나의 판단이 이 책을 읽고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위인이라는 분류에는 처음부터 들어갈 사람이 아닌 것이다. 오히려 여기 소개된 일화들, 사건들을 통해 판단해 보건대, 찌질함 그 자체가 아닐까 판단된다.

 

찌질함에서 벗어나는 철학

 

저자가 찌질함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제시하는 다음과 같은 말은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진짜 찌질한 것은 무엇이든 그게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데에서 비롯된다. 내 목숨이 영원할 것 같고, 내가 가진 권력이나 돈이 영원히 나에게 머물 것 같고, 내 곁에 있는 사람이 영원히 나를 떠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순간, 거대한 찌질함의 가능성이 열린다. 때문에, 불안이 반드시 영혼을 잠식하는 것도 아니고, 불안이 그 자체로 부정적인 것도 아니며, 반드시 지워야 하는 것도 아니다. 불안에 대처하는 자세에 따라 우리는 더 찌질해질 수도, 덜 찌질해질 수도 있다.>(249)

 

그들의 찌질한 면들이 나를 돌아보게 한다.

 

그러나 저자가 이 책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찌질함이 결코 위인의 모습을 허물거나 가리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찌질한 면모를 지닌 그들도 결국은 사람이었고, 사람인 이상 모순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 찌질함이 결코 그들의 위인됨을 저해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대신 그들의 위대한 업적에 가려진 그들의 삶을 바라보면서, 오히려 자기 자신에 대하여 따뜻한 위로를 건넬 수 있다고 힘주어 말하는 것이다. 그렇게 그들의 찌질한 모습을 보면서 자기 자신을 돌아볼 수 있으니, 이 책의 가장 큰 가치는 거기에 있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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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한 사람을 모방하라 : 마키아벨리처럼 - 위기를 창조적 도약으로 바꾸는 자기혁신법 인문고전에서 새롭게 배운다 3
신동준 지음 / 미다스북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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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처럼 탁월한 사람을 모방해서 정치하라

 

이 책의 장점, 저자 그 자체

 

저자 신동준은 이 책에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서 찾아낼 수 있는 리더십의 요체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 책의 장점은 우선 저자의 탁월한 경력에 기인한다.

그는 동서양의 고전을 섭렵한 사람이다. 섭렵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구체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필력을 가진 사람이다. 그가 펴낸 책을 살펴보면, 이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그러한 그의 능력을 이 책에서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 제목은 <탁월한 사람을 모방하라, 마키아벨리처럼>인데, 단순히 마키아벨리의 이야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또 다른 이 책의 장점은 저자가 그저 사변적인 주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주장이 왜 타당한지, 구체적인 사례를 근거로 내어 놓는 점이다.

 

게다가 그 실례는 어느 한 곳이나 한 시기에 한정되지 않는다. 저자는 동서양을 넘어서, 또한 시대를 넘어서 풍부한 사례들을 끌어와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특별히 저자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이 책의 주재료로 삼으면서 <한비자>를 곁에 놓는다.

 

천년을 두고 내려온 동서양의 고전, <군주론>과 <한비자>를 같이 엮어 놓았는데, 어찌 그뿐이랴, 해박한 저자의 역사에 대한 지식은 그 두 고전을 단순히 설명하는 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주장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적용되어 왔는가를 차근차근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그의 책은 생동감으로 넘친다. 그래서 이 책은 먼 옛날의 고전이 현대에 살아나 팔짝 팔짝 뛰는 형상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내가 원할 때 간언을 둘 수 있는 좋은 참모를 두라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이런 식이다.

 

<마키아벨리의 시각에서는 군주에게 가장 위험한 상황은 산하들에게 얕보여 경멸을 당하고, 나아가 탐욕스런 모습으로 인해 백성의 증오 대상이 되는 경우다. 존경을 받지 못하는 상황을 넘어 경멸을 받고, 비나의 차원을 넘어 증오의 대상이 되면 군주는 보위을 유지할 길이 없게 된다. 권신에 의한 시군찬위(弑君簒位)가 빚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왕조가 뒤집히고 정권이 뒤바뀌는 이유는 이런 것이다.>(68)

 

이렇게 마키아벨리의 주장을 설명한 다음에 저자는 바로 이어서 한비자를 들어 그 주장의 타당성을 입증한다.

 

<한비자도 마찬가지다,. 한비자가 간겁시신(姦劫弑臣)에서 이를 집중 거론한 것이 그 증거다. ....한비자는 간신과 겁신 및 시신에게 휘둘리는 군주를 문둥병자만도 못한 것으로 평가했다.>(68)

 

그럼 저자는 이런 주장을 제시하고 그 근거를 들어 이해를 촉구한 다음에 어떻게 글을 마무리하는가? 이렇게 끝을 맺는다.

 

<이는 요즘의 나라나 회사에 대입해도 똑같다. 복잡한 세상에서 대통령이나 CEO는 모든 것을 다 알고 판단할 수는 없다. 믿을만하고 유능한 참모를 곁에 두어 그들의 의견을 듣고, 깊이 생각하여 자신만의 판단을 하고, 일단 정해진 결론은 인내를 갖고 밀고 나가야 한다, 그렇지 못한 나라나 회사는 풍전등화 앞에 있는 것이며, 자리를 보전하기도 쉽지 않다. >(69)

 

이런 식으로 이 책은 마키아벨리의 책 <군주론>에서 찾아낼 수 있는 리더십 관련 항목을 36가지 추출해 낸다.

 

<군주론>의 요체

 

36개 항목을 대분류한 내용을 보면 저자가 어떤 모습으로 리더십이 행사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시련과 난관 속에서도 자신을 끊임없이 단련하는 리더십

끊임없이 새로운 성공을 이루는 리더십

너그러우면서도 두려운 지도자가 되는 리더십

원할 때 들을 수 있는 조언자를 두는 리더십

사자의 위엄과 여우의 지혜를 동시에 가지는 리더십

탁월한 사람을 창조적으로 모방하는 리더십

 

이렇게 리더십으로 이르는 길을 안내하는 저자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의 요체에 접근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거기에 더하여 저자는 <마키아벨리의 삶과 사상에 관하여>라는 항목으로 마키아벨리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를 위하여 친절한 안내를 해주고 있다.

 

주어진 현실에서 최선의 선택을 잘하는 게, 정치가

 

이 책을 읽고 난 서평의 마무리는 이런 말을 인용하면 어떨까?

 

<마키아벨리는 기본적으로 정치를 윤리, 도덕의 잣대로 재단하는 것을 거부했다. 정치는 어디까지나 현실이고, 이는 주어진 현실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는 하나의 과정으로 파악했기 때문이다.>(390)

 

정치는 그런 것이라는 것을 특히 우리나라 정치가들이 명심했으면 좋겠다. 굳이 다른 말로 말하자면 마키아벨리처럼 탁월한 사람을 모방해서 정치하라는 말이다. 물론 국민들은 이것을 명심해서 현실에서 선택을 잘 하는 정치가에게 투표하는 것을 두말할 나위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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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정 - 정명공주와 광해군의 정치 기술
박찬영 지음 / 리베르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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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에 화정(華政)’의 불씨를

 

<정명공주는 천수를 누리고 83세에 세상을 떴다. 정명은 늙어서도 공주였고 죽을 때도 공주였다. 얼굴에서 발하는 존귀함은 죽어서도 다르지 않았다, 숙종은 정명공주가 죽어서도 예우를 다했다. 실록에도 숙종이 정명공주의 죽음을 애도했다는 대목이 따로 나올 정도다.>(315)

 

정명공주!

선조의 딸로 태어나 숙종대에 이르러 죽었으니, 조선임금 선조, 광해군, 인조를 거쳐 숙종에 이르기까지 6명의 임금을 겪었다. 때로는 영화를 누리며 때로는 고난을 당하며 살았는데, 그 생을 초지일관 지탱하고 있던 것은 바로 화정(華政)’이란 두 글자였다.

 

그 두 글자, ‘화정이 곧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다.

 

그래서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화정이란 두 글자가 어떻게 정명공주의 삶을 이끌고 갔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화정(華政)’의 의미

 

저자는 화정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화정(華政)에서 화()는 빛 또는 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은 다스린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화정은 빛나는 다스림혹은 화려한 정치로 해석할 수 있다. 각각의 해석은 다른 느낌을 준다. ‘화려한 정치에는 일신의 영달을 추구하는 모습이 담겨있고, ‘빛나는 다스림에는 자기 수양과 애민(愛民)의 의미가 담겨있다.> (6)

 

그러한 화정의 뜻이 정명공주의 인생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을까?

 

정명의 행실

 

정명의 행실을 이 책에서 구체적으로 그리고 있지 않다. 그러나 막내아들 홍만화에게 내린 글이 있는데, 그 글을 통해 짐작해 볼 수 있다.

 

<내가 원하건대 너희가 다른 사람의 허물을 들었을 때 마치 부모의 이름을 들었을 때처럼 귀로만 듣고 입으로는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의 장점과 단점을 입에 올리고 정치와 법령을 망령되이 시비하는 것을 나는 가장 싫어한다. 내 자손들이 차라리 죽을지언정 경박하게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말이 들리지 않기를 바란다.> (7, 193)

 

정명의 처세술

 

정명의 처세술은 대체로 결정적인 순간에 침묵하는 것이었다. 고난의 시기에도, 부귀영화를 누리는 시기에도 침묵했다.(193)

 

정명은 주변의 입방아에 시시비비를 가리려고 섣불리 대응하다가 오히려 시비에 휘말릴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런 경우에는 문제가 자동으로 해결되거나 해소되었다.

 

정명은 평소 겸손한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존귀함을 잃지 않아 따르는 무리가 많았다.

 

정명은 스스로 움직여서 표적이 되기보다 다른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고도의 빛나는 다스림을 체득했다. 안달복달하는게 아니라 스스로 빛을 발하는데 능숙했다.

 

정명공주의 일생

 

저자는 다음과 같이 정명공주의 일생을 간략하게 정리한다.

 

광해군, 인목대비, 영창대군 등의 그늘에 가려진 인물

폐서인되어 죽어 있다 다시 숨을 쉰 공주

당대 최고의 여성 서예가로 평가받는 인물

역대 여섯 왕과 함께 한 최장수 공주. (6)

 

, 소현세자~

 

저자는 정명공주의 화정을 가지고 흥미로운 상상을 해 본다,

바로 소현세자의 안타까운 죽음과 관련해서다.

소현의 자리에 정명이 있었더라면, 더 정확히 말해서 정명의 화정을 소현이 가졌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자신의 속을 감추고 혼자 꿈을 키웠을 것이다. 꿈은 자리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을 때에 이루어진다. 정명공주는 상대의 치명적인 약점이나 상대가 싫어하는 점을 거론하는 것을 금기로 여겼다. 소현세자가 정명공주의 조언을 들을 수 있었다면 자연스럽게 인조에 이어 왕위에 올랐을지도 모른다.

소현세자는 자기의 생각을 드러내어 인조를 분노하게 했다. 섣불리 움직이면 표적이 된다. 뜻을 같이하는 사람과 함께 하고 있을 때 움직여야 한다. 그때조차도 자신을 노출하면 안된다. 언제 동지가 적이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권력의 세계에서는 아버지조차 믿을 수 없다. 소현세자는 결국 인조의 표적이 되어 이 세상과 결별하게 되었다. >(273-274)

 

소현세자에 대한 그런 아쉬움을 저자는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서양문물에 눈뜬 소현세자가 왕위를 이어받아 일본에 앞서 서양문물을 도입했다면 어땠을까? 조선의 근대화가 100년은 더 빨라지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구한말에 외세에 휘둘려 나라를 빼앗기는 일도 없었을지도 모른다.>(273)

   

역사를 보는 시각의 새로움

 

세상에 선과 악의 싸움은 드물다. 선과 선의 싸움이 대부분이다.

저자는 선과 선의 싸움에 대하여 말하기를 우리는 악을 경계하듯이 선도 경계하여야 한다. 서로 선이라고 말할 때 선들은 충돌한다.”(67)며 이런 시각을 가지고 우리 역사를 읽어낸다.

 

대표적인 예가 황윤길과 김성일, 김상헌과 최명길에게서 선과 선의 갈등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또 이런 진술은 어떠한가?

<많은 사람이 이이첨은 원래부터 악의 축이었다고 생각한다. 아니다. 선이 선을 밀어내자 밀려난 선이 악으로 변했다고 보는 게 더 타당하다.>(103)

 

이 시대에 화정의 불씨를

 

그렇게 역사를 바라보는 저자는 그 해결책으로 바로 화정을 거론한다.

 

<조선 사회에서 선과 선이 부딪혔을 때에는 어느 한쪽이 결국은 죽어야 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악으로 변신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 악순환을 깨는 방법이 있다. 한 걸음 물러나 상대가 움직일 여지를 주는 빛나는 다스림이다.>(103)

 

그렇게 저자는 정명공주의 화정을 가지고 역사를 읽어낸다. 그러니 정명공주의 화정은 그 자신만의 인생철학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 저자를 통해 역사를 읽어내는 철학으로, 더 나아가서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로 작동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저자는 정명공주의 인생을 그 주변의 역사를 서술하는 가운데 지금 이 시대에 화정의 불씨를 살려내려고 이 책을 썼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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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영의 책고집
최준영 지음 / 답(도서출판)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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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거리의 인문학자라 불리는 최준영이 책에 관해 쓴 글을 모은 것이다. 다양한 각도로 책을 읽고, 읽은 후의 생각들을 책의 소개와 함께 하고 있는데, 그 내용들이 그저 단순한 책소개로 그치거나 저자의 감상 수준에 그치는 게 아니다.

 

최준영이 쓴 글마다 말미에 참고한 작품들이라며 책 목록을 적어놓았는데, 그것을 살펴보면서 내가 읽은 것이 혹시 있는지, 그래서 읽었다면 나는 왜 그것을 똑 같은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들을 건저 올리지 못했는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다시 그 언급된 책을 꺼내들고 해당 페이지를 다시 읽으면서 저자가 건저올린 생각을 다시 한번 음미해볼 수 밖에 없었다. 또한 그런 나의 독서가 부족한 듯하여 저자가 소개해준 책들 중 읽지 못한 것을 새로 읽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 책은 읽은 책을 다시 읽게 하는 책이며 또한 이 책은 내가 미처 읽지 못한 책을 읽어보게 만드는 책이다.

 

읽은 책을 다시 읽게 하는 책

 

고통을 통해 성장하라, 맹목적인 긍정은 경계하라.”(91쪽 이하)를 예로 들어보자,.

 

이 부분에 등장하는 책들은 다음과 같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루이스 캐럴

<결핍을 즐겨라> 최준영

<맹자> 맹자

<신화의 힘> 조셉 캠벨

<스피노자 - 책 제목 밝히지 않음>

<긍정의 배반> 바버라 에런라이크

 

그리고 그 글이 끝난 다음에 참고한 책, 읽어볼만한 책으로 다음과 같은 책을 소개해 놓았다.

 

<결핍을 즐겨라> 최준영.

<아프니까 청춘이다> 김난도

<신화의 힘> 조셉 캠벨

<철학하라> 황광우

<긍정의 배반> 바버라 에런라이크

 

이중에서 내가 읽었던 책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맹자>, <신화의 힘>, <긍정의 배반>이다.

 

흐르는 물이란 구덩이를 채우지 않으면 가지 않는다

 

그런데 <맹자>, 읽긴 했지만 여기에 등장하는 구절은 처음 보는 듯하다.

 

여기 이런 말이 등장한다.

<“흐르는 물이란 구덩이를 채우지 않으면 가지 않는다.”

황광우의 <철학하라>에서 건진 맹자의 말입니다. 흐르는 물 앞에 구정이가 있으면 물은 일단 구덩이를 채웁니다. 물이 차기 전에는 흐름을 멈출 수밖에 없고, 구덩이를 가득 채운 뒤라야 비로소 흐릅니다. 단순한 자연의 이치에서 맹자는 인간의 덕목을 이끌어 냅니다. 무릇 군자는 학문과 덕행을 차근차근 쌓아가야 합니다. 역경과 시련 앞에서 고통스러워하며 갈피를 잡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들에게는 기다림과 인내의 의미를 알려주는 말이기도 합니다.>(93)

 

흐르는 물이란 구덩이를 채우지 않으면 가지 않는다.”

맹자가 저런 말을 했던가? 맹자의 어느 부분에 저런 말이 있었나?

맹자를 읽기는 했지만, 어디 모든 구절을 다 기억하고 있지는 않으니, 부득히 다시 맹자를 열어 보았다,

 

그 말은 맹자 진심장구상- 24에 등장하는 말이었다.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공자께서 동산에 올라가셔서는 노 나라를 작다고 여기셨고, 태산에 올라가셔서는 천하를 작다고 여기셨다. 그러므로 바다를 보는 사람은 물이야기하기를 어려워하고, 성인의 문에 노는 사람은 말하기를 어려워한다. 물을 관찰하는 데 방법이 있으니 반드시 그 물결을 봐야 한다. 해와 달은 밝은 빛을 지니고 있어 작은 틈바구니에까지도 반드시 다 비친다.

흐르는 물이란 구덩이를 채우지 않으면 가지 않는다. 군자가 도에 뜻을 두었어도 환하게 몸이 드러나지 않으면 도에 나아가지 않는다.>

 

流水之爲物也, 不盈科不行; 君子之志於道也, 不成章不達.”

 

이 부분을 이기동은 다음과 같이 해설해 놓고 있다.

<물이 구덩이가 있을 때에는 그 구덩이를 다 채우고 난 뒤에 다시 흘러가는 것처럼, 진리를 추구하는 데 있어서도, 머리로써 이해하며 곧바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진리가 몸에서 우러나와 밖으로 빛을 발하게 되는 단계에 이르지 아니하면 도달할 수 없는 것이다.>(맹자강설, 이기동, 613)

 

이렇게 이 책을 읽으면서 전에 읽었던 맹자를 다시한번 읽고 새기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그런 교훈을 여기 이 책에서는 이렇게 변용하여 사용한다.

<생의 시련 혹은 역경이란 흐르는 물이 언젠가는 반드시 만나게 마련인 구덩이에 다름 아니다. 흐르는 물에게 구덩이란 채워야 할 곳이지 흐름을 멈추어야 할 파국의 의미는 아닌 것이다. 겪어야 할 것은 겪어야,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다.> (93-94)

 

그런 다음에 글은 자연스레 고통의 문제로 넘어간다.

<고통은 피하면 피할수록 더 큰 고통으로 되돌아온다. 차라리 직접 대면하는 것, 그게 바로 고통을 이기는 방법이다. 얼핏 하나마나한 이야기처럼 들리거나 빤한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겠다. 그렇기야 하겠는가. 모든 고통을 비판없이 무조건 긍정하자는 말이 아니다. 지나친 긍정은 외려 근거없는 낙관주의로 흐를 수 있으니 그 역시 위험하다.>(95)

 

고통에서 교훈을 얻는다는 맹목적 긍정을 경계하라

 

그래서 그 다음 등장하는 책은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긍정의 배반>이다.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그 책에서 맹목적 긍정을 경계하라고 지적한다.

 

이렇게 이 글에서 저자는 고통을 통해 인간은 성장하지만, 그렇다고 그 고통을 마냥 긍정적으로 볼 게 아니라, 에런라이크의 말을 들어 맹목적인 긍정을 경계하라고 말한다.

 

여기 이 글에서 맹자의 그 말을 우리 현실에서 어떻게 적용하는가, 맹자의 말이 다만 책 속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쓰이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더 나아가 그런 고통과의 직면이 다만 우리에게 자기 위안이 아니라, 또한 고통을 통해 어떤 교훈을 얻었다는 식의 긍정도 또한 취할 자세가 아니라는 것, 그러한 것들이 바로 책들에서 얻을 수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에게 책은 살기 위해서”(57) 읽는 것이다.

 

책을 재음미하며 또한 새로운 책 기대하게 되다.

 

그렇게 내가 읽었던 책들이 새롭게 나타나는 것을 보면서, 다시한번 그 책들을 살펴보게 되는 것에 이 책의 가치가 있는 것이며, 또한 저자가 소개해 준 책 중 내가 미처 읽지 못한 책들에 대한 기대를 하게 만드는 것, 역시 이 책에서 맛보는 즐거움이다.

 

읽었던 책에 대하여는 재음미하는 기쁨과, 또 새로 소개된 책을 읽을 기대가 함께 부풀어오르게 만드는 것, 그런 기쁨이 바로 책 읽는 재미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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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연, 베스트셀러를 쓰다 탐 철학 소설 20
염명훈 지음 / 탐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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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주기 위해, 일연 베스트 셀러를 쓰다

 

삼국유사(三國遺事) VS. 삼국사기(三國史記)

 

이 책에 등장하는 베스트셀러인 삼국유사, 먼저 그것부터 짚고 넘어가자.

삼국유사가 유사(遺事)인 줄을 처음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는 역사책이니까 당연히 유사(遺史)인줄 알았다. 그래서 삼국사기와는 그 성격이 확실하게 차이가 나는데, 이 책에서는 그 점을 확실하게 밝혀놓고 있다.

 

<삼국사기가 왕의 명령에 따라 엄격하고 정확한 틀 안에서 역사책이 가져야 하는 모범에 충실하면서 유교적 가치관에 따라 쓰였다고 한다면, 삼국유사는 일연스님의 자유로운 선택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일연스님이 찾아낸 여러 이야기가 담기면서 우리 민족의 뿌리라고 할 단군부터 사회적으로 천대받고 있던 사람들까지 주인공으로 등장해 삼국사기 하나로는 알 수 없었던, 당시 사람들의 생생한 삶을 구석구석 보여주고 있습니다.> (201-202)

 

따라서 이 책은 당시 살아가던 사람들의 일()들을 기록한 책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역사적 가치가 없는 단순한 이야기책이라는 것은 아니다. 백성들의 생생한 삶이 오히려 더 역사적인 가치가 있기에, 이 책이 역사적 기록이라는 점 또한 소홀히 취급되면 안될 것이다.

 

이런 자료 하나 덧붙인다, 삼국유사에 관한 개괄적 서술, 인터넷에서 찾은 내용이다.

 

삼국유사는 삼국의 역사 전반에 관한 사서도 아니며, 불교사 전반을 포괄하지도 못하였고 저자의 관심을 끈 자료들을 선택적으로 수집, 분류한 자유로운 형식의 역사서이다. 그러나 삼국유사는 역사 . 지리 . 문학 . 종교 . 언어 . 민속 . 사상 . 미술 . 고고학 등 총체적인 민족문화유산의 원천적 보고로 평가될 만큼 다른 전적에서 볼 수 없는 다양하고 많은 내용이 담겨 있다.

 

이 책의 주인공, 일연스님

 

그런데 이 책은 특이하다. 제목이 <일연 베스트셀러를 쓰다>이다. 그런만큼 당연히 이 책의 주인공은 일연스님일터. 그래서 일연이 베스트셀러인 삼국유사를 쓰게 된 배경, 그 과정들이 나타나야 마땅한 일이다. 또한 저자는 그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 책은 일연스님의 삶을 밝히려 노력한 책입니다, <삼국유사>에 어떤 내용이 담겨있는가보다 그 책을 쓰신 일연스님이 어떤 삶을 사셨나에 주목하고 싶어서 쓴 책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내용의 전개는 삼국유사에 나오는 장들을 따라가고 있습니다.>(8)

 

그래서 일연스님을 중심으로 든금, 생동, 가초, 무극(無極) 등이 등장하여 일연스님이 베스트셀러인 삼국유사를 쓰는 사건을 이야기 식으로 구성하고 있다.

 

이중 무극은 실제인물이다.

 

무극과 관련하여 다른 자료를 찾아보니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는데, 무극은 삼국유사 책의 간행하는데 관여했음을 알 수 있다.

 

<삼국유사는 삼국의 역사 전반에 관한 사서로 엮어진 것이 아니라 저자의 관심을 끈 자료들을 선택적으로 수집, 분류한 자유로운 형식의 역사서이다. 저자에 의한 초간본의 간행 여부는 분명하지 않으며, 1310년대에 제자 무극(無極)이 간행하였으나, 무극의 간행이 초간인지 중간인지는 알 수 없다.>

 

일연은 왜 그런 이야기를 기록했을까?

 

고구려, 신라, 백제라 하면 이젠 아주 먼 옛이야기들인데 어찌 그것에 그렇게 힘을 기울이십니까?‘라고 든금이 묻는다.

그런 질문에 일연은 다음과 같이 답한다.

 

<지나간 시간이란 것이 말이다. 어떻게든 잊어야 할 것도 있지만, 꼭 기억해야 할 것도 있는 법이란다. 지나간 일을 잊어도 될 때가 있고 반드시 갖고 있어야 할 때도 있다. 지금이 바로 우리 고려가 지난 삼국의 일을, 아니 더 멀리 올라가 하늘의 뜻을 받아 하늘의 사람들이 우리의 조상이 된 일을 기억해야 할 때이다. 우리가 이렇게 다른 나라에 비참하게 짓밟히고 있어도 언젠가는 다시 일어나는 힘이 잇다는 걸, 그 힘이 아주 먼 옛날부터 우리에게 있었단 증거를 위해서라도 꼭 우리의 이야기들은 필요한 것이지. 그게 내가 몸담았던 이 나라를 위해서 해야 할 일이 아니겠느냐?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목숨까지 바친 내 아버지 같은 분들을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일이 아니겠느냐?>((184-185)

 

고려 시대, 폭력적인 무인 정권의 통치아래, 그리고 몽고의 침략으로 고통받던 민초들에게 희망을 주고, 긍지를 갖도록 그 이야기들을 써낸 일연의 안타까운 가슴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 하다.

 

일연, 희망을 쓰고 가다

 

이 책은 그렇게 일연의 이야기를 전기체로 서술해나가면서, 일연이 얼마만큼 백성들을 생각했는가, 고통에 빠진 백성들을 위정자들을 생각하지 않는데, 일생을 다하여 사랑했던 일연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그런 일연의 노력은 헛되지 않아, 후세 사람들은 말하길, 일연스님은 우리의 조상이 하늘에까지 이어졌음을 알려 당시 몽골의 침략과 지배 속에서 신음하던 백성들에게 용기를 부어넣었다, 고 평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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