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영의 책고집
최준영 지음 / 답(도서출판) / 2015년 6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거리의 인문학자라 불리는 최준영이 책에 관해 쓴 글을 모은 것이다. 다양한 각도로 책을 읽고, 읽은 후의 생각들을 책의 소개와 함께 하고 있는데, 그 내용들이 그저 단순한 책소개로 그치거나 저자의 감상 수준에 그치는 게 아니다.

 

최준영이 쓴 글마다 말미에 참고한 작품들이라며 책 목록을 적어놓았는데, 그것을 살펴보면서 내가 읽은 것이 혹시 있는지, 그래서 읽었다면 나는 왜 그것을 똑 같은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들을 건저 올리지 못했는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다시 그 언급된 책을 꺼내들고 해당 페이지를 다시 읽으면서 저자가 건저올린 생각을 다시 한번 음미해볼 수 밖에 없었다. 또한 그런 나의 독서가 부족한 듯하여 저자가 소개해준 책들 중 읽지 못한 것을 새로 읽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 책은 읽은 책을 다시 읽게 하는 책이며 또한 이 책은 내가 미처 읽지 못한 책을 읽어보게 만드는 책이다.

 

읽은 책을 다시 읽게 하는 책

 

고통을 통해 성장하라, 맹목적인 긍정은 경계하라.”(91쪽 이하)를 예로 들어보자,.

 

이 부분에 등장하는 책들은 다음과 같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루이스 캐럴

<결핍을 즐겨라> 최준영

<맹자> 맹자

<신화의 힘> 조셉 캠벨

<스피노자 - 책 제목 밝히지 않음>

<긍정의 배반> 바버라 에런라이크

 

그리고 그 글이 끝난 다음에 참고한 책, 읽어볼만한 책으로 다음과 같은 책을 소개해 놓았다.

 

<결핍을 즐겨라> 최준영.

<아프니까 청춘이다> 김난도

<신화의 힘> 조셉 캠벨

<철학하라> 황광우

<긍정의 배반> 바버라 에런라이크

 

이중에서 내가 읽었던 책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맹자>, <신화의 힘>, <긍정의 배반>이다.

 

흐르는 물이란 구덩이를 채우지 않으면 가지 않는다

 

그런데 <맹자>, 읽긴 했지만 여기에 등장하는 구절은 처음 보는 듯하다.

 

여기 이런 말이 등장한다.

<“흐르는 물이란 구덩이를 채우지 않으면 가지 않는다.”

황광우의 <철학하라>에서 건진 맹자의 말입니다. 흐르는 물 앞에 구정이가 있으면 물은 일단 구덩이를 채웁니다. 물이 차기 전에는 흐름을 멈출 수밖에 없고, 구덩이를 가득 채운 뒤라야 비로소 흐릅니다. 단순한 자연의 이치에서 맹자는 인간의 덕목을 이끌어 냅니다. 무릇 군자는 학문과 덕행을 차근차근 쌓아가야 합니다. 역경과 시련 앞에서 고통스러워하며 갈피를 잡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들에게는 기다림과 인내의 의미를 알려주는 말이기도 합니다.>(93)

 

흐르는 물이란 구덩이를 채우지 않으면 가지 않는다.”

맹자가 저런 말을 했던가? 맹자의 어느 부분에 저런 말이 있었나?

맹자를 읽기는 했지만, 어디 모든 구절을 다 기억하고 있지는 않으니, 부득히 다시 맹자를 열어 보았다,

 

그 말은 맹자 진심장구상- 24에 등장하는 말이었다.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공자께서 동산에 올라가셔서는 노 나라를 작다고 여기셨고, 태산에 올라가셔서는 천하를 작다고 여기셨다. 그러므로 바다를 보는 사람은 물이야기하기를 어려워하고, 성인의 문에 노는 사람은 말하기를 어려워한다. 물을 관찰하는 데 방법이 있으니 반드시 그 물결을 봐야 한다. 해와 달은 밝은 빛을 지니고 있어 작은 틈바구니에까지도 반드시 다 비친다.

흐르는 물이란 구덩이를 채우지 않으면 가지 않는다. 군자가 도에 뜻을 두었어도 환하게 몸이 드러나지 않으면 도에 나아가지 않는다.>

 

流水之爲物也, 不盈科不行; 君子之志於道也, 不成章不達.”

 

이 부분을 이기동은 다음과 같이 해설해 놓고 있다.

<물이 구덩이가 있을 때에는 그 구덩이를 다 채우고 난 뒤에 다시 흘러가는 것처럼, 진리를 추구하는 데 있어서도, 머리로써 이해하며 곧바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진리가 몸에서 우러나와 밖으로 빛을 발하게 되는 단계에 이르지 아니하면 도달할 수 없는 것이다.>(맹자강설, 이기동, 613)

 

이렇게 이 책을 읽으면서 전에 읽었던 맹자를 다시한번 읽고 새기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그런 교훈을 여기 이 책에서는 이렇게 변용하여 사용한다.

<생의 시련 혹은 역경이란 흐르는 물이 언젠가는 반드시 만나게 마련인 구덩이에 다름 아니다. 흐르는 물에게 구덩이란 채워야 할 곳이지 흐름을 멈추어야 할 파국의 의미는 아닌 것이다. 겪어야 할 것은 겪어야,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다.> (93-94)

 

그런 다음에 글은 자연스레 고통의 문제로 넘어간다.

<고통은 피하면 피할수록 더 큰 고통으로 되돌아온다. 차라리 직접 대면하는 것, 그게 바로 고통을 이기는 방법이다. 얼핏 하나마나한 이야기처럼 들리거나 빤한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겠다. 그렇기야 하겠는가. 모든 고통을 비판없이 무조건 긍정하자는 말이 아니다. 지나친 긍정은 외려 근거없는 낙관주의로 흐를 수 있으니 그 역시 위험하다.>(95)

 

고통에서 교훈을 얻는다는 맹목적 긍정을 경계하라

 

그래서 그 다음 등장하는 책은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긍정의 배반>이다.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그 책에서 맹목적 긍정을 경계하라고 지적한다.

 

이렇게 이 글에서 저자는 고통을 통해 인간은 성장하지만, 그렇다고 그 고통을 마냥 긍정적으로 볼 게 아니라, 에런라이크의 말을 들어 맹목적인 긍정을 경계하라고 말한다.

 

여기 이 글에서 맹자의 그 말을 우리 현실에서 어떻게 적용하는가, 맹자의 말이 다만 책 속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쓰이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더 나아가 그런 고통과의 직면이 다만 우리에게 자기 위안이 아니라, 또한 고통을 통해 어떤 교훈을 얻었다는 식의 긍정도 또한 취할 자세가 아니라는 것, 그러한 것들이 바로 책들에서 얻을 수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에게 책은 살기 위해서”(57) 읽는 것이다.

 

책을 재음미하며 또한 새로운 책 기대하게 되다.

 

그렇게 내가 읽었던 책들이 새롭게 나타나는 것을 보면서, 다시한번 그 책들을 살펴보게 되는 것에 이 책의 가치가 있는 것이며, 또한 저자가 소개해 준 책 중 내가 미처 읽지 못한 책들에 대한 기대를 하게 만드는 것, 역시 이 책에서 맛보는 즐거움이다.

 

읽었던 책에 대하여는 재음미하는 기쁨과, 또 새로 소개된 책을 읽을 기대가 함께 부풀어오르게 만드는 것, 그런 기쁨이 바로 책 읽는 재미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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