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정 - 정명공주와 광해군의 정치 기술
박찬영 지음 / 리베르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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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에 화정(華政)’의 불씨를

 

<정명공주는 천수를 누리고 83세에 세상을 떴다. 정명은 늙어서도 공주였고 죽을 때도 공주였다. 얼굴에서 발하는 존귀함은 죽어서도 다르지 않았다, 숙종은 정명공주가 죽어서도 예우를 다했다. 실록에도 숙종이 정명공주의 죽음을 애도했다는 대목이 따로 나올 정도다.>(315)

 

정명공주!

선조의 딸로 태어나 숙종대에 이르러 죽었으니, 조선임금 선조, 광해군, 인조를 거쳐 숙종에 이르기까지 6명의 임금을 겪었다. 때로는 영화를 누리며 때로는 고난을 당하며 살았는데, 그 생을 초지일관 지탱하고 있던 것은 바로 화정(華政)’이란 두 글자였다.

 

그 두 글자, ‘화정이 곧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다.

 

그래서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화정이란 두 글자가 어떻게 정명공주의 삶을 이끌고 갔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화정(華政)’의 의미

 

저자는 화정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화정(華政)에서 화()는 빛 또는 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은 다스린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화정은 빛나는 다스림혹은 화려한 정치로 해석할 수 있다. 각각의 해석은 다른 느낌을 준다. ‘화려한 정치에는 일신의 영달을 추구하는 모습이 담겨있고, ‘빛나는 다스림에는 자기 수양과 애민(愛民)의 의미가 담겨있다.> (6)

 

그러한 화정의 뜻이 정명공주의 인생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을까?

 

정명의 행실

 

정명의 행실을 이 책에서 구체적으로 그리고 있지 않다. 그러나 막내아들 홍만화에게 내린 글이 있는데, 그 글을 통해 짐작해 볼 수 있다.

 

<내가 원하건대 너희가 다른 사람의 허물을 들었을 때 마치 부모의 이름을 들었을 때처럼 귀로만 듣고 입으로는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의 장점과 단점을 입에 올리고 정치와 법령을 망령되이 시비하는 것을 나는 가장 싫어한다. 내 자손들이 차라리 죽을지언정 경박하게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말이 들리지 않기를 바란다.> (7, 193)

 

정명의 처세술

 

정명의 처세술은 대체로 결정적인 순간에 침묵하는 것이었다. 고난의 시기에도, 부귀영화를 누리는 시기에도 침묵했다.(193)

 

정명은 주변의 입방아에 시시비비를 가리려고 섣불리 대응하다가 오히려 시비에 휘말릴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런 경우에는 문제가 자동으로 해결되거나 해소되었다.

 

정명은 평소 겸손한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존귀함을 잃지 않아 따르는 무리가 많았다.

 

정명은 스스로 움직여서 표적이 되기보다 다른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고도의 빛나는 다스림을 체득했다. 안달복달하는게 아니라 스스로 빛을 발하는데 능숙했다.

 

정명공주의 일생

 

저자는 다음과 같이 정명공주의 일생을 간략하게 정리한다.

 

광해군, 인목대비, 영창대군 등의 그늘에 가려진 인물

폐서인되어 죽어 있다 다시 숨을 쉰 공주

당대 최고의 여성 서예가로 평가받는 인물

역대 여섯 왕과 함께 한 최장수 공주. (6)

 

, 소현세자~

 

저자는 정명공주의 화정을 가지고 흥미로운 상상을 해 본다,

바로 소현세자의 안타까운 죽음과 관련해서다.

소현의 자리에 정명이 있었더라면, 더 정확히 말해서 정명의 화정을 소현이 가졌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자신의 속을 감추고 혼자 꿈을 키웠을 것이다. 꿈은 자리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을 때에 이루어진다. 정명공주는 상대의 치명적인 약점이나 상대가 싫어하는 점을 거론하는 것을 금기로 여겼다. 소현세자가 정명공주의 조언을 들을 수 있었다면 자연스럽게 인조에 이어 왕위에 올랐을지도 모른다.

소현세자는 자기의 생각을 드러내어 인조를 분노하게 했다. 섣불리 움직이면 표적이 된다. 뜻을 같이하는 사람과 함께 하고 있을 때 움직여야 한다. 그때조차도 자신을 노출하면 안된다. 언제 동지가 적이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권력의 세계에서는 아버지조차 믿을 수 없다. 소현세자는 결국 인조의 표적이 되어 이 세상과 결별하게 되었다. >(273-274)

 

소현세자에 대한 그런 아쉬움을 저자는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서양문물에 눈뜬 소현세자가 왕위를 이어받아 일본에 앞서 서양문물을 도입했다면 어땠을까? 조선의 근대화가 100년은 더 빨라지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구한말에 외세에 휘둘려 나라를 빼앗기는 일도 없었을지도 모른다.>(273)

   

역사를 보는 시각의 새로움

 

세상에 선과 악의 싸움은 드물다. 선과 선의 싸움이 대부분이다.

저자는 선과 선의 싸움에 대하여 말하기를 우리는 악을 경계하듯이 선도 경계하여야 한다. 서로 선이라고 말할 때 선들은 충돌한다.”(67)며 이런 시각을 가지고 우리 역사를 읽어낸다.

 

대표적인 예가 황윤길과 김성일, 김상헌과 최명길에게서 선과 선의 갈등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또 이런 진술은 어떠한가?

<많은 사람이 이이첨은 원래부터 악의 축이었다고 생각한다. 아니다. 선이 선을 밀어내자 밀려난 선이 악으로 변했다고 보는 게 더 타당하다.>(103)

 

이 시대에 화정의 불씨를

 

그렇게 역사를 바라보는 저자는 그 해결책으로 바로 화정을 거론한다.

 

<조선 사회에서 선과 선이 부딪혔을 때에는 어느 한쪽이 결국은 죽어야 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악으로 변신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 악순환을 깨는 방법이 있다. 한 걸음 물러나 상대가 움직일 여지를 주는 빛나는 다스림이다.>(103)

 

그렇게 저자는 정명공주의 화정을 가지고 역사를 읽어낸다. 그러니 정명공주의 화정은 그 자신만의 인생철학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 저자를 통해 역사를 읽어내는 철학으로, 더 나아가서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로 작동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저자는 정명공주의 인생을 그 주변의 역사를 서술하는 가운데 지금 이 시대에 화정의 불씨를 살려내려고 이 책을 썼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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