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미생 김파전의 파전행전 - 파트타임 전도사의 리얼 행복 일기
김정주.정새나 지음, 이현숙 그림 / 선율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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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 삶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기억해야 할 문장

 

이 책을 요약하라면이 문장을 꼽을 것이다.

 

<참 끔찍한 시간들이었는데 이렇게 웃으면서 회상할 수 있다니, 돌아보니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결혼해서 여전히 만만치 않은 현재를 살고 있는 지금, 역시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지만 훗날 또 이렇게 웃으며 얘기할 때가 오겠죠? 그때를 위한 이때이길 소망합니다.>(71)

 

저자가 결혼 당시의 일을 회상하는 글에 저자의 부인인 정새나가 덧붙인 글이다. 어려운 시절을 보내고 있는 저자 부부에게 하루빨리 그렇게 웃으면서 이야기 할 때가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읽었다.

 

저자의 이런 마음에 높은 점수를

 

수많은 책들이 독자들의 눈앞에 등장한다. 이 책은 교회의 전도사로 일하고 있는 저자가 살아가면서 느낀 삶의 애환을 기록한 책이다. 그럼 저자는 왜 그런 애환을 책으로 발간한 것인가?

저자의 이렇게 밝히고 있다.

 

<이 책은 나의 약함에 대한 이야기이자 우리의 약함에 대한 이야기이다.

완생이 아닌 미생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러기에 나의 이 못나고 찌질한 이야기를 통해 단 한사람이라도 좋으니 그 마음에 따스함과 용기를 얻게 된다면 나의 글쓰기가 헛되지 않을 것이다.>(9)

 

지금도 저자와 같은 상황에서 힘들게 사역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 마음에 따스함과 용기를 주기 위하여 썼다는 그 마음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저자가 땅에서 얻은 깨달음

 

저자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깨달은 것이 많이 있다.

교회 안에서는 보지 못했던 사실들 - 교회 밖에서 살아가는 신도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을 알지 못했는데, 저자는 바깥 세상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깨닫게 된다.

 

저자가 얻어낸 그런 깨달음은 실상 모든 목회자들이 지녀야 할 것이다.

그래서 교회의 강단에서 뜬 구름 잡는 고상하고 우아한 이야기만 할 게 아니라, 살아가는데 필요한 이야기, 땅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하늘의 양식을 시시때때로 공급해 주기 위해서는 이러한 깨달음이 모든 목회자의 기본 인식이 되기를....

 

이런 생각, 꼭 필요하다. 시각의 전환이다.

 

<극한의 일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걸까?> (38)

 

<교회 안에서만 머물러서는 절대로 알 수 없는 다른 영역의 신앙과 그 사람들의 마음을 알게 되는 것이었다.> (40)

 

<성도들이 삶의 현장에서 겪는 현실은 .....지뢰밭 같아서 무수한 변수들이 존재해 교리의 칼로 딱딱 잘라서 이것은 이래서 잘 못되고 저것은 저래서 잘 못되었다고 판단할 수가 없는 것이다.> (95)

 

<돈 독 올라서 주말에도 출근하는 게 아니라 직장의 구조가 그러하면 어쩔 수 없어 출근해야 하는 경우가 정말 많다.

그건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섬기는 게 아니다. 타협도 아니다. 실제로 그런 구조를 거스르면 직장에서 짤리게 되는데 그런 누가 책임진단 말인가?> (95)

 

이 땅에서 살아가는 것

 

이 땅에서 살아가는 것이 결코 신선놀음처럼 멋진 것이 아니다. 먹고 살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려야 하는지, 그런 현실인식이 모든 목회자에게 필요한데, 저자는 그것을 몸소 몸으로 부딪치며 배운다.

 

<교회에서는 입으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어도, 일터에서는 입이 아닌 삶으로 신앙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에 정말 피 튀긴다.>

 

<그곳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는커녕 본인의 신앙 하나 지키는 것도 힘겨운 것이 현실이다.> (96)

 

그래서 저자는 그렇게 힘들게 살아가는 신도들에 대한 시각이 바뀐다.

 

<이 모든 과정에서 한 가지 분명하게 배운 게 있다면 함부로 말지 않기였다. 그 속으로 들어가서 경험해보니 왜 못하냐?”고 말할 수 없었다. 오히려 정말 힘드시죠?”라는 위로가 먼저 나왔고, 그 후에는 그 삶의 속사정들을 품은 기도가 나왔다.> (97)

 

이 책, 삶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

 

저자는 이 책에서 말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말한다.

여기서 말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말이다.

교회의 강단에서 흘러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은 그렇게 삶으로 전해져야 한다.

저자는 이 책으로 다른 많은 목회자들이 한 그런 설교보다도 더 훌륭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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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감정을 내가 엿볼 수 있다면
와키 교코 지음, 박주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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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있다 한들 행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인생의 고뇌 대부분이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는 저자의 문제의식으로부터 이 책은 시작된다.

그렇다면 인간관계에서 왜 스트레스는 발생하는 것일까?

다름 아니라. 가치관 다루는 법에 있다. (17)

 

사람은 자기 자신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가치관이 무시당하면 모욕감과 함께 상대에게 분노와 슬픔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느낀다, 그래서 나름의 반격으로 상대를 무시하고, 이것은 또상대의 분노와 슬픔으로 이어지고, 이러한 악순환에 빠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24)

 

그래서, 지금 당신이 맺고 있는 인간관계에서 그런 악순환이 발생된다면 하루하루가 고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것을 방지하기 위한 방법을 제시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방법의 기본 전제

 

저자가 이 책에서 제시하는 방법의 기본전제는 바로 사물을 보는 관점을 바꿔보자는 것이다.

 

사물을 보는 관점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가 있다.

자신을 중심으로 보는 자기 시점

상대방의 입장에서 보는 상대 시점

전체를 위아래, 좌우로 보는 조망 시점

 

<자신의 컨디션이 좋거나 주변 환경이 좋을 때에는 이 세 가지 시점을 균형 있게 다룰 수 있지만, 강도 높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만큼 시야가 좁아지기 때문에 자기시점으로밖에 볼 수 없다.> (35)

 

그러니, 그런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에 지금은 평소보다 시점이 좋아진 상태라고 스스로 의식한다면, 즉 시점을 바꿀 수 있다면 그런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구체적이다.

 

그럼 구체적으로 사례를 살펴보기로 하자.

직장이나 사회에서 대하기 거북한 사람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다 .

그런 경우, 어떻게 대할 것인가?

 

다양한 사람과 원만하게 지낼 줄 알면 기분이 좋고 그만큼 마음도 편해져 스트레스 없는 날들을 보낼 수 있다. 같이 지내기 껄끄러운 사람들과 어떻게 원만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하여 저자는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한다.

 

그런데 저자는 무조건 방안을 제시하는 대신에, 우리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 가를 먼저 이론적으로 고찰한다.

 

<뇌는 모르는 상태를 싫어하기 때문에 무슨 질문 하나 던져 놓으면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하여 있는 힘껏 작동한다. 입 밖으로 내지 않고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는 질문에도 똑같이 움직인다. 스스로 의식하지 않더라도 뇌는 끊임없이 대답을 찾는다.> (54)

 

<그러므로 이사람 정말 질색이야라고 생각한 뒤에 어디가 그렇게 싫은거지?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라고 생각하게 되면 그 사람의 싫은 점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온다. 이것이 바로 지적하면 할수록 못마땅한 점이 늘어나는 이유다.> (55)

 

그런 경우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

이 책에서 저자는 이런 해결방안을 제시한다.

 

<일단 그 사람에 대해 싫다고 생각하는 점을 모두 말해보라고 하는 것이다. 더 이상 없습니다. 라는 말이 나눌 때까지그 밖에 다른 점은요?”라고 집요하게 묻는다.>

 

이렇게 싫은 점을 모두 쏟아좋게 한 다음에 저자는 회심의 일격을 마련해 놓고 있다.

아무리 싫어도 좋은 점이 한 가지 정도는 있지 않을까요?”(55)

 

그렇게 저자가 제시한 방법을 듣고보니, 나도 그런 실제적인 경험이 있는 것 같다.

나쁜 점을 모두 들쳐내고 나니, 거기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좋은 점이 하나 보였다. 그런 실제경험을 떠올려보니, 저자의 생각과 방법이 뜬 구름 잡은 이론적에 치우친 것이 아니라, 그체적이고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이 책은 실제적이고 또한 구체적이다.

 

그게 바로 <의식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을 머릿속에서 모조리 다 끄집어냄으로써 뇌의 검색을 강제로 종료시키는 방법>이다. (55)

 

이 책은?

 

그냥 읽고 넘어가는 책이 있는가 하면, 책을 읽고 나서 보존하고 싶은 책이 있다.

읽고 또 읽고 싶어지는 책이라는 말이다.

 

왜 그런가? 그만큼 이 책이 실제 삶에 도움이 된다는 말이다.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방법 중에 각장마다 exercise 항목은 그런 효용성의 면에서 아주 탁월하다. 그 장에서 저자가 이론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바를 실제적으로 실행해 볼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그것은 저자가 이런 생각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독자의 행동을 바꿀 수 있도록 만들자.

아무리 훌륭한 지식을 많이 알고 있다 한들 실행하지 않으면 무슨 변화가 일어나겠는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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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하나님 설계의 비밀 하나님 설계의 비밀
티머시 R. 제닝스 지음, 윤종석 옮김 / 도서출판CUP(씨유피)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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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변호함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기존의 생각에 쪄들어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충격을 주는 내용으로 가득 차있다.

 

<예수님을 제시하는 우리의 방식 때문에 아이들이 그분 곁에 오거나 그분을 알려는 마음이 없어진다면, 그 분은 기뻐하실까?>(21)

 

이 말에 충격을 우선 받았다. 이런 말을 다른 곳에서 들어본 적이 없다.

 

맞다. 교리적인 것에 매몰된 교회에서 어린아이들에게 가르치는 천국과 지옥이야기, 그게 엄격하게 생각한다면 겁을 먹게 만드는 이야기 아니겠는가?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자라는 아이의 머릿속에 하나님은 무서운 분으로 인식될 것이다.

 

그러한 생각, 못해본지라, 이 책의 도입부터 충격이었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자란 성도, 자연스럽게 하나님은 무서운 분으로, 혹시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행동을 할 경우, 벼락이라도 맞을까 두려운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갈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믿음생활하는 신도,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어떻게 대답할까?

<당신은 하나님이 무섭게 느껴져 힘들었던 적이 있는가?> (41)

 

그러한 질문에 대답하는 것, 그런 대답을 하기 위한 생각, 하게 해주는 책이라 일단 가치가 있다.

 

하나님에 대한 인식 변화

 

그래서 이런 진술이 마음에 와 닿는다.

 

<우리의 하나님관이 시대의 사회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25)

 

<건강한 균형을 유지하려면 성경고가 과학과 우리의 경험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그래야 다양한 하나님관을 구분할 수 있고, 각각의 관점이 우리의 정신과 신체와 관계의 건강에 초래하는 확연한 차이를 예증할 수 있다.> (25)

 

흔히들, 천사들이 졸졸 따라다니며 우리가 짓는 모든 죄를 천국에 꼼꼼히 적는다고 배운다.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의 죄를 따진다는 것이다. (204)

그게 기존의 교회에서 말하는 교리적 차원의 발언이다.

그렇게 왜곡된 하나님관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러나,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자전거 경주 선수들이 생각난다. 경주 내내 자동차 한 대씩이 각 팀을 따라 다닌다. 혹시 누가 넘어지면 팀원들이 재빨리 거들어 상처를 싸매주고 고장난 자전거를 고쳐 그를 경주에 복귀시킨다.>(206)

 

그러니 하나님은 기존의 교회에서 말하는 것처럼, 뒤를 따라다니며 짓는 죄를 적는 감시자로서의 역할이 아니라, 보호자로서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어서 말한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보내주신 요원들도 평생 우리를 따라다닌다. 하지만 목적이 무엇인가? 항상 우리의 상처를 싸매주고 고장난 삶을 고쳐 우리를 영생의 길로 복귀시키는 것이다.>(206)

 

그래서 실제 생활에서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영적인 싸움을 한다고 가르침을 받는다. 그러나 그 영적 싸움이 구체적으로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개는 뜬 구름을 잡는 생각을 한다.

눈으로 보이지 않는 마귀 사탄과의 싸움을 생각하지, 실제 생활에서 구체적으로 뭘 해야 하는지를 생각지 못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성경은 우리가 지금 전투중이라고 한다. ..... 그리스도와 사탄의 싸움이 벌어지는 전쟁터는 우리의 생각 속이다.> (26)

 

<하나님은 우리 각자를 그분의 형상대로 지으셨고, 각자에게 두뇌를 주셨으며, 각자 안에 영으로 거하신다.> (27)

 

그러니, 우리의 생각을 하나님이 원하시는대로 만드는 것이 바로 그런 영적 전투인 것이다.

예를 들어 본다면, 우리가 염려하고 걱정하는 이유가 무엇안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기 보다는 자기를 앞세우는데 그런 염려과 걱정이 생긴다. 따라서 말씀 따로 생활 따로의 기독교인이 양산되는 것이다.

 

그런 이유를 저자는 단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염려와 두려움의 가장 큰 원인중 하나는 삶을 내 뜻대로 풀리게 하려는데 있다.> (87)

 

로마서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이 책의 장점

 

저자는 이러한 내용들을 그저 주장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정신과 의사로써 상담했던 많은 사례들을 주장의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그 뿐 아니라, 성경에도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성경의 행간에 숨어있는 내용을 밝히고 있다. 따라서 그런 저자의 주장과 근거를 이 책을 통하여 차분히 읽어본다면, 지금껏 알아온 하나님이 아니라, 새로운 모습의 하나님을 발견하게 될 것이고, 더 나아가서 주어진 삶의 결이 달라지는 것을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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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톈의 이것이 바로 인문학이다 - 천재 동양 철학자들의 생각의 향연을 듣다
이중텐 지음, 이지연 옮김 / 보아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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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 제자(先秦諸子)에게서 인문학을 배우다 .

 

먼저 제목부터 짚어보자.

이 책 제목은 <이중텐의 이것이 바로 인문학이다>이다.

그러니까, 제목에 의한다면 이중텐이 인문학에 대하여 쓴 책이라는 것이다.

제목만 본다면 이 책이 마치 인문학이 어떤 것이라는 등, 인문학에 대하여 쓴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아무리 읽어봐도 그 안에 인문학이라는 말은 거론하지는 않는다.

대신 이중텐은 선진제가들의 사상을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중텐은 이 책으로 무엇을 말하려고 했을까?

그래서 원제를 찾아보니, <先秦諸子百家爭鳴>이었다.

그러니, 이중텐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선진의 여러 학자들이 말한 것을 정리해보자는 것이다.

 

그러면 이런 제목이 붙은 것은?

아마 한국어로 번역하면서, 편집자가 그렇게 고쳤을 것이다.

아무리 이중텐이 유명하다할지라도 선진시대의 학자들이라는 제목으로는 독자들의 눈길을 끌지 못할 터이니 '인문학'이라는 말을 붙인 것은 아닐까? .

 

그렇다면 이 책의 제목을 이렇게 바꾼 것은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는 것일까?

이중텐이 말하는 것이 전혀 그런 것이 아닌데, 그저 제목만 유행어를 따라한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이 책을 읽었다,

이중텐이 선진시대의 제가(諸家 혹은 제자 諸子 - 여러 학자들)의 사상을 논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인문학이라는 범주에 들어간다면, 그래서 인문학이 무엇인지를 보며주는 것이라면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도 하며 읽었다.

 

과연 그럴까?

 

이 책은 이중텐의 강의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인데, 그는 일단 공자로부터 시작한다. 공자로부터 시작하여 제자 중 묵가, 도가, 법가와의 논쟁, 즉 선진 백가쟁명의 3대 논쟁을 설명한다.

이를 요약하기는 복잡하니, 건너뛰자.

 

그런 다음에 저자는 다음과 같은 ’, 즉 궁금한 점을 설명한다.

 

중화민족은 어떻게 이처럼 수많은 위대한 사상가를 배출할 수 있었는가?

그들은 어떤 이유로 춘추전국시대에 집중적으로 출현했는가?

그런 사상이 왜 이처럼 오랜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강인한 생명력과 영원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가?

 

위의 세 가지 의문점을 설명한 다음에는 선진의 사상가들의 사상을 이 시점에 살려보자 주장한다. 

 

선진 제자의 사상은 인류 문명의 값진 유산이니 당연히 계승해야 하는데, 문제는 방법이다.

이는 말은 쉽지만 실제로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지 않은가? 다른 사상서를 읽어보면, 대개 이런 실천 부분은 언급하지 않는다. 그런 부분은 독자들에게 맡길뿐, 사상을 실천, 계승하자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 책에서 저자는 사상 계승의 예로 논어의 오직 여자와 소인은 다루기가 어렵다라는 구절을 든다.

 

이를 어떻게 실천, 계승할 수 있을까?

저자는 이를 구체적 계승과 추상적 계승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자세한 내용은 506쪽 이하 참조)

 

이렇게 저자는 제자의 사상을 공자로부터 시작하여, 분류 분석하고, 더 나아가 통합하며, 그것을 계승하고자 한다.

 

이 책, 바로 인문학이다.

 

그러한 저자의 생각을 읽던 끝에 이 책의 제목을 <이것이 바로 인문학이다>라고 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인문학의 정의에 대하여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합당한 것은 특별히 어떠한 한계에 가두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다. 인문학 자체가 통섭의 학문이지 않는가? 그래서 어떤 특정한 분야 예컨대 문 사 철 만이 인문학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인문학의 본질이 아니다. 따라서 이 책에서 이중텐이 비록 인문학이라는 말 한마디 언급하지 않았지만, 생각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시대에 맞게, 또는 시대를 초월하는 지혜를 집대성한 선진시대 제가들의 생각을 드러내 보인 이 책, 인문학이라는 범주에 넣어도 전혀 손색이 없다. 아니, 오히려 그런 사상들을 통하여 인생의 진정한 모습을 찾아가도록 하는 이정표를 제시하였기에, 그것이 바로 인문학이다 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의 펼쳐보인 제자들의 사상을 살펴보면서 떠오르는 것은 지금 이 시대가 어떤 시대인가 하는 점이었다. 제자백가의 사상이 분출하던 시기, 2500여 년 전 춘추 전국 시대처럼 그러한 시간이 되돌아 온 것 같은 이 시대에 생각의 패러다임이 전환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한 시점에 오히려 공자 등 제자의 사상들을 이 시대에 대안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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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용이 있다
페르난도 레온 데 아라노아 지음, 김유경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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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도처에 용이 살고 있다

 

보았다, 용을.

여기 용이 있다고 해서 과연 용이 있나 했더니, 정말 용이 있었다.

용이 무려 113 마리다. (그런데 용이라 하지만 짐승을 세는 단위인 마리라 부르기 미안할 정도로, 훌륭한 용이다.)

 

어떤 용인가?

 

용이 있다하나, 용은 이야기 속에 들어있는 것으로 존재를 나타내지는 않는다.

그러니 책 제목에 이끌려서 어디 이야기 속에 용이 있나, 하고 찾는 것은 각주구검 격이다.

각주구검(刻舟求劍)은 잃어버린 칼을 찾는다고 벌인 소동이지만, 여기에서는 결코 잃어버린 이 아니다. 원래 보이지 않는 용이니, 용을 찾는다고 여기저기 헤매보아야 보일 리가 없는 용이다.

 

용을 찾으려면 이야기의 겉껍질만 보아서는 찾지 못한다. 그렇게 읽고나서 용이 없다고 말하면 - 아니 용이 - 가 웃을 일이다.

 

이야기 속으로, 속으로 깊숙하게 들어가야 비로소 거기 용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번 들어가 보자.

 

내 말을 다 알아 들었나요? 그러면 이제 침묵.

 

42쪽의 <침묵>이다.

그는 종종 단순한 것들이 여러 모양을 가질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여기서 그는이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 그저 누군가 장삼이사 정도라 생각하면 될 것이다.

 

저자는 침묵에 관하여는 전문가다. 그가 열거하는 침묵의 종류를 살펴보자.

사랑하는 사람들의 침묵이 있다.

여기에는 애정이 들어있는데, 그 애정이 결혼생활을 하다보면 어느새 변하게 된다.

그래서 애정으로 충만하던 침묵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애정이 들어있지 않은 침묵으로 변한다는 것, 가정심리학에서 볼 수 있는 통찰이다.

 

수다스러운 사람들의 침묵.

이것은 두배의 가치가 있다. 이것은 사회학에서 고려할 침묵이다.

 

비난하는 듯한 침묵과 만장일치에서 나오는 침묵도 있다.

요즘 소통이 문제가 되고 있는데, 이러한 통찰은 소통의 문제에서 필히 짚고 넘어가야할 주제이기 때문에, 이 작품의 가치가 돋보인다.

 

저자는 또 하나의 침묵을 말한다.

 

뭐니뭐니 해도 그가 가장 좋아하는 침묵은 바로 이야기 속의 침묵이다. 이 침묵은 늘 결정적인 마지막 직후에 가차없이 흐른다.”(43)

 

이 대목에서 알아챘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가 누구인지를.

는 바로 저자다.

저자는 그래서 작품 모든 작품마다 - 에서 마지막 말에, 자기의 마음을 속시원하게 토로한 다음 침묵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 말은 불필요한 췌언을 하지 않고 끝내겠다는 것이다. 아니 독자들이 자기의 뜻을 알아주었다고 생각되는 순간에 끝을 내겠다, 그러니 이라는 말을 하지 않더라도 독자들이 알아주시라, 는 말이다.

 

내 심장도 두 개인가? 아니 세 개?

 

<두 개의 심장>(13)을 읽고 나서는 나도 거기에 몇 마디 덧붙이고 싶어졌다.

사람에게 심장은 두 개다. 비록 보이는 심장은 하나일지라도 보이지 않는 심장은 분명 두 개다. 아니 두 개가 아니라, 두 개 이상이다.

 

저자는 작품에서 사랑을 위한 심장미움을 위한 심장’, 이렇게 두 개가 있다 했지만, 어디 심장이 단지 두 개뿐일까? 작품 속의 주인공은 심장이 두 개 있어서, 감정도 둘로 나눌 수 있다 했는데, 그것은 저자가 한국인이 아니어서 그렇다.

우리말에 만감이 교차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만감’(萬感)이란 만개의 감정이 아니라, 사전적 의미로는 솟아오르는 온갖 느낌을 말한다.

그러니, 작가가 이 작품에서 사용한 논리대로라면, 심장이 온갖 느낌을 관장하려면 역부족이니 적어도 만 개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이런 논리는 농담 차원의 말이다. 인간에게 심장이 두 개만 있어도 힘들터인데, 만 개는 어찌 감당할 수 있을까?

 

저자는 그래서 작품 속에서 심장 둘 중에 하나를 떼어내도록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그렇다. 심장은 하나만 허용된 것이니, 다른 하나가 설령 있다면 떼어내야 한다. 그런 경우, 어떤 것을 떼어낼까?

 

작품 속에서 엘레나 부인이 한 것처럼, 남편의 심장 중에서 다른 여자를 향해 뛰고 있다는 심장을 떼어내라고 요청하는 그녀처럼, 자기에게 불필요한 것을 떼어낼 수만 있다면?

 

이 책 도처에 용이 있다.

 

그렇게 이 책의 여기저기 도처에서 용을 보았다. 인생도처 유청산이라더니, 여기 이 책의 도처에 용이 살고 있다.

그러니, 이 책을 읽는 독자들, 부디 용을 보기 바란다, 그래서 그 용이 어떻게 생겼는가, 어떻게 하늘로 올라가고 있는지를 똑바로 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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