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용이 있다
페르난도 레온 데 아라노아 지음, 김유경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8월
평점 :
품절


 

이 책 도처에 용이 살고 있다

 

보았다, 용을.

여기 용이 있다고 해서 과연 용이 있나 했더니, 정말 용이 있었다.

용이 무려 113 마리다. (그런데 용이라 하지만 짐승을 세는 단위인 마리라 부르기 미안할 정도로, 훌륭한 용이다.)

 

어떤 용인가?

 

용이 있다하나, 용은 이야기 속에 들어있는 것으로 존재를 나타내지는 않는다.

그러니 책 제목에 이끌려서 어디 이야기 속에 용이 있나, 하고 찾는 것은 각주구검 격이다.

각주구검(刻舟求劍)은 잃어버린 칼을 찾는다고 벌인 소동이지만, 여기에서는 결코 잃어버린 이 아니다. 원래 보이지 않는 용이니, 용을 찾는다고 여기저기 헤매보아야 보일 리가 없는 용이다.

 

용을 찾으려면 이야기의 겉껍질만 보아서는 찾지 못한다. 그렇게 읽고나서 용이 없다고 말하면 - 아니 용이 - 가 웃을 일이다.

 

이야기 속으로, 속으로 깊숙하게 들어가야 비로소 거기 용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번 들어가 보자.

 

내 말을 다 알아 들었나요? 그러면 이제 침묵.

 

42쪽의 <침묵>이다.

그는 종종 단순한 것들이 여러 모양을 가질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여기서 그는이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 그저 누군가 장삼이사 정도라 생각하면 될 것이다.

 

저자는 침묵에 관하여는 전문가다. 그가 열거하는 침묵의 종류를 살펴보자.

사랑하는 사람들의 침묵이 있다.

여기에는 애정이 들어있는데, 그 애정이 결혼생활을 하다보면 어느새 변하게 된다.

그래서 애정으로 충만하던 침묵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애정이 들어있지 않은 침묵으로 변한다는 것, 가정심리학에서 볼 수 있는 통찰이다.

 

수다스러운 사람들의 침묵.

이것은 두배의 가치가 있다. 이것은 사회학에서 고려할 침묵이다.

 

비난하는 듯한 침묵과 만장일치에서 나오는 침묵도 있다.

요즘 소통이 문제가 되고 있는데, 이러한 통찰은 소통의 문제에서 필히 짚고 넘어가야할 주제이기 때문에, 이 작품의 가치가 돋보인다.

 

저자는 또 하나의 침묵을 말한다.

 

뭐니뭐니 해도 그가 가장 좋아하는 침묵은 바로 이야기 속의 침묵이다. 이 침묵은 늘 결정적인 마지막 직후에 가차없이 흐른다.”(43)

 

이 대목에서 알아챘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가 누구인지를.

는 바로 저자다.

저자는 그래서 작품 모든 작품마다 - 에서 마지막 말에, 자기의 마음을 속시원하게 토로한 다음 침묵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 말은 불필요한 췌언을 하지 않고 끝내겠다는 것이다. 아니 독자들이 자기의 뜻을 알아주었다고 생각되는 순간에 끝을 내겠다, 그러니 이라는 말을 하지 않더라도 독자들이 알아주시라, 는 말이다.

 

내 심장도 두 개인가? 아니 세 개?

 

<두 개의 심장>(13)을 읽고 나서는 나도 거기에 몇 마디 덧붙이고 싶어졌다.

사람에게 심장은 두 개다. 비록 보이는 심장은 하나일지라도 보이지 않는 심장은 분명 두 개다. 아니 두 개가 아니라, 두 개 이상이다.

 

저자는 작품에서 사랑을 위한 심장미움을 위한 심장’, 이렇게 두 개가 있다 했지만, 어디 심장이 단지 두 개뿐일까? 작품 속의 주인공은 심장이 두 개 있어서, 감정도 둘로 나눌 수 있다 했는데, 그것은 저자가 한국인이 아니어서 그렇다.

우리말에 만감이 교차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만감’(萬感)이란 만개의 감정이 아니라, 사전적 의미로는 솟아오르는 온갖 느낌을 말한다.

그러니, 작가가 이 작품에서 사용한 논리대로라면, 심장이 온갖 느낌을 관장하려면 역부족이니 적어도 만 개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이런 논리는 농담 차원의 말이다. 인간에게 심장이 두 개만 있어도 힘들터인데, 만 개는 어찌 감당할 수 있을까?

 

저자는 그래서 작품 속에서 심장 둘 중에 하나를 떼어내도록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그렇다. 심장은 하나만 허용된 것이니, 다른 하나가 설령 있다면 떼어내야 한다. 그런 경우, 어떤 것을 떼어낼까?

 

작품 속에서 엘레나 부인이 한 것처럼, 남편의 심장 중에서 다른 여자를 향해 뛰고 있다는 심장을 떼어내라고 요청하는 그녀처럼, 자기에게 불필요한 것을 떼어낼 수만 있다면?

 

이 책 도처에 용이 있다.

 

그렇게 이 책의 여기저기 도처에서 용을 보았다. 인생도처 유청산이라더니, 여기 이 책의 도처에 용이 살고 있다.

그러니, 이 책을 읽는 독자들, 부디 용을 보기 바란다, 그래서 그 용이 어떻게 생겼는가, 어떻게 하늘로 올라가고 있는지를 똑바로 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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