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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시스의 반란
방주 지음 / 큰집 / 2024년 9월
평점 :
나르시스의 반란
이 소설을 읽는 내내, 힘들었다.
소설의 줄거리가 문제가 아니다. 등장인물들이 소설 속에서 각자의 역할을 다하느라 내뿜는 감정들을 소화하느라 무척 힘들었다. 그러니 그런 인물들과 시종일관 함께 해야 했던 작가는 어땠을까? 아마 이 소설을 마치고 나서 며칠간 앓아 누웠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나 인생만사가 그렇지 않은가, 보낼 사람 빨리 보내고, 새롭게 맞이하는 사람,,,,,
뭐, 그런 이야기가 떠오른다면, 너무 쉽게 말하는 게 아닌가도 싶다.
하여간 이 소설, 대단하다.
먼저 등장인물과 그들의 관계도 알아보자.
최장수 : 영원 바이오의 회장
이민나 (본명은 이순영, 11쪽) : 최장수의 정부, 최유진의 생모
최유진 : 최장수의 아들, 이 소설의 실질적 주인공
한준 : 최유진의 복제 인간, 최유진의 상대역
한태린 : 한준의 어머니
이예나 : 이민나의 복제인간
리사 : 누군지는 이 책 150쪽을 참조하시라.
영원바이오는 최유진의 주도하에 생명공학을 더욱 발전시켜, 다양한 기술로 복제 인간까지 가능하게 된다. 이 소설에서는 생명을 만드는 것 이외에는 거의 만능 수준인 회사로 설정되어 있다.
이 소설의 모티브
바로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나르시스가 이 소설의 모티브다.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나르시스는 자기 모습에 반하여 다른 데는 전혀 눈길을 돌리지 않고, 자신의 얼굴만 바라보다가 결국은 죽고 말았다. 그런 신화가 이 소설의 모티브가 되는데, 주인공인 최유진이 바로 그리스 신화의 나르시스 역을 맡았다.
소설의 첫부분에 거울 앞에 선 최유진이 등장한다
영화로 치자면 주인공의 얼굴이 첫화면에 클로즈업되는데, 거울 앞에 전신 나신을 드러낸 모습이다. 그리고 격렬하게 이어지는 역동적인 장면은 이 책 8쪽을 참조하시라, 19금이 분명하다.
그렇게 시작된 첫 장면에 이어, 그의 머릿속 생각들이 드러난다.
자신의 사랑을 이룰 방법을 생각한다.
나 자신과 사랑에 빠졌다면, 나 자신을 하나 더 만들면 되지 않는가? (10쪽)
이 생각이 소설을 일관되게 움직이는 모티브가 된다.
그래서 그는 복제인간을 만들기 시작한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복제 인간 중 가장 마음에 든 인물이 바로 한준이다.
그래서, 최유진은 한준의 사랑을 얻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한다.
한준 옆에 인물들을 하나씩 제거하고, 고립시킨 다음에 드디어 정체를 드러내며 접근한다.
거울 속에 비친 자기자신을 사랑했는데, 그 거울속 인물은 생명이 없으니, 이제 생명있는 존재가 자기의 사랑에 반응하기를 기대하며 접근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게 가능할까?
한준은 그렇게 접근한 최유진을 과연 사랑할까?
아니다. 사랑은커녕 이해조차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 제목이 『나르시스의 반란』이다. 복제인간인 주제에 똑같이 생긴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니, 최유진 입장에서는 반란이다. 그래서 나르시스의 반란이다.
그런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갖은 방법을 다 사용하는데, 그게 독자의 입장에서는 고역이다.
이때쯤이면 많은 독자들이 최유진을 응원하는 게 아니라, 한준을 응원하게끔 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원대한 계획, 노림수가 바로 이것이 아닐까?
소설이니 자세한 줄거리 소개는 금물이다, 더군다나 이 소설은 특히 그렇다.
그러나 이것, 하나는 말할 수 있다.
인간이 겪어야 할 모든 고난을 한준은 다 경험한다.
사랑 미움 등 감정적인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몸으로도 더 심한 고통을 겪는다.
동성으로부터의 치욕적인 능욕과 마음에도 없이 겉으로만 그런 척을 해야 하는 와신상담의 시간들도, 또한 궁형을 받는 것 같은 여성으로의 성전환까지. 이럴 때는 저자가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대체 왜 신은 이런 고난을 아무런 잘못없는 나에게 준다는 말인가요? 그런 원망이 줄기차게 한준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중간 이야기는 너무 길어서, 길어도 너무 길어서
생략한다. 한준이 나중에 만난 은인 같은 존재 리사에게 이렇게 말했듯이 말이다.
언젠가 너에겐 말해줄게. 하지만 ..... 너무 복잡해서, 지금은 말하기 힘들어. (178쪽)
그러니 그 중간 이야기, 전하기 너무 어려운 상황이 이어지는 그 이야기는, 독자 스스로 찾아 읽으시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다시, 이 책은?
저자의 결론, 읽어보자.
살아있으면 살아가야 한다. 행복해야 한다. 나도 행복하면서 주변도 행복할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 아마 그것이 살아있는 생명으로서의, 인간으로서의 본능일 것이다. (227쪽)
그게 인간의 본능이라고 한다.
해서 저자는 이 소설의 주인공 한준에게 이런 기쁨을 선사한다.
준은 영원히 잃을 것만 같았던 그 본능을 다시 찾은 기쁨으로 몸을 떨었다. (227쪽)
가능하다. 언젠가 우리 인간의 기술이 발달한다면, 이 책에 등장하는 복제 인간 창조는 물론, 수명도 얼마든지 가감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한 때, 만약 도덕과 윤리가 뒷받침하지 않으면?
그때는 이 소설같은 일이 분명 벌어질 것이다. 그런 때 저자와 같은 결론을 내릴 존재도 없을 터인데. 그건 여태껏 보지 못한 디스토피아가 될 것이다. 한 인간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에게도 그러할 것이다. 그런 디스토피아를 예견해 준 선지자적인 저자의 수고에 감사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