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정에 결혼했다 Endless 2
한지수 지음 / &(앤드)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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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정에 결혼했다,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살고 있다. 그 많은 사람들은 제각각 살아가면서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은? 역사가 되거나 소설이 된다.

독자들에게 더 의미있는 흔적은 대개 소설가가 수습한다. 사람들은 그저 살아가고 사라지지만, 소설가가 그 흔적을 수습해서, 이 세상에 남겨두는 것이다. 사람들의 평생은 그렇게 마무리된다.

소설가의 눈에, 소설가의 촉수에 잡힌 그 흔적들이 소설로 되는 것이다.

 

여기 모두 7, 그 안에는 몇 몇이 살고 있을까?

7 X 1이 아니다. 각 편마다 딸린 식구들이 또 몇 몇 있으니, 더 많다.

그런 사람들의 흔적을 여기에서 만나, 읽는다.

 

그들의 삶에 음악이 흐른다.

 

어떤 흔적?

그들의 삶에는 음악이 있다. 저자는 그들의 삶에 음악이 있다는 것을 포착한다.

 

<열대야에서 온 무지개>에선 첼로가 흐른다.

 

재석은 도립악단에서 첼로를 담당했다.(59)

틈만 나면 재석의 첼로 줄을 건드려서 낮고 음산한 소리가 울리게 했고, 그 순간을 틈타 최대한 모아 올린 젖가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는데, (60)

 

그리고 <배꼽의 기원>에서는 정지용의 <향수>가 흘러나온다.

 

당신은 늘 <향수>라는 노래를 연습하는 도중에 눈물을 글썽였다.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 가 나오는 부분에서 당신은 매번 숨을 멈추었다. (174)

 

그리고 <페르마타>애서는 고요한 쉼표가 흐른다. 쉬고, 좀 더 길게 쉬고....

 

또한 <나는 자정에 결혼했다> 에는 <전람회의 그림>이 카페에서 흐른다. (293) 전시장 근처에 있는 카페이니 그런 선곡 얼마나 안성맞춤인가.

 

정감이 가는 인물들

 

소설을 읽는 독자들에게 무엇보다 소설 속 인물들이 마음에 들어야 한다. 그래야 그 인물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페이지를 넘길 수 있다. 주인공 뒤를 정겨운 마음을 지니고 따라가게 되는 것이다.

 

여기 소설집에서 그런 인물들을 만난다.

 

<미란다 원칙>에서 화자인 와 나가 근무하는 복지관에 봉사활동을 하러 나온 녀석. 모 건설업체라는 조직의 중간보스다, 다른 말로 하면 조폭쯤 되겠다.

조폭이다 싶으니 눈 갈 게 없는 인물이겠는데, 이게 인물이다. 그래서 그의 죽음이 의외인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도처에서 만난다. 그래서 이 소설집이 재미있는 것이다.

 

이런 기막힌 안성맞춤이 있나!

 

같은 소고기라도 해도 다르다.

소를 수입해서 3년간 기르면 국내산이라도 표기할 수 있어. 하지만 한우는 이 땅에서 태어나고 자란 소들에게만 한우라고 할 수 있는 거야. (56)

 

이런 지식을 새롭게 받아들였는데, 이게 소설의 주요한 줄거리가 될 줄이야!

그 지식에 기반을 둔 이런 대화로 저자는 <열대야에서 온 무지개>를 완성한다.

 

이번 결혼 기념일에는 무슨 선물을 할까?

한우를 낳고 싶어요, (72)

 

재석과 사이룽, 그리고 그 사이에 태어날 한우를 응원하는 마음이 저절로 든다.

 

2인칭 소설도 한번 읽어보자.

 

이 소설집에서 두 편이 2인칭으로 진행이 된다.

<배꼽의 기원><나는 자정에 결혼했다>

 

2인칭 소설의 서술 기법은 희한하다. 2인칭이 가능하려면 2인칭 대명사인 당신이라는 말을 하는 1인칭 서술자가 필요한데. 1인칭 화자가 누구인가, 그것 또한 문제다.

 

2인칭 소설은 더 의미있는 독서가 된다.

 

무엇보다도 소설가는 문장이 좋아야 한다.

 

이런 문장 읽어보자. 문장이 좋다. 더해서 문장에는 몇 가지 의미를 함축해야만 의미가 있는데, 이런 글 읽으면서 보물을 발견하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이 인생이란 게 이 골프장 같아서 말이죠. 그냥, 곳곳에 벙커가 널려있잖습니까? (117)

 

이 말은 이런 글을 보완해서 읽으면, 인생이 무엇인가 깨닫게 된다.

 

볼이 제일 잘 떨어지는 곳에 정확히 벙커가 있잖아......

잘 생각해봐, 왜 그렇게 설계를 했는지.(118)

 

다시, 이 책은?

 

작가의 사명이 여기에 있다.

독자들로 하여금 다양한 경험을 하도록 하는 것, 그것이 작가의 가장 으뜸되는 사명이 아닐까? 그래서 독자들은 그런 작가의 인도를 받아, 글을 따라가면서 다양한 인생 체험을 해보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 경험은 간접적이긴 하지만.

 

그래서 소설을 읽을 때 다양한 인물을 만나,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면, 그건 일단 합격이다.

 

또 있다. 이런 고통도 우리가 느껴야만 한다는 것을, 저자는 보여준다.

<이불 개는 남자>에서 무대가 되는 카리브 모텔, 두 사람이 만난다. 남과 여다.

무언가 이 생길 것만 같은 두 남녀. 그들은 서로 흔적으로만 만난다.

 

방안의 모든 벽을 다시 한번 꼼꼼하게 살핀다. 남자가 어깨를 부딪혔을 저기 어디쯤 그가 내려놓고 간 고통이 아직 묻어있는지 모른다. (221)

 

이 세상을 살아온 사람들의 흔적을 세밀화처럼 그려 보여준, 그리고 보이지 않은 사람들의 고통까지도 헤아려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 작가, 그는 작가의 사명을 이 책에서 다했다. 사람들의 흔적을 완전하게, 그리고 고통까지도 완벽하게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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