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하고 난처한 미술 전시회 - 41명의 거장과 명화 속 숨은 이야기
야마다 고로 지음, 권효정 옮김 / 유나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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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하고 난처한 미술 전시회

 

이 책은 여러 가지 장점을 찾아볼 수 있는데. 가장 좋은 점은 이것이다.

 

책을 펼치면, 먼저 이런 정보들이 보인다.

 

한눈에 보는 서양 미술 연표

   - 여기에는 1400년대부터 1960년까지

       미술 사조와 그에 속한 화가들을 일목요연하게 분류해놓았다.

        해서, 이 연표로 서양 미술 사조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이어서 인물관계도를 제시하고 있는데, 다음 5개 사조에 속한 인물들이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르네상스, 북유럽 르네상스, 바로크, 인상주의, 포스트 인상주의.

 

이 책에 등장하는 화가들

 

모두 41명이다.

그림 사조와 관련해 화가들을 정리해볼 수 있다.

 

그중에 하나,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 화가들 :

 

신고전주의 :

    자크 루이 다비드

   도미니크 앵그르 : 다비드의 제자

낭만주의 : 외젠 들라크루아

   들라크루아는 신고전주의에 반기를 들었다.

 

여기에는 두 사조의 대립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프랑스 미술 아카데미를 중심으로 군림한 앵그르는 들라크루아가 아카데미 회원이 되는 것을 강력히 반대했다. (186)

 

처음 보는 그림들

 

페테르 파울 루벤스(1577~1640)

 

<마리 드 메디시스의 초상>, 1622년 작이다.

 

왜 이 그림에 관심이 가느냐 하면 그녀는 프랑스의 앙리 4세와 결혼한 인물이다.

이자벨 아자니가 출연한 영화 <여왕 마고 (1994)> 로 잘 알려진, 프랑스 역사상 아주 유명한 왕이 앙리 4세인데, 그는 두 번 결혼했다.

앙리 4세는 첫 번째 아내와 결별하고, 마리 드 메디시스와 결혼한다.

그러니까 그녀, 마리 드 메디치(Marie de Medici, 1573-1642)는 프랑스의 앙리 4(Henri IV de France, 1553- 1610)의 두 번째 아내인 것이다.

 

루벤스는 마리 드 메디시스의 의뢰로 그림 여러 점을 그렸는데. 이 책에는 그 중 3 점이 실려있다.

 

<마르세유 상륙> (131)

<마리 섭정 시대의 풍요와 행복>(191)

<마리 드 메디시스 초상> (191)

 

흥미로운 사연 있는 그림들

 

존 에버렛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1829~1876)

 

우리에게 <오필리아의 죽음>으로 잘 알려진 존 에버렛 밀레이가 아주 흥미로운 그림을 그렸는데. 제목이 <나의 첫 설교><나의 두 번째 설교>이다.

 

밀레이의 <나의 첫 설교><나의 두 번째 설교> (286, 287)

 

그는 딸 에피가 처음으로 교회에 가 설교를 듣는 모습을 그렸다. 그 때 아이 나이는 다섯 살이었다. 진지하게 설교를 듣는 아이의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이다. 그리고 같은 장면의 모습을 1년 후에 다시 그렸는데, 제목은 <나의 두 번째 설교>.

두 번째 설교에서는 아이의 모습이 달라져있다. 첫 번째 설교를 들을 때와는 다르다. 그 모습이 더 귀엽고 사랑스럽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림을 자세히 보거나, 사연을 자세하게 읽어보면 지금까지 우리가 알거나 들어온 것과는 다른 것들을 알 수 있다. 이 책에서 몇 가지 그런 사연들을 만난다. 새롭게 알게 되는 것들이다.

 

뭉크의 <절규>

 

너무나 유명한 뭉크의 <절규>

지금껏 들어왔던 이야기는 이 그림이 놀라서 소리를 지르는, 절규하는 자신은 그린 것이라 했다, 그런데 저자는 이런 주장을 펼친다.

 

이 그림을 자세히 보면 손으로 귀를 막고 있다, , 이 인물은 놀라서 소리를 지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큰 소리를 듣고 놀란 것이다, 이 그림은 뭉크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하늘이 핏빛으로 물든 황혼 무렵, 그는 다리 위에서 갑자기 큰 소리를 듣고 본인도 모르게 귀를 막았다. 그러나 그 소리는 항상 죽음의 공포에 떨었던 자신의 마음이 만들어낸 소리없는 외침이었다. (356)

 

인상파라는 말은 원래 폄하?

 

인상파라는 말, 원래 그렇게 부른 것은 폄하할 의도였다고 알고 있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1874 바티뇰파 화가들은 마침내 염원하던 그룹 전시회를 열었다. 그곳에서 모네의 <인상, 해돋이>를 본 평론가 루이 르루아가 확실히 인상은 전해지지만, 미완성 벽지보다 형편없다고 폄하한데서 인상파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많은 책에 쓰여있다.

그런데 그 기사의 전체 문장을 잘 읽어보면 르루아는 결코 인상파를 폄하하지 않았다.

르루아가 풍자신문 <르 샤리바리>에 기고한 기사는, 풍경화의 대가로 여겨지는 가상의 나이 많은 화가가 작품을 깎아내리면, 르루아가 이를 옹호하는 형식으로 재미있게 쓰여 있다. , 르루아가 암묵적으로 비판한 것은 인상파의 새로움을 이해하지 못하는 고전주의 화가 쪽이었다. (236)

 

다시, 이 책은?

 

그림은 자세히 들여다 보아야한다. 그래야 어느 시인이 노래한 것처럼 예뻐 보인다. 그렇게 제대로 된 그림 감상을 위해서는 제대로 알아야 한다. 이 책, 은밀하고 난처한 미술 전시회를 통하여 그런 방법을 배운다. 해서 그림이 이제 제대로 보이는 것이다.

 

더해서 이 책의 특징을 여럿 찾아볼 수 있는데, 그 중에 하나, 이런 특징은 저자가 <프롤로그>에 이렇게 밝혀놓은 데서 찾아볼 수 있다.

 

서양 미술사의 큰 흐름을 파악할 수 있도록 화가들이 활동한 연대순으로 배열했다.

이 책은 시대별, 화가별 인덱스로도 활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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