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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란
이광재 지음 / 목선재 / 2024년 8월
평점 :
왜 란
이 책은 소설이다. 조선 시대 임진왜란 시기를 배경으로, 계유정란을 피해 낙향한 선비 이안의 후예인 이유(李瑜) 의 일대기가 펼쳐진다.
먼저 등장인물 먼저 살펴보자. 인물 관계도가 필요하다.
이안(李岸) : 이유의 고조
이석(李碩) : 이유의 조부 (69쪽)
생부 이장영(李長榮) - 아들 (이곤, 이유, 이진)
이곤(李琨) : 생부의 장남, 영광 남산리 거주
후실
후실의 딸 가희(佳姬)
동생 이진(李瑨)
이유는 막내아들 홍원(弘謜)을 이진의 양자로 보낸다.
양부 이억영(李億榮)
이유는 영광 남산리에서 태어났지만 숙부의 양자가 되어 부안 도화동에서 살게 된다. (57쪽)
이유(李瑜) - 아들 (이홍순, 이홍의(李弘誼), 이홍원)
부인 부안 김씨(扶安 金氏) - 장수 현감을 지낸 김수복의 딸 (70쪽)
줄포 김진도(金賑道)
김진도의 아들 김수범(金秀範)
거북손 : 후에 이유는 그를 아들로 맞아들여 홍걸이라는 이름을 준다.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것!
임진왜란 당시 백성이 모진 고초를 겪고 있을 때 조정은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그저 제목숨 부지하느라, 백성들의 고초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섬사람들은 육지 소식을 꾸준히 듣고 있었고 임금이 평양과 안주를 거쳐 의주로 행차한 사실까지 꿰고 있었다. (80쪽)
그런 임금을 위해 백성들은 쌀을 모아, 바치자는 의논이 이루어진다.
그 졸렬한 임금을 위해 곡식을 모으는 일이 선뜻 내키지 않습니다. 이참에 그쪽 눈에라도 들려는 사람처럼 비루하게 느껴집니다.
임금이 아니라 국체를 지키자는 일입니다. 오나라와 월나라 사람이라도 함께 탄 배에 구멍이 나면 힘을 합쳐 활로를 찿겠지요. (70쪽)
참으로 순박한 백성들이다. 국제 정세가 위급한 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 무엇도 생각하지 않고 그저 자신의 권력을 누가 훔쳐갈까봐 신하들을 의심의 눈으로, 그래서 무고한 사람들을 곶감처럼 꿰어 죽인 선조에게 주인공 이유는 무한 환멸을 느낀다. (69쪽)
그렇게 환멸의 대상인 선조 임금을 위해 백성들은 목숨을 다해가면서 충성을 다하고 있다. 참으로 순박한 백성들이다. 대체 왜?
그때 대체 조정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
선조는 정여립이 역모를 꾀한다는 중상만 믿고 전주와 나주의 선비 천여 명을 도륙한 장본인이다. (67쪽)
고관의 자식들이 밤마다 벌인다는 술판과 군신들이 나라를 버리고 도망갈지 논하는 것이 과연 국가 대사인지 이유는 치를 떨었다. (94쪽)
의식의 확장
지금껏 맛보지 못한 음식이 이토록 즐비한즉 세상은 얼마나 넓고 도저한가. (49쪽)
이 말을 읽으면서 웬 음식 타령? 한가하게 지금 음식을 말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싶었는데 그 후에 주인공에게 벌어지는 사건을 통해 의식이 확장되는 경험을 하는 것 보니, 이 말이 다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더 읽어보자.
마사나리란 자의 학식을 예단할 수 없으나 전장을 누비고 다닌 일개 하급 무사의 식견이 놀라웠다. 한 가지에 골몰하면 일체를 깨친다더니 그를 두고 하는 말인 듯 했다. 지금껏 맛보지 못한 음식이 이토록 즐비한즉 세상은 얼마나 넓고 도저한가. 어쩐지 이유는 왜국을 하찮게 보는 내심의 허세가 무너지는 소리를 듣고 있는 것 같았다. 보려는 방식만으로 상대를 대하는 태도야말로 편협하지 않은가. (49쪽)
이런 경험을 한 주인공 이유는 의주에서 여진족이자 조선인인 사내를 만나 가히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고 사유와 의식이 확장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후 그는 내면의 변화를 계속 경험하게 된다.
그후 이유는 자신의 눈이 어디 먼 데로 향하는 것을 깨달았다. (165쪽)
그의 부인 김씨도 예사롭지 않은 사람이다. 그 부인의 눈에 남편의 이런 변화가 읽힌다.
하지만 근심이나 의분보다 무언가에 대한 갈등이며 회의요, 의구심이 얼굴에서 읽혔다. 경서를 들추되 글자나 구절을 보는 게 아니라 집요하게 무언가 궁리하는 모습이었다. 장애물을 만난 짐승처럼 나아가지 못한 채 한 곳을 맴도는 중이었다 .(210쪽)
백성을 발견하다.
이번에 보니 나라를 지키는 것은 요로에 앉아있는 자들이 아니라 재야의 선비들과 백성입니다.(163쪽)
이유는 그의 어깨를 가만히 눌러주고 천막에 들었다. 코앞의 적을 맞아 다들 두려움에 떨고 있지만 안으로 눌러가며 잘들 버티고 있었다. 아무 쓸모도 없어 보이는 이 전쟁을 통해 조선이 얻은 것은 사실 너무도 컸다. 백성의 발견이 그것인데 하루아침에 패산한 관군을 대신해 기울어진 전쟁을 책임진 건 오로지 향촌에서 징발된 촌민과 의병이었다. (264쪽)
밑줄 긋고 새겨볼 말들
길을 막고 나선 의병들에게 묻기를,
산으로 피신하면 일본군은 그냥 지나갈 것입니다. 그들도 무사히 고향에 가고 싶으니까요. 헌데 어찌 길목을 막아 어려움을 자초하십니까, 하니 답변이 이렇다.
조선의 이 곤궁한 처지가 너무도 치욕스럽고 창피하네. 조선에도 사람이 있다는 것을 명국이나 야인들에게 말하는 사람이 있어야하지 않겠는가? 우리가 쉽지 않다는 본보기를 만방에 새겨놓아야 하네.(266쪽)
그 말은 그때나 지금이나 동일하다. 이 말 우리 모두가 새겼으면 한다.
세자(후일 광해가 되는)를 만난 이유의 발언, 들어보자.
명나라에 대한 지나친 저자세는 조선의 협상력을 떨어트릴 것입니다. 협상력을 떨어트리지 않는 자존심을 조선은 왜 갖추지 못한단 말입니까?
오직 예와 의로써 타국을 긍휼히 여겨 원조하는 나라는 천하에 없습니다.
성을 높이 쌓으면 밖을 보지 못합니다. 매처럼 높은 눈으로 보소서. (200쪽)
전주의 용머리 고개 대장간에서
거북손이의 손에 들린 환도를 고경명이 힐끗 보았다. 그것은 김진사가 전주 용머리 고개 대장장이에게 부탁해 제작한 것이었다. (111쪽)
이 문장에 언급된 전주 용머리 고개, 전주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뜻밖의, 그러나 반가운 지명이다. 지금도 전주에는 용머리 고개에 대장간이 많이 있다. 그런 대장간이 임진왜란 때에도 있었다니. 신기한 일이다. 해서 기록해둔다.
다시, 이 책은?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몇 편 읽은 적이 있는데, 이 책처럼 감동적인 것은 처음이다.
그건 무엇보다도 주인공인 이유라는 인물이 감동적인 인생을 보여주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부안의 어느 의병장을 알게 되었는데, 정유재란 당시 왜군과 싸우다 전사했을 뿐 아니라 부인도 함께 전사했다고 한다. (292쪽)
그런데 그 인물이 예사 사람이 아닌데 소설 속 인물이 아닌 것처럼 여겨진다. 진짜 우리 역사에서 살아 움직였을 인물 말이다.
실제 인물인 이유를 발굴해내어, 조선이 임진왜란을 이겨내는 데 큰 몫을 했던 게 바로 백성이라는 것을 알도록, 그래서 우리 민족의 역사가 굴복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소설 속 인물로 재창조한 저자의 저력을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확인하게 된다. 감동 또한 같이 밀려온다.